김수환 추기경

평화는 가능합니다

문성식 2022. 7. 24. 20:00


 
      평화는 가능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헐뜯으며 자신의 치부와 출세만을 꾀하는가 하면,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도 서로 제 욕심만 부리며 자기 지배력을 신장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같은 개인적 내지 집단적 이기주의는 너무도 자주 충돌을 일으켜 분쟁과 파쟁을 초래합니다. 이 땅 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비극이 계속 연출되어 왔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그럴진대 미래도 그러리라 속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가능합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그날 밤 공중에 나타난 천사들이 지상에 평화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으로 시작된 평화는 먼저 개인적 마음의 평화요, 이 마음의 평화를 체험하는 인간들을 통해서 인류 세계에 건설될 수 있는 평화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전쟁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힘과 힘의 불안스러운 균형으로 전쟁을 피하기만 하는 그 상태가 평화일 수는 없습니다. 참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요, 더욱더 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항구한 노력으로써 얻어지는 질서인 것입니다. 평화는 영구히 확보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이므로 인간들의 착실한 노력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건설하려면 먼저 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정의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주는 일입니다. 개인 간의 권익을 보장하는 교환 정의와 인간 계층 간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평화 건설의 첫걸음입니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며, 각 민족과 국가의 주권이 존중되고 건전한 발전을 보장받을 때 평화는 이룩될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은 국민의 권익을 최대한으로 공평하게 보장해주고, 국제 권위는 각 민족과 국가의 권익을 최대한으로 공평하게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정의의 구현이 필수 조건이지만, 정의는 냉혹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의만으로는 참된 평화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정의를 초월하는 사랑과 자비가 요구됩니다. 개인의 인권 존중, 민족과 국가 주권 존중 위에 우애가 필요합니다. 정의의 공평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행복하고 부유한 개인이 자기보다 불평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발달 기술과 풍요한 재화를 소유하는 민족과 국가는 개발 도상의 국가들을 야욕 없이 자발적으로 원조하는 인간애와 인류애가 꽃피지 않고서는 평화 건설이 기대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의 위에 사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희망을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고 일소에 붙여버릴 현실주의가 있을지 모르나, 그 현실주의에는 어떤 결함이 있어 보입니다. 그것은 더욱더 긴밀한 형제적 유대로 살아가려는 현대의 조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무지와 오류 속에서도 또 윤리적으로 후퇴하며 종교적으로 구원의 길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부지중에 완만하게나마 창조주께 접근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평화는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우선 개인과 개인, 국가 지도자와 국민, 민족과 민족 사회에 참된 신뢰와 이해와 원조의 마음 자세를 추구해야 합니다. 서로 믿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 도와주는 사랑이 꽃피는 그날 평화는 이 땅 위에 이룩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만이 정녕 행복할 것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바보가 바보들에게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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