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어린이의 영원한 벗
1899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소파 방정환은
3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 문화운동가로서,
그리고 사회 운동가로서 어린이를 위해 일생을 바쳐온 분입니다.
방정환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9세 때 증조부의 사업 실패로 파산하여 견디기 힘든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살이 되던 해에 천도교 교주이며 독립 운동가인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방정환은 비로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1920년, 그는 일본에 건너가 도요 대학 철학과에 다니며 아동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1921년, 방학을 맞아 서울로 돌아온 방정환은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여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쓸 것을 주장하는 등 본격적인 소년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어린이를 위합시다!
그들을 바르고 아름답게 키웁시다!
그들의 인격을 존중합시다!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어린이를 진실되고 씩씩한 인간이 되게 할 때,
우리 민족의 앞날은 밝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외침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전국 각지에 소년회가 만들어졌고,
방정환은 소년회가 조직된 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랑의 선물’이라는 세계 명작 동화집을 펴내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1923년에는 ‘색동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어린이의 인권을 위한 일에 앞장섰으며,
‘어린이’라는 말을 새로이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아동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여 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모진 구박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우리가 안타깝게 무엇을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오직 내일의 한 가닥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의 희망을 살리는 길은
내일의 주인인, 내일의 일꾼인 소년,소녀들을 잘 키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한 가정과 나라를 살리는 데는 이것만이 확실한 우리의 살 길입니다.…
당신의 앞날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시는 마음으로 우선 당신이 먼저
‘어린이’를 읽으시고, 그 책을 자녀에게 주십시오.’
또한 방정환은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제정하여,
어린이날 운동을 범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 같은 그의 노력으로 점차 어린이 문화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러자 당시 한국을 식민지배하고 있던 일본은
어린이 문화 운동이 한국의 민족정신을 부추긴다고 여겨
어린이 문화 운동을 탄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28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오로지 잡지와 동화 순례 강연으로 자기 길을 걸어 나갔습니다.
당시 그의 동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의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어서
차마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무신을 벗어 오줌을 눈 어린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그는 1931년 33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방정환이 정한 어린이날을 1946년부터 5월 5일로 다시 정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7년에는 한평생을 어린이를 위해 살다간 소파 방정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소파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어린이를 위해 애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보다 '어린이 사랑'이란 소중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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