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문성식 2021. 4. 28. 18:07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B. 영성과 자아(spirituality and self)  

 

영성이란 하나의 자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개념을 종교적, 심리학적, 성경적 관점에서 연구한 다음 자긍심(self-esteem)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자아에 대한 종교적 시각   

 

<자아>에 대한 종교적 개념은 아주 부정적이다.  자아는 환각적이며 모든 문제와 고통의 근원이며 저주스런 존재라고 본다.  자아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종교에나 흔히 있는 현상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아를 영성발달의 장애물이라고 본다.  영국의 기독교 신비주의(British Christian mystics)는 영성이 발달하려면 자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한다.  동양종교들은 자아를 환각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영적 훈련에서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운동은 대단히 중요시된다. 세계 여러 종교들은, 근본적인 교리는 서로 크게 다르지만, 자아를 탈피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동의하고 있다.  

 

2. 자아에 대한 심리학적 시각 

    

하바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다니엘 골맨(Daniel Goleman)은 인간의 심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자아인식>(self-awareness)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자아>가 무엇인가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을 물질적 요소(육신)와 비물질적 요소(영혼)로 구성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본질적 자아>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영혼>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듀이(John Dewey,1887)와 제임스(William James, 1890) 같은 사람들은 <자아>(self)와 비슷한 개념으로 <영혼>(soul)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1) 기능주의의 시각        

기능주의는 사람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 지식을 얼마나 행동화하느냐는 쪽에 더 관심을 가진다. 즉 지식이 활동으로 기능화되어야 한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기능주의 심리학의 대표자들인 듀이와 제임스의 자아에 대한 개념을 살펴본다. 듀이(John Sewey, 1887)는 <정신의 의식적 활동>을 3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인지적인(cognitive) 의식과 정서적인(emotional) 의식과 의지적인(volitional) 의식이다.  정서적 의식은, 3가지 영역 중에서 <자긍심 self-esteem>에 가장 관계가 깊은 것으로, 이것을 "감정의 주관적 상태" 혹은 "정신의 정서"라고 하였다.  모든 느낌은 이와같은 <자아 혹은 영혼>의 활동을 동반하며 그와 같은 느낌은 자아가 가지고 있는 최근의 의식이다.  

제임스(William James, 1890)는 자아를 두가지 모습을 지닌 실체로 보았다.  그는 경험적으로 알려진 객체로서의 자아를 <me>라고 불렀고, 주관적인 존재로서의 자아를 <I >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me>를 나누어 “물질적 나”(material me), “사회적인 나”(social me), “영적인 나”(spiritual m)라고 칭하였다.   <물질적 나>는 몸과 가족과 소유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받아들이는 자아 인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은 여러 가지 사회적 자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이 각기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에게는 여러 가지 사회적 나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영적인 나>는 나의 의식의 상태와 심리적 기능과 기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제임스가 이해하는 자아 개념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개인 자체 안에서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속에서 통합된 전인적 존재이다.

 

(2) 상호작용주의(interactionism)의 시각

 

상호작용주의는 자아를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아와 사회 환경의 상호작용이라는 심리학적 입장을 말한다.  쿨리(C.H.Coolley, 1964)는 제임스의 <사회적 나>(social me)에 관심을 두고, 일상적인 관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적 자아>(empirical self)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아>(reflected or looking-glass self)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상상과 이런 상상에 대한 자아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쿨리는 자아개념을 3가지 요소로 분류하였는데, 그 3가지 요소는 

1)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상상과 

2 )이와같은 상상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  그리고 

3)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한다는 생각 속에서 나오는 자긍심이나 열등감과 같은 자기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를 좋게 상상하는 대로 판단한다고 느껴지면 <자긍심>이 생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를 좋게 상상하는 만큼 나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이 생긴다.   이와 같은 <사회적 나>의 개념은 어린아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이렇게 보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저렇게 보인다는 것을 배우는 중에,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 대한 인식을 가지면서 발달한다.  이와 같은 <자아감정>(self-feeling)은 사춘기에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자아감정은 일생동안 두고두고 나타나며, 이 감정은 자신에 대한 상상력의 중심이 되고 무슨 일을 열심히 하도록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쿨리의 <자아 개념>은 영성 발달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성발달의 주체는 자아인데, 바로 그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안에 있는 자아이기 때문에, 영성발달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자아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발전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영성발달의 주체로서의 자아는 있을 수가 없다.  영성발달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는 중에 이루어지는 삶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미드(G.H. Mead, 1934)는 자아의 발달에 대한 가장 조직적인 학설을 확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강하게 주장하기를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배출한 사회적 구조의 반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회의 한 맴버로 살 때에만 진정한 자아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각 개인의 개성(personality)이 이루어지며, 이와 같은 내면화된 태도들이 모여서 소위 한 개인의 인격(character)이 형성된다고 한다.

 

(3)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의 시각

 정신분석학은 자아는 의식적인(conscious) 면과 전의식적인(preconscious) 면과 잠재의식적인(unconscious) 면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는 프로이드(Sigmund Freud, 1923)인데, 그는 의식으로 향하는 정신적 과정과 무의식으로 향하는 정신적 과정을 분리하였다. 그의 주된 관심은 무의식(unconsiousness)인데, 무의식은 자기 자신을 본능이나 충동을 통해서 나타낸다고 한다.  그는 한 인간의 상식적인 측면인 이성적 기능을 <자아>(ego)라고 불렀는데, 이 자아는 본능을 통제하려고 힘쓴다고 하였다.  초기 아동기에 나타나는 <성적 쾌락에 대한 무의식적 자기책망>은 성인이 되면서 <이상적 자아>(ego ideal)가 발달하도록 도움을 주며, 이 이상적 자아를 그는 <초자아>(Super-Ego)라고 불렀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추구하는 힘이 이 초자아에서 나온다고 본다. 

 

<자아>(Ego)가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자책감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염원하는 쪽으로 이끌어간다고 본다.  어린아이 때에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아가 발달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그 역할은 선생이나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옮겨간다.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금지사항들은 이상적 자아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양심>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면서 계속하여 도덕적 감각을 발전시킨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의 이론에 의하면, 부모가 아이에게 충동을 억제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하면 할수록 그 아이의 <초자아>는 더욱 강화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초자아>의 말을 듣지 않고 <자아>가 충동대로 행동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 죄책감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사용되는 또 하나의 용어가 <이드>(Id)인데, 이것은 본능적 충동을 말한다.  <초자아>는 자아를 도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이드>는 자아를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간다.  그래서 어떤 자아가 초자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 가치있는 행동을 하게 되고, 본능(Id)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도 이 같은 이론을 말하였다(롬7:19-25).  

 

<자긍심>(self-esteem)이라는 현대 심리학적 개념의 뿌리는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몰고 가는 힘(drive)을 프로이드는 <억압되었던 성적인 힘>이라고 했는데, 그의 제자였던 아들러(Alfred Adler)는 모든 인간의 행동 뒤에 있는 기본적인 힘은 <열등감을 우월감 혹은 완전감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라고 하였다. 프로이드나 아들러나 모두,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는 <이상적 자아>(self-ideal)이며, 이것은 자신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아들러에 의하면, 어떤 개인도 사회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관계성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사회적인 존재이다.  태어나는 자체가 부부라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회적 결합에 의한 결과이며, 태어나는 과정에서 그 아이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을 접하게 된다.  집에 돌아오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이웃을 접하게 되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과 학우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며, 더욱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회생활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영성발달은 하나님과의 관계발달이며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발달이다.그러므로 영성발달은 자아의 사회적 관계를 떠날 수 없다.  아들러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 행동의 동기는 열등감을 우월감 혹은 완전감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부족한 데서 풍족한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며 사는 존재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을 선용하여 인간에게 부여된 최고의 기준인 성경적 가치를 성령의 조명을 받아 가르치고 이끌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통해 소위 초자아를 발전시켜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성발달의 과제이다.

 

프롬(Erich Fromm, 1947)은 <자애>(self-love)를 강조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힘을 <자아실현>(self-fulfillment)으로 본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사랑>이나 <자기 관심>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과 반대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루터나 칼빈이나 칸트와 같은 사람들의 의견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사랑과 타인사랑은 양자택일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프롬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듯이 자아도 사랑해야 하며, 이렇게 할 때 자아가 인정을 받게 되고 창의력도 길러진다고 본다.  자아에 대한 사랑을 수용함으로써 행복과 성장과 자유가 흘러나온다고 보며, 자아사랑은 타인 사랑의 능력을 길러준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프롬이 말하는 <자기사랑>은 <이기주의>(selfishness)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실에 있어 이기적인 사람은 자아를 사랑하지 못하며 자아를 미워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게 된다.   

 

(4) 행동주의(behavior!!!ism)의 시각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왓슨(John Watson, 1925)은 <자아>라는 것은 <영혼>이라고 하는 진부한 개념의 흔적에 불과하다면서 그것을 부인하였다. 그는 또한 정신, 의식, 느낌 등과 같은 개념도 무시하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개념들은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자들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키너(B.F. Skinner, 1971)도 자아의 비과학적인 개념을 부인하였다.  이와 같이 행동주의가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만을 강조하면서, <주관적 자아>(subj ective self)를 배척하였는데, 이것이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심리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고도로 진화되었으며 진화되어가고 있는 동물로 본다.  그들은 학생을 중성적 인간 동물(neutral human animal)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훈련과 조작과 통계를 통하여 의도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존재로 본다.

 

(5) 현상학적 심리학(phenomenological psychology)

현상학적 심리학의 대상은 현상적 세계이며, 이 현상적 세계는 한 개인이 보는 바대로의 실재(reality)로 구성된다.  현상적 연구는 어떤 특수한 체험이 그 사람에게 어떤 가치가 있으며, 그 체험이 과연 그 개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한다.  현상학적 심리학자는, 언어적 행동과 비언어적 행동에 의존하여 연구하며, 어떤 주체의 의식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의식적 과정과 같은 비현상적인 것들보다는 현상적인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사람은 자기인식의 경험과 물질적 세계를 통하여 얻은 경험을 통하여 배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아개념과 일치하는 한도에서 어떤 지각 대상을 받아들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개념>은 중요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하여 학습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6 )인간주의적 심리학(humanistic psychology)

 1950년대에 인간주의적 심리학이 한 학파로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들은 매슬로(Maslow), 주라드(Jourard), 로저스(Rogers) 등이다.   인간주의는 모든 감각과 경험의 주체가 되는 한 개인의 특질 즉 개성(personhood)을 중요시한다. 로저스(Carl Rogers, 1959)는 그의 인격이론에서 <긍정적 자아 존중>(positive self regar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자아가 건전한 방향으로 기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어떤 어린아이가 자기 주위에 있는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대우를 받고 칭찬도 받으며 상을 받을 때에 그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체험하게 된다.  어린아이 때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 무조건적 존중을 경험하게 되면,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게 되며, 이렇게 되면 자아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형성되어, 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고 본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동주의는 예외이지만, 자아에 대한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의 시각에 따르면,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가 자아에 영향을 끼쳐 영성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여지를 넓게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3. 자아에 대한 성경적 시각  

 

성경이 말하는 <자아>는 두 가지 형태의 자아이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인간 속에 있는 이런 이중적 자아를 가리켜 <옛 사람>(the old man)과 <새사람>(the new man)이라고 하였다.  정신분석학적인 주장과 비교하면, 옛사람은 <이드>(Id)와 결합하여 행동하는 자아(Ego)이고, <새사람>은 <슈퍼에고>(Super-Ego)와 연합하여 행동하는 자아이다.  <애고>(Ego)가 <슈퍼에고>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행동하면 선을 행하고, <이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행동하면 악을 행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옛 자아는 자기중심적인 자아(self-centered self)이며, 새 자아는 타자중심적인 자아(other-centered self)이다.    

 

사람 속에 있는 <자기중심>은 바로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중심의 삶을 떠나 자기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것을 먹으면 자신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자기중심의 욕망과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되겠느냐는 하나님 중심적 양심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자기중심적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자기중심적 자아>가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게 된 불행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자아 중에서 <옛 자아>(the old self)는 매일 죽여야 할 자아이며, <새 자아>(the new self)는 계속 성장시켜야 할 자아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미워하고 매일 죽어야 한다는 주장도 맞고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맞다. 왜냐하면 옛자아는 미워하고 죽여야 하지만, 새 자아는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라”고 가르치는가 하면, 또한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도 사랑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지상사역 특히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역으로, 그 분 속에 있는 타자중심적인 자아의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타자 중심적 자아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타자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타자중심적인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 원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의인이었다.  그러므로 영성발달의 목표가 되시는 <예수님 닮기>는, 타자중심적인 삶임을 알 수 있다.

 

4. <자긍심>에 대한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적 시각

 

<자긍심>(self-esteem)이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되 자기의 긍정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그런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자세이다.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1) 자긍심이 높은 사람들은 긍정적인 송환(positive feedback)을 더욱 믿을 만하고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긍심이 낮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송환(negative feedback)을 더욱 믿을 만하고 정확한 것으로 인식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때로는 심한 병리학적 비판을 하는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2) 자긍심이 제대로 발달한 사람들과 자긍심이 낮은 사람들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면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안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일들을 잘 처리하며 무마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놓고 겁을 낼 때에도 그들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타인들을 도와줄 수 있다.  그들은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갈등을 해소시키려고 노력한다.   반면 후자의 사람들은, 자신이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안정감마저 사라지게 한다. 

 

그들은 근심과 걱정을 이겨낼 수 없다고 느끼며, 인간 상호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또한 모험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들의 삶은 더욱더 고통스러워진다.  어려운 일들을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는 전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고 하는데서 야기되는 걱정거리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회의에 참석하면, 일반적으로 “안 됩니다” “나는 반대요 ..” “그게 될 것 같습니까?” “나는 못 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안 됩니다” “이론은 좋지만 실제는 안 됩니다.”는 등등의 발언을 일삼는 것이 보통이다.

 

(3) 자긍심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나 신학적인 측면에서나 영성발달의 중요한 부분이다.  웹스터(Webster, 1987)는 자긍심과 진정한 영성에 관하여,“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의 영성을 공급받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안과 자긍심을 체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영적인 대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소유한 자긍심은 그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4) 자긍심은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종교에서는 주로 자긍심의 부정적 측면을 많이 지적하고, 심리학에서는 주로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면을 다 수용함이 옳다고 본다. 종교적 측면에서의 부정적인 요소는, 자기중심적 자긍심과 연관된 것이라고 보며, 심리학적 측면에서의 긍정적 요소는 타자 중심적 자긍심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자기중심적 자긍심은 자신과 남을 파괴하는 부정적 힘의 원천이지만, 반면 타자 중심적 자긍심은 자신과 남을 위하는 긍정적 힘의 원천이다.  전자의 삶은 옛 자아를 발달시키는 자아이고, 후자의 삶은 새 자아를 발달시키는 삶이다.  전자는 마이너스 영성발달이고, 후자는 플러스 영성발달이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다윗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타자중심적인 자긍심이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의 내면에 이와 같은 타자 중심적 자긍심이 발달한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