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그 영광과 오욕의 역사(8)
● 1960년대 이후 교회와 신학의 변화
▶ 정체성 파악의 시기
감신의 문화토착화, 한신의 정치, 사회참여의 토착화[민중신학] , 연신의 기독교 민족주의 토착화.
토착화 신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서구에만 의존하는 것을 반기독교적, 사상적 식민지적 예속이라 함 - 해방신학 등 남미의 토착화 신학에 영향을 받았고 시대적 배경과 정치, 사회적 상황이 새로운 신학을 요구하게 됨.
◎ 토착화운동의 빛과 그림자
토착화의 긍정적인 면은 한국신학을 모색해야 한다는 신학함의 필요성과 거기에 대한 과제를 환기시켜 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학문성과 기독교와 문화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세계 교회와의 교류, 세계 조류속에 한국 기독교를 바라보도록 자극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복음의 지나친 상황화, 상황을 극대화한 나머지 텍스트를 약화시켰다는 점, 종교혼합주의 현상으로 기독교의 정체성 혼동을 불러 일으킨 것을 들 수 있다.
◎ 복음주의 운동의 발흥
전통적인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대 사회적인 책임을 회복하려는 노선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추세 - 역사가 없는 교회, 역사를 도외시한 교회는 성장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 해방이후 정부와 교회의 야합의 역사
한국교회 차원에서 친일 문제를 체계적으로 처음 언급했던 사람은 매산 김양선 목사 - 총회의 의뢰를 받고 1954년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를 집필 - 책에서 해방 이후 교회 분열과 혼란을 가져온 것이 친일 협력자들이었음을 날카롭게 지적 - 결국 이 책은 총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판매 금지를 당함.
◎ 이승만 정권과 기독교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냉대하고 친일파에 대해서는 보호와 우대를 하여 민족정기의 싹을 자름 - 이승만 정권 당시 소위 반민특위에 의해 일제에 부역했던 많은 목사들이 검거되자 일단의 목사들은 이 장로 대통령을 찾아가 설득을 시도 - 설득의 논리는 소위 '적색분자 색출론'으로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일제 부역은 교회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라로 변호하고 대신 '친일파보다 빨갱이를 잡는 것'이 시급하다는 논리 - 이 설득이 주효하여 반민특위는 4개월만에 해체되었고 그 이후에 친일파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는 자는 빨갱이로 매도함 - 6.25전쟁 이전에 월남한 적지 않은 수의 북한 지역 기독교인들이 친일지주 계층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이들이 중심이 된 이승만 정권 이후의 초기 한국 교회의 주류 세력들이 손쉽게 권력에 빌붙고 사대주의적 사고에 찌들었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 요구에 적대적인 이유를 암시해 준다.
이승만 장로는 대통령 선서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기도로서 하나님께 감사함 - 제헌국회 때 이윤형 목사가 개회기도를 함 - 1952년 2대 대통령 선거 때 기독교는 이승만을 돕기 위한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그를 도움 -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이승만 장로와 이기붕 권사는 150만 성도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올려 선거 협조를 요청 - 1960년 2월 18일 교계 지도자 초청모임에서 목사들은 이승만 장로를 지지함 - 3.15부정 선거시 이승만과 이기붕의 표가 총 유권자의 표보다 더 많이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 -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 - 이기붕 권사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이 아니다며 폭력적 진압을 당연시함.
◎ 박정희
1942년 만주군관학교 졸업시 대동아 공영권을 확립하는 성전에서 나는 싸꾸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대표 답사를 함 -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 개명 - 해방이후 장교로 좌익운동을 하다 구속된 후 좌익분자 명단을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특별사면됨 - 이 사건으로 불명예제대를 하였으나, 한국전쟁 후 친일파 장교들에 의해 중령으로 승진되며 다시 군인의 길로 들어섬 - 1961년 1월 12일 육군본부 개인 보안심사위원회에서 과거의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근무실적이 나쁜 장교 153명을 강제 예편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박정희가 이 정보를 미리 알게 됨 - 그의 전역 예정은 1961년 5월말 - 강제 예편 전 5월 16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음 - 1969년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1972년 10월에는 계엄령을 선포 - 유신헌법에 의해 1972년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2,359명 중 2,357명이 찬성투표하여 다시 대통령이 됨 - 1979년 10.26때 김재규에 의해 암살됨.
◎ 박정희 정권에 협력했던 기독교
1961년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반대하던 미국정부에게 반란정부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기독교 대표 한경직, 최두선, 김활란, 정일권이 미국으로 감 - 1965년 한일협상조인에 보수교회는 적극 지지함 - 1969년 9월 4일 김윤찬,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 242명의 목사는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여 3선 개헌지지 성명을 내면서 더욱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체제를 바란다고 강력한 독재를 요구 - 1972년 유신개헌과 유신헌법을 지지한다고 성명서 발표 - 대한기독교연합회는 회장 김윤찬 목사가 미국시민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미국으로 가 버리자 해체됨.
◎ 박정희 정권에 대항했던 기독교
1962년 일본과의 굴욕적인 한일협상조인 후 전국 교회에서 철야 금식을 실시 - 3선 개헌이 발표되자 김재준, 박형규, 함석헌등이 중심이 되어 반대운동 전개 - 1973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후 박형규 목사는 유신반대 시위를 함 - 이 사건을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 발표하여 박형규, 권오경, 김동환등을 구속함 - 수많은 목회자들이 유언비언 날조죄 등으로 구속 수감됨 - 1975년 통합 총회는 ‘신앙을 사수하고 국가 장래 비극을 막기 위해 전 교단적으로 투쟁할 것을 천명한다’고 성명서 발표 - 1975년 기독교 장로회 총회는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민주헌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성명서 발표 - 1975년 민주수호기독자회에서는 ‘유신헌법 철폐하고 박정희는 하야하라’고 요구 - 박정희 정권은 반정부적인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를 사찰하고 감시하며 기도회를 방해하고 설교를 도청하거나 녹음하여 성직자를 구속 - 전북 김제의 난산교회 강희남목사는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부정부패의 근원인 유신정권의 뿌리를 뽑는 길이다고 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됨.
독재에 저항했던 교역자들 - 조용술, 오충일, 고영근, 임태평, 인명진, 조화순, 문동환, 서경석, 이해동,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강희남 등.
다윗의 죄를 지적했던 나단 선지자처럼 교회는 항상 국가의 움직임이 독재로 향하지 못하도록, 즉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도록 감시하고 죄를 고발해야 한다.
◎ 군부독재자 전두환과 어용목사들
하나회 회장 전두환을 중심으로 12.12반란이 발생 - 정권을 잡는 명분을 찾던 중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음 - 5월 30일 국보위를 발족시켰는데 국보위 종교담당으로 신촌성결교회 정진경 목사, 입법에는 조향록 목사가 참여함 - 1980년 8월6일 정진경, 한경직, 조향록, 김지길 ,강신명, 지원상, 신현균, 김창인, 문만필목사등 22명이 참여하여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개최 - 정진경 목사는 기도에서 일찍이 군문에 헌신해서 훌륭한 지휘관으로 나라를 방위하는 데 충성을 다하게 하신 것과 구석 구석 악을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전 위원장이 남북통일, 국가의 번영, 그리고 민주화 실현 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자를 축원함 - 이 조찬기도회를 방송사들은 생중계 했을 뿐 아니라 두 번이나 재방송을 보냄 - 조찬기도회는 같은 달 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21일 전군지휘관회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추대,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선거,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지는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의 핵이었음 - 역사의식의 결여로 인해 학살자에게 7년여간의 독재를 가능케 한 길을 한국교회가 열어줌 - 전두환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상황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과 다름이 없음 - 진정 찾아가서 위로해야 할 자를 제대로 찾아 위로하지 못하고 책망이 필요한 자에게 늘 필요이상의 사랑과 지지를 보냈던 어리석음의 반복 - 1달 뒤 ‘전대통령 취임 축하 조찬기도회’를 9월 30일 신라호텔에서 1,300여명의 각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함 - 이후 4만 여명에 달하는 삼청교육대 입소자들에 대해 그들의 억울한 형편을 살펴보기보다는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자랑하기 바빴던 교회 -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여 결국 같은 공범자가 됨 - 김정호 혜화성결교회 원로목사는 5공때 ‘데모하는 놈은 빨갱이다’ 설교함 - 1987년 항거 때도 교회는 이들에 대해 ‘폭도, 좌경, 빨갱이’라 매도하기에 바빴음.
1982년 3월 18일 부산에 있는 미문화원 지부에 대한 방화 사건 - 주동자인 문부식과 김은식은 부산 고신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으며, 이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한 사람은 최기식 신부 -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사건이자, 반미운동의 불을 지핀 사건 - 이 사건으로 인해 외세에 대한 자주의식의 고양과 더불어 남한 독재정권에 대한 반동심리로 인해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증대함.
◎ 김영삼 정부와 기독교
3당 합당의 야합을 통해 정권창출을 한 김영삼 장로 - 1992년 12월 3일 천명의 교역자들이 모여 신앙인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며 김영삼 장로를 공개지지.
김영삼 정부 이후 한반도 분단체제 종식을 위한 통일운동을 전 교회적으로 널리 펼쳐서, 오늘날 남북간의 경제 문화교류 등 민간분야 지원의 물꼬를 텄음 - 이러한 교회의 활동은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평화선교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불의한 권세에 대한 굴종이 교회에 남긴 상처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핮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아모스 7.13)라고 말한 ‘이 땅의 아마샤들’이 교회권력의 최정상에 군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 있는 한 한국교회의 개혁과 성경 말씀으로의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독재자들은 분단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 강화시켜 나감 -
교회는 불의한 권력과의 밀월관계를 담보로 유형․무형의 특혜를 받으며 자신의 안일과 교세확장에 몰두함 - 종교계 일부가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위해 각종 종교집회를 주선하는 등의 대가로 불법건축 허용, 세금 감면 등의 반대급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교회의 체질속에 깊게 뿌리내려져 있는 권력에 대한 굴종의식을 떨쳐 버려야 - 초대교회의 핍박의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황제숭배반대와 징집거부를 기억해야 - 신앙은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혁명적 사고이자 삶의 방식인 것.
역사적 몰이해는 시대에 대한 분별부족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 - 하나님을 진정 믿는 자가 현세의 안락을 위해 그렇게 변절하고 불의한 권력 앞에 굴종하겠는가.
믿음의 실천을 제대로 살아오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과연 믿음의 실천을 강조할 수 있었겠는가 - 실천보다는 추상화된 교리를 반복하고 삶을 통한 믿음의 행위보다는 인식론적 내용이해를 믿음으로 주입시킨 오늘의 교회현실은 불행한 과거에 대한 덮음 속에서 나온 불행한 결과이다.
만일 포악하고 야만적인 권력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니 문제삼을 수 없다고 한다면,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바로 앞에 섰던 모세나, 구약의 예언자들, 헤롯의 죄를 꾸짖었던 세례요한과 헤롯에게 ‘여우’라고 욕했던 예수님의 말씀들을 모두 성경에서 삭제해야 할 것이다 - 용기 없음으로 인한 자신의 한계를 성경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덮어버릴려고 해서는 안될 것.
1967년 일본 기독교단은 2차 세계대전 하에서 일본 기독교단의 책임에 관한 고백을 통해 과거 일본 교회가 전쟁에 협력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였음 -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 남의 나라 전쟁에 자신의 민족을 억압하는 쪽에 서서 전쟁에 협력했다고 하는 것은 크나큰 범죄이며 양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 - 또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탐욕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적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뼈를 깎는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 이러한 거듭남이 있을 때에만 한국교회는 성경적 공동체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사회의 그 존재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특별히 복음주의 청년학생들이 이러한 회개운동을 가능케 만드는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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