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본교리 제9장 구원론(죄)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이 놀라운 주제를 상고하기 전에 이 구원의 필요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론(Hamartiology ; 죄를 뜻하는 헬라어 " "에서 나온 말)은 죄에 관한 연구입니다.
죄의 정의
성경에는 죄에 해당하는 많은 낱말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8가지는 구약에 있고 12가지는 신약에 있습니다. 이러한 낱말들이 전달해 주는 죄에 대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는데 그것은 과녁을 빗나가서 다른 것을 맞추는 것, 허물(정해진 선을 넘는 것), 패역, 불순종, 반역, 실족, 빚, 알아야 할 것에 대한 무지, 무법함, 전부 드려야 할 것을 일부만 드리는 것 등입니다. 단지 제한적이고 환상적이고 감각적이고 무지하거나 이기적인 것에 불과한 인간의 죄에 대한 관념은 부적당한 것입니다.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함"에 이미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어떤 일들에 대해 자신의 의지적 실천을 포함시키기 위해 그 한계를 약화시켜 놓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일치하기에 부족한 것에는 부정함과 죄 둘 다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개인적인 죄와 유전된 죄와 전가된 죄의 차이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죄가 루시퍼의 개인적인 죄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이 죄는 어떻게 하여 아담과 하와의 개인적인 죄를 통해 이 땅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봅시다.
죄의 기원
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 들어왔을까요?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죄악 된 존재들을 지으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자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존재를 지으셨습니다. 이 말은 곧 그 존재들이 이와 정반대의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들이 불순종할 수 없는 존재라면 순종도 억지로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죄를 짓든지 순종을 하든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은 자유롭게 죄를 짓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과 같이 가장 먼저 죄를 범한 자는 루시퍼였습니다(이사야 14장, 에스겔 28장).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의 범죄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다음의 요점들은 중요한 내용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었습니다. 아담은 이곳에 이미 심어져 있던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순종적인 동물세계의 머리였습니다. 이는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십일 동안 잡수시지 않고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광야에 계시면서 시험을 받으신 것과 대조적인 사실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날마다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해서는 안될 일은 단 한 가지 뿐 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처음에 아담 대신 하와에게 접근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하와의 마음속에 의심을 심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절대로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단이 와서 그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단은 약속하기를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며 선악을 알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속았고 사단의 말을 믿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더 나빴는데, 그는 속지 않았는데도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딤전 2:14).
사단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까? 그들은 범죄한 후 체험적으로 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한 말 중에는 사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선과 악의 차이를 그 마음에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체험적으로 악을 아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아담은 분명한 경고를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으며(창 2:17),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자 즉각적으로 죄의 가책과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더욱이 아담과 하와는 , 죄가 그들의 신체구조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 때로부터 육체적인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개인적인 죄
아담의 죄는 개인적인 것이었으나,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죄의 성품을 물려받았으며 그들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 순서가 반대입니다. 우리는 죄의 성품을 물려받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 것이 아니라(물론 이 말도 사실입니다만),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생각은 자기들이 이제 죄를 짓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지은 죄들이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죄 없이 완벽하게 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요일1:8), 혹시 가능하더라도 이의 원인이 되는 죄의 성품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형편없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인 죄의 양과 그 다양함은 거의 끝이 없습니다. 이 죄의 목록 중 일부는 막 7:21,22, 롬 1:29-31, 갈 5:19-21 등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외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양면성을 갖는데, 곧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입니다. 소극적인 면으로는 용서가 해결책이 되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풀어주고, 놓아주며, 죄를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책감과 정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회개,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 된 상태를 진단해주신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면으로는, 개인적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받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로 의로운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자기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3:22, 고후 5:21).
유전된 죄의 성품
유전된 죄의 성품은 나무 뿌리에 비유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인 죄는 바로 이 나무의 열매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죄는 정죄와 죄의 가책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물려받은 죄의 본성은 정죄는 받게 하나 개인적인 죄책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이 죄의 "열매"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뿌리"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의 성품은 하나님과 분리됨으로써 몸과 혼과 영에 끔찍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타락한 상태에서는 죄와 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죄의 성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게 하며, 금생에서는 없앨 수도 없고 개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죄의 성품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옛 성품과 함께 신의 성품까지 소유하고 있기에(벧후 1:4), 내적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 성품은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할 수 없으며(롬 7:18), 새 성품은 또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요일 3:9).
부패, 타락,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 거하는 것 등은 다 유전된 죄의 결과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며(렘 17:9), 오직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요 3:6). 인간의 타락을 강조함에 있어 성경은, 인간이 선을 알지 못한다거나 싫어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으며, 또 양심이 없다거나 사실상 자기들의 모든 정욕을 채우고 있다고 가르치는 것도 아님을 주목해야만 하겠습니다. 죄의 성품에 대한 벌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 분리된 상태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치료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굳어져 그 사람은 영원토록 "둘째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이중적입니다. 즉 하나님은 십자가의 영광 속에서 죄의 성품을 심판하시며(롬8:1, 갈 2:20, 5:24), 성령의 은사는 이 심판받은 죄의 성품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십니다(로마서 6장과 8장, 갈 5:16). 결국, 믿는 자의 죄의 성품은 죽을 때 또는 휴거 될 때에서야 완전히 소멸될 것입니다.
전가된 죄
"전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지불하게 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킨 사람처럼 책임을 돌리는 것,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가하는 것에 대한 좋은 예가 빌레몬서 18절에 나오는데,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모가 혹 빚을 졌으면 그것을 자기 앞으로 돌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것은 바울이 진 빚이 아니었기 때문에 법적인 전가 행위입니다. 아담의 죄가 우리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은 실제적인 것인데, 애당초 그 죄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아담 안에서 행했으므로(롬 5:12, 갈 3:22). 앞에서 본 대로 영혼 전이설을 내세우는 쪽의 주장 중 하나는(히 7:9,10과 비교) 모든 사람이 조상 아담 속에 있었고 그 안에서 행했다는 것입니다. 롬 5:12에서 "죄를 지었다"는 단어는 "죄를 지어왔다"는 것보다 더 잘된 번역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가 단번에 저지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의도 모든 믿는 자에게 전가됩니다. 로마서 5:14는 이 전가된 죄에 대한 벌은 육체의 죽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됩니다. 로마서 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왔으매"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아담 안에서 범죄 했다는 뜻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는 번역은 훌륭한 것입니다(롬 5:12). 바로 이어 나오는 계속적인 시제를 가진 "이르지 못하더니"는 우리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로부터 생겨나는 개인적인 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아담과 더불어 범한 행위는 우리편에서는 개인과 관계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정죄와 육체적인 죽음의 선고를 초래했습니다. 이 전가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전가된 의입니다. 먼저 우리의 죄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 전가되었습니다(고후 5:21 전반 절, 벧전 2:24, 사 53:6). 그다음엔 신자 각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자기 것으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고후 5:21 하반절, 고전 1:30). 믿는 자는 더 이상 정죄와 선고받은 죄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자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이 해결책보다 더 놀라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죄와 그 해결책
가르침을 잘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범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르게 배운 사람이라도 좀 더 정직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1:8-10은 우리가 범죄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것은 내주 하시는 성령님과 대립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표준이 되시며 우리의 빛은 어떤 것보다도 더 중대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믿는 자의 죄는 구원받지 못한 자의 죄보다 더 심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금생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악한 적이 셋이 있는데, 이 적들이 제각기 그리스도인을 유혹하여 가능하면 죄를 짓도록 만듭니다.
"세상"은 사단이 다스리고 있는 이 시대의 정해진 체제, 곧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불신자들의 세계입니다(요15:18,19). 이 경우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요일 5:4,5은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려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우리의 새 성품이며 (요일 5:4 상반 절), 또한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그리스도의 승리와 동일한 것으로 여김 받는 우리의 믿음이 또 하나의 비결이며(5:4 하반절), 마지막으로 불신 세상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드님을 믿는 우리의 이 특성이 곧 그 비결이라고 했습니다(5:5).
"육"은 육체로 범하는 죄뿐만 아니라 거듭난 뒤에도 여전히 떠나지 않는 죄의 성품의 흔적을 가리키며 여기엔 윤리적인 부분과 성령님을 거스려 싸우는 영적인 부분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육을 이기려면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다스려야만 합니다(갈 5:16).
마귀가 우리의 세 번째 적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방법이 다양하고 또한 지능적이며(엡6:11), 계속되는 씨름과 같습니다(엡 6:12). 마귀를 이기는 비결은, 다정하게 접근해올 때든지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을 때든지(벧전 5:8-9) 간에 그를 대적하는 것이며(약 4:7), 또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과(요일 4:4), 하나님께 순종함과(약 4:7), 믿음과(벧전 5:9),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공급해주십니다(엡 6:11-17).
마지막으로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담아둠으로써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며(시119:11), 또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에 의해(히 7:25),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 있게 해드림으로써(요 16:13 이하), 그리고 섬김에 의해서 막을 수 있습니다(롬 8:14).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죄를 예방하고 성령님의 뜻에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백하지 않고 죄 가운데 거하면(요일1:9), 징계를 받거나 심지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믿는 자가 그 삶 가운데 죄를 범하면 어두움이 찾아오고 희락과 교제와 기도의 담대함도 사라지게 됩니다. 또 휴거 때에 범죄 한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간증을 망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그분께로 되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자백은 범죄 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눈에는 끔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즉시로 모든 것을 낱낱이 아뢰고 자백하여 죄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수록 자기 자신이 더욱 죄악 된 존재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들 중 가장 경건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자들이 항상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느꼈다는 것은 기독교의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했음을 기꺼이 자인(自認)한다면, 하나님이 철저히 신뢰할만하고 또 솔직하신 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어 주십니다"(요일 1:9, 필립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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