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와 국화 - 조선정조(正祖, 1752~1800)
편지내용 시작
고즈넉한 봄을 닮은 담백한 우리 그림들
어제처럼 비오고 난 뒤의 고즈넉한 봄 날에 보고 싶었던 단아한 그림 두 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 한 켠에 담아두고 준비하던 작품입니다. 작가의 성품을 닮은 듯, 담백하고 정갈하며,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다소곳하게 만드는 우리 그림들입니다.
현재 MBC, TV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이산"이라는 드라마에 발 맞추어 더 소개하고 싶던 그림이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제 밤에 방영했을 작품에 자극을 받아, 마저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감상하기에 앞서 오늘 소개하는 조선시대 우리 그림의 작가인 정조(正祖, 1752~1800)의 약력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의 업적을 다 열거할 수 없기에 문화재청의 자료와 브리태니커사전을 참고하여 간략히 정리하였으며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감상에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정조(正祖)의 이름은 이 산( )이며, 자(字)는 형운(亨運), 호(號)는 홍재(弘齋)입니다. 이와는 따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별호(別號)를 썼습니다.
역사나 드라마를 통해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정조 이 산은 영조의 손자입니다.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이고,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惠嬪)입니다.
이 산의 나이 여덟 살 되던 해인 1759년(영조 35)에 세손에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던 열 살 되던 해인 1762년 2월에 좌참찬 김시(金時默)의 딸이었던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맞아 가례를 치뤘습니다.
같은 해이며, 그의 나이 겨우 열 살이었던 1762년 5월에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광경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무척 불운한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1764년 2월에는,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孝章)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습니다.
이 산 정조 대왕은 무예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학문이 깊었습니다. 더불어 "이 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화원"을 통해 아름다움 영상과 그림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처럼, 시문(詩文)에도 능하였으며 서화(書畵)에도 일가(一家)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해지고 있는 그의 그림은 매우 적습니다. 아래 그림 파초도(芭蕉圖)는 국화도(菊花圖, 보물 제744호)와 함께 조선회화사 연구에 있어서, 사료로 무척 중요한 자료입니다. 본래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 고 장석(故 張錫)씨의 소유이던 것을 동국대학교가 기증 받은 것입니다.
정조대왕필 파초 그림(正祖大王筆芭蕉圖), 보물 743호, 동국대학교 소장
국화 그림(菊花圖), 보물 제744호, 동국대학교 소장
보물 제 743호와 744호이기도 한 위 두 그림은 조선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그린 그림입니다.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와 국화 두 그루를 그린 윗 그림은 가로 51.3㎝, 세로 84.2㎝ 크기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줍니다.
위 두 그림은 모두 무척 간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위 두 주제를 부연 설명해주는 그 어떤 배경도 없이 한 그루의 파초와 괴석, 그리고 외진 곳에 자유롭게 핀 가을 국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먹 빛의 자연스러운 농담으로 강인한 기운이 돋보이는 그림
위 파초 그림은 니은(L)자 모양의 굽은 괴석 끝에 파초줄기와 넓은 잎을 적절히 배치하였습니다. 또한 국화 그림은 위로 뻗거나 아래로 늘어진 국화의 자연스럽고 청초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간결하지만, 먹 색의 짙고 옅은 정도와 그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 잎새의 빛에 따른 부분적인 변화를 적절하고 세련되게 표현하였습니다. 파초 잎과 바위를 그린 먹 빛의 농담(濃淡)은 고아(高雅)한 문인의 자연스러운 정취를 풍깁니다.
그래서 제왕의 부귀상(富貴相)보다는 고담(枯淡)하고 활발한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조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과 강인한 성품까지도 엿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림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홍재’가 주문인(朱文印)으로 찍혀 있습니다. 바로 그 밑에 또 하나의 백문방인(白文方印)도 찍혀 있어, 기운을 모아 정성으로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을 벗어난 독창적인 묘사로 내면세계를 표출한 그림
위 두 그림 가운데 아래 국화 그림은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특히 더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바위 가장 자리에 자리잡은 마른 풀의 가녀린 줄기와 국화 꽃의 곧고 풍성한 꽃 송이가 자연스러운 대조를 이룹니다.
위 파초도와 마찬가지로, 먹 빛의 농도와 흑백의 자연스러운 대조를 통하여 빛에 반사된 국화 잎새의 검푸른 색채와 강한 기운을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돌과 꽃잎을 묽은 먹 빛으로, 국화 잎들은 짙은 먹 빛으로 표현하여 구별하였는데, 이러한 농담 및 강약의 조화를 통하여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습니다.
그늘진 몇몇을 제외하면 빛을 반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잎새들을 진한 농담으로 표현하여, 한 낮 태양의 강한 기운까지도 전해주며, 그 시간대도 짐작케 합니다. 꾸밈이나 과장없이 화면을 자연스럽게 처리한 점은 당대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특히 글씨와 그림 및 학문을 골고루 사랑한 정조의 모습과 풍부한 감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꾸준한 수련과 연마를 통하여 무예에도 조예가 깊었던 정조의 강인한 체력을 짐작케 하는 그림입니다.
특히 정조의 치밀하고 호방한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남종화(南宗畵, southern-school literati painting, 인격과 학문이 높은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묘사의 사실성보다 운과 내면세계를 표출한 그림을 말함. 수묵과 엷은 채색을 주로 사용하며 형사보다 사의를 중요시 함.)"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며, 위 두 그림이 의미있는 이유입니다. <참고-초하뮤지엄넷>
출처 :참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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