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실마리의 원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아니지, 아니야. 난 가끔만 후회해. 근데 우리 마누라는 가끔 만족해. 그러니 따지고 보면 여자가 더 의리 없지.” 그는 깍지를 낀 손을 번갈아 가며 말을 이었다. ‘부부들이 재미없는 이유’를 물으면 남자들은 창피해하거나 ‘아이 들켰다’ 하며 대답을 부담스러워해. 사실이야, 재미없는 부부가 더 많아. 다들 ‘맞는 얘기긴 한데, 사모님에게 괜찮겠습니까?’ 하며 내 목숨 걱정들을 하더라고. 그런 남자들에 반해 여자들은 ‘우리 부부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에 대해 심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유연하게 대처해. 그러니 부부생활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유리해. 남자들은 더 힘든 거고.”
그가 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다름 아닌 그의 일상다반사였다. 문화심리학자로서 여러 가정의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쫓아다닌 게 아니라 그의 결혼,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재미없는 이유보다는 난 그저 다른 남자들보다 ‘내 문제’에 대해 잘 파악했을 뿐이야. 나도 다른 중년 남자들처럼 똑같이 삶이 재미없고 행복하지 않은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지. 나를 나로부터 분리해놓고 보니 중년이 되기 시작한 어느 시기, 어느 순간부터 정서적인 경험들에 대해 그다지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더라고. 사실 사랑도 그렇고, 재미도 그렇고, 그런 게 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가슴 뛰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과 과정들 속에 있는 것 아냐? 근데 언제부턴가 그 과정에 대해 인식할 수 없도록 회로가 고장 났나 봐.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거야. 그런데 중년인 우리는 언제부터, 또 왜 정서적으로 메말라 버렸을까?” 중년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정신과 치료에 의존해 스스로의 안식과 가정의 평안을 기도한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지독한 거짓말쟁이들 같으니라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한국 남자였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거칠고 답답하고 분노에 차고 그랬던 이유, 결혼마저 퍽퍽하고 조이고 자유스럽지 못한 이유는 ‘남자들 스스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자신의 정서적 과정에 대해 한 번도 검토한 적 없고, 검토할 필요성도 못 느꼈어. 그저 불도저처럼 앞으로만 달려갔을 뿐.” 그가 말하는 남자들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엄청난 ‘+’이거나 혹독한 ‘-’. 삶의 재미가 어마어마할 거라는 환상이 자신이 정말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계량치를 잃어버린 거란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삶은 월드컵 경기나 격투기처럼 뒤집어질 정도의 재미를 주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재미들을 지나치다 보니 자기가 불행하고 불쌍해 세상 대신 술로 자신의 위를 뒤집어놓는 것이다. 그것밖에는 뒤집어놓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김정운은 남자들이 읽지 말아야 할 몹쓸 책 종류가 ‘성공 처세술’ 책이라고 말한다. “성공 처세술에서는 내가 성공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 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을 가르쳐. 하지만 지위는 당신 자신이 아니야. 당신이 누군지 알고, 당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을 때 당신이 진짜 행복한 거야. 행복한 가정을 위한 성공 처세책에는 이런 것들도 포함돼 있더라. ‘부부끼리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들. ‘만약 안 되면 상담의를 찾아가세요’라고. 한국 부부들은 ‘대화하자고 해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니야. 아니, 대화를 해본 적이 있어야 대화가 되지.” 김정운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좋아하고, 문방구에 가면 철없는 소년처럼 가슴이 벌렁벌렁해지고, 수첩과 만년필을 사고,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늘 20여 개가 넘는 비싼 만년필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만, “그럼 여보, 그 돈 갖고 내가 매일 술 먹고 들어오는 게 더 낫겠어?”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한단다.
“난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남편뿐 아니라 아내도 결혼 생활에 재미를 잃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 아내는 ‘결혼 생활을 재미없게 만든’ 적이 아냐. 너무나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며, 한계를 나타내는 상징물, 아내. 그럼 아내 때문에 남편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그 질문에 그는 다시 고개를 젓는다. 20~30대 남자들은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될 것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세상을 뒤집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40~50대가 되면 현실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너무 빤해진다. 그래서 회의에 빠진다. 그가 ‘아내’라는 존재는 모든 남편에게 희망과 좌절, 한계가 담긴 상징적이고 거울 같은 존재라고 덧붙인다. “아내들도 행복을 전가시키려 해. 뭔지 알아? 아내들이 자녀들에게 목매는 것. 그건 자기가 공부 못해서야. 그러니 자녀라도 잘돼서 그 덕에 행복해지고 싶은 거야. 자기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에게 불행의 원인을 돌리는 거야. 물론 그래서 자녀가 잘되면 좋겠지.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야.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자녀에게 행복을 가르칠까? 자녀는 부모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지를 보고 배우는 거니 자신부터 행복해져야지. 어찌됐든 아내는 내 상징이고, 내 현실이야. 내가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어떻게든 행복해야 할 행복의 고리이자 가능성이라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면 누구겠어. 그러니 더욱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받들어야지. 아내에게도 내 행복이 전달되도록.”
그는 말한다. 삶에 대한 긍정과 삶에 대한 재미를 구체적으로 찾기 전까지 세상은, 그리고 재미없는 결혼 생활은 절대로 뒤집히지 않는다고. 자신의 삶의 과정을 즐기는 태도를 복원해야만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묻는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질문을 던진다. “뭐 좋아해요?” 이 질문에 간단히 정의할 수 없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당신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중요한 재미를 찾아낼 수는 있다. 좋아하는 게 분명하면 행복해진다. 반대로 좋아하는 게 분명치 않으면 불행하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세월은 참 잘도 간다. 어느새 내일 모레면 쉰이라는 그의 말에서는 들뜸도, 후회도 묻어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해. 갈등하면서도 받아들여야 해. 하지만 아쉬움은 줄여가자고. 나이가 들면서 뭔가 자꾸 까먹기 시작했다면 그건 노화 현상일 뿐이야. 불필요한 기억은 지우고, 필요한 기억은 단순화시켜 관조하는 것. 나이 들수록 그래서 고민도 덜어지나 봐. 불필요한 고민들이 싹 청소되는 거지 뭐. 그것도 행복이라고.” 그는 우리 스스로 광대를 자처하지 말라고 말한다. 남을 위해 뜀박질하고 덤블링을 해내는 재주 소년도 아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벅찬데 ‘남’을 행복하게 해줄 생각은 하지도 말란다. ‘내’가 재미있으면 아내도 재미있는 것이고,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재미를 만들어나가는 거라 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아침에 커피를 갈아서 마시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해. 아들들은 ‘아빠가 기분이 좋아 보이니 용돈 달라 하면 주시겠구나’할 테고, 아내는 시끌벅적하지만 남편과 아들들 모습에서 행복을 찾으니 말이야. 내가 행복한 느낌을 알고, 갖고 있으면 그 이후에는 ‘요이 땅!’ 하지 않아도 대화가 절로 가능하게 돼 있어. 나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이것저것 말하느라 계속 쫓아다녀. 아내는 귀찮아하면서도 웃어주지. 내가 재미있으면 아내도 행복한 거야.” 나이 듦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지도 말고, 행복한 남편, 아빠가 되자. 엄마가 행복해지면 남편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하고 재미있으면 같이 재미있게 된다. 재미있는 사람만 얘기할 수 있다. 그게 대화와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아흔 살까지 튼튼히 버텨내고, 살맛 나는 세상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