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불교란 무엇인가 】신도수행 안내 - 제5절 육바라밀 - 4. 정진 바라밀, 5. 선정 바라밀, 6. 반야 바라밀

문성식 2016. 12. 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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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수행 안내】
      제5절 육바라밀 4. 정진 바라밀
        과거의 버릇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해도 과거의 탐욕에 길들여진 버릇을 하루아침에 털어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몸과 말과 마음의 수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그것을 흔들고 허물어 버리는 삼독심이 솟구치곤 한다. 그러므로 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투철하게 깨달음을 이루어 다시는 어제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그 길을 용감하게 가는 일이 중요하다. 반복하여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보다 더 끈질기게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용맹한 정진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도 정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위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결과에 어떤 과보를 받을지를 안다면 정진에 많은 장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더욱 열심히 깨달음의 길을 향해 정진해야만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5. 선정 바라밀
        선정(禪定)은 참선 수행을 말한다. 중생의 마음은 본래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청정한 것이나 탐욕과 혐오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인한 번뇌에 의해 그 참된 성품이 가려져 있고 그 청정한 마음은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경전과 같은 간접적 수단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참선 수행을 통하여 그 본래의 마음을 직접 살펴 번뇌를 제거하여 청정한 마음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은 명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참선과 달리 명상은 오직 자신의 몸의 건강함과 마음의 자유만을 추구하고 철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내부적 반성과 성찰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지하여 자신을 보지 않기에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은 무시하고 현재의 자신이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서 어떤 사람이 명상을 통해 비록 마음의 자유를 얻어 성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깨달은 자유에 대한 집착만은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참선 수행 방법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이 좌선(坐禪)이다. 좌선이란 몸을 깨끗이 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신체의 접촉 그리고 마음의 잡념 등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것에서 본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좌선을 통해서 최종적으로는 삼매(三昧)의 경지에 들어가는데 삼매란 말로는 정확하게 그 뜻을 서술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조금도 차별이 없이 마음을 평등하게 지닌다. 둘째는 마음을 하나의 본래 자리에 머물게 한다. 셋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넷째는 마음이 조화롭다. 다섯째는 마음의 자세나 생각이 항시 바른 곳에 머문다. 여섯째는 매사에 구분 짓고 옮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쉬게 하고 우리의 본래 청정한 그 마음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는 청정하고 영원한 깨달음의 기쁨에 안주한다. 이와 같이 선정은 곧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방법으로 특히 불교의 수행 방법 중에서 스님들과 재가 불자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이다.
      6. 반야 바라밀
        반야(般若)라는 말은 불교 신도가 아니라도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불교 용어이다. 부처님께 예불을 드릴 때 항상 봉송하는 『반야심경』의 반야를 말하는데, 이 말은 산스크리크어 프라즈나(prajn~a-)를 소리로 옮긴 것으로 흔히 지혜라고 번역하나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분별의 지혜를 넘어선 분별이 없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반야심경』은 이 깨달음의 지혜, 즉 반야 바라밀에 관한 내용으로 그 핵심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들은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을 반야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반야바라밀은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의 다섯 바리밀의 근본이 되는 바라밀인 동시에 이 다섯 바라밀의 실천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의 완성이기도 하다. 즉 반야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시를 하며 스스로 계를 지키고 남과 나의 구별에서 오는 탐욕과 분노를 인내하고 정진과 참선 수행을 한다면 그것이 곧 중생 제도를 위한 보살의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것인 동시에 그 자체가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구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반야바라밀은 『반야심경』의 첫머리에 관자재보살이 반야 바라밀을 실천할 때 세상의 본질이 공임을 꿰뚫고 괴로움과 재앙으로 가득한 중생의 삶을 구한다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의 실천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육바라밀은 사실 각 항목들이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코 하나씩 떼어내어서는 생각도 실천도 할 수 없다. 마치 자동차가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각 부품들이 조화롭게 그 역할을 잘 할 때만이 잘 달릴 수 있듯이 육바라밀 역시 함께 실천될 때 비로소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육바라밀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 즉 보살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