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불교란 무엇인가 】신도수행 안내 - 제5절 육바라밀 - 1. 보시 바라밀

문성식 2016. 12. 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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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수행 안내】
      제5절 육바라밀 불교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마차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오분향 예불문〉의 맨 마지막 구절에서 보이듯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너무나 깊고 넓어 이제 막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따르고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팔만 사천의 경전들과 많은 계율들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경전에 대한 주석서들과 많은 불교관련 서적들은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고 쉽게 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서 공부할 육바라밀이다. 육바라밀이란 보살이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여섯 가지 실천 덕목으로 불교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 세계에 오기 전에 도솔천에서 보살로 계셨는데 이 육바라밀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여 부처님이 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은 생사윤회의 바다를 건너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한 뗏목과 같은 것이다. 한편 우리에게 너무나 친밀한 대지 문수 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등의 보살들은 자기만의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아라한과는 달리 자신의 깨달음과 중생 제도를 위한 수행을 구분하지 않는, 즉 이 여섯 가지 바라밀에 의지해서 정진하여 그 수행의 단계가 이미 부처님이 될 수 있을 만큼 높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중생 제도를 위해 계속해서 보살로 남고자 서원을 세우신 분들이다. 또한 모든 중생들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불성(佛性), 즉 본래 청정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이 육바라밀에 의지해서 정진하면 누구나 다 보살이라 할 것이다. 육바라밀에서 여섯 가지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말하고 바라밀이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를 소리로 옮긴 말로 ‘완성’이라는 뜻과 ‘피안(彼岸 :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보시 바라밀이란 보시의 완성 또는 보시를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1. 보시 바라밀
        인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베풀 줄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베푸는 걸 좋아하나니 그는 그 선행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 『법구경』 옛날 인도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베풀어주면 그 공덕으로 자신에게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수행자 등을 만나면 자신의 복을 짓게 해준다고 믿고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었다. 그런 까닭에 도움을 받는 사람을 복전(福田) 또는 복밭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신 후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머무르셨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연민과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연민과 사랑의 마음인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보시이다. 보시에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재시(財施),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시(法施)가 있다. 자기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보시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다. 보시는 우리의 집착과 그로 인해 생긴 모든 번뇌를 없애 주는 길이기도 하다. 탐욕을 버리는 가장 좋은 길은 첫째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요, 둘째는 행동으로 나의 것을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라 한다.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 나서 주는 것은 보시라고는 하지만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만약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자진해서 베풀 때는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만약 이따금 하는 보시라면 이를 보시라고는 해도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언제나 보시하는 경우, 이를 보시바라밀이라 부른다. 만일 남에게 주고 나서 뉘우침이 생긴다면 이를 보시라고는 해도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주고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을 때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궁극의 깨달음을 위해 수도하는 사람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주고받는 물건이 여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직 대승의 궁극적 깨달음인 영원의 법을 위해 보시하고, 세상에 삶을 받은 모든 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 보시하고, 모든 사람의 번뇌를 끊어주기 위해 보시한다. 『대반열반경』 이처럼 보시를 행할 때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 된다. 물질의 소유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이다. 부처님은 보시할 때 어떠한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되며 심지어 자신이 남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