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수행 안내】
제1절 인과응보
2. 윤회(輪廻)
윤회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를 포함한 여섯 개의 세계[六道],
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세계를 끝없이 죽고 태어나면서
돌고 도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세 가지의 세계[三界],
즉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나누어진 선정의 단계를 말한다.
첫 번째 육도 윤회는 현생에서 우리가 짓는 업에 따라 내생의 세계가 정해지는 것으로
선업을 쌓고 바른 수행을 통해 다음에 보다 나은 세계에 태어날 수 있으며
그와 반대로 악업으로 인해 더 고통스러운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업이야말로 윤회의 원동력인 것이다.
한편 어떤 종교에서는 천상의 세계에는 신과 같은 존재들이 머무는 곳으로
내생에 그 곳에 태어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불교는 천상의 세계도 윤회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천상이나 극락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뛰어넘어야 할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의 삼계 윤회는 육도를 다시 세 가지의 세계로 분류한 것인데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그리고 서른 세 개의 천상세계 중 일부로
물건과 잠을 탐하고, 음란한 생각이 가득한 우리 중생의 일상적 의식 상태를 말한다.
색계는 욕계에 속하는 천상의 세계보다 위에 있는 일부의 세계를 말하고
선정에 의해 욕망은 제거되었지만 육신과 같은 물질이 아직 남아 있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무색계는 삼십삼천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네 개의 천상 세계에 해당되며
이 단계는 육신의 굴레마저도 완전히 뛰어 넘은 자유자재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수행에 따라 더 높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번뇌와 망상에 의해 낮은 단계의 세계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우리가 불교의 윤회설을 공부할 때 반드시 염두해야 할 가르침으로
무기설(無記說)이 있다.
무기설이란 부처님께서 존재의 본질에 관한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그 답을 대신하신 것을 말한다.
그 네 가지 질문이란
첫째, 세계는 시간적으로 무한한가, 유한한가?
일부는 무한이면서도 다른 일부는 유한인가, 알 수 없는 것인가.
둘째, 세계는 공간적으로 보아 무한한가, 유한한가?
일부는 무한이면서도 다른 일부는 유한인가, 알 수 없는 것인가.
셋째, 영혼과 육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일부는 같으면서도 다른 일부는 다른 것인가, 알 수 없는 것인가.
넷째, 여래는 죽은 후에 존속하는가, 존속하지 않는가,
일부는 존속하고 다른 일부는 존속하지 않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것인가 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질문들 자체가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부처님은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들어
직접적인 답을 피하셨던 것이다.
이를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말룽캬라는 존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한한 것인가 유한한 것인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 것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아니면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약 부처님이 나를 위해 세계는 영원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따라 도를 배우지 않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문제를 풀지도 못한 채 도중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곧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로 되었는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지,
화살은 보통 나무로 되었는지 대나무로 되었는지를 알아야겠소.
또 화살 깃이 매의 털로 되었는지 독수리 털로 되었는지
아니면 닭털로 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겠소.’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알기도 전에 온 몸에 독이 번져 죽고 말 것이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는 이 소견 때문에 나를 따라 수행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은 있다.
또 나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와 법에 맞지 않으며,
수행이 아니므로 지혜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
열반의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한결같이 말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이다.
어째서 내가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하면,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수행인 동시에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며 열반의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고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말룽캬를 비롯하여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중아함경』 「전유경」
실제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현대 과학도 결정적인 답을 줄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불교는 죽은 후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불교의 윤회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또는 우리 마음의 세계를
보다 더 바르게 알고 깨닫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것들과 정신적인 것들은
매순간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부처님은 이러한 것을 무상이라고 했다.
‘나’라는 존재 역시 이 무상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과 몸도 삶과 죽음의 끝없는 윤회의 바퀴를
돌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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