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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에게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전보(電報)[십일월 이십칠일]를
오늘 오후에야 받아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요즘의 내 건강과 주위 여러 가지 형편이
나를 부자유(不自由)하게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게 가장 은혜로운 분은 작은 아버지시다.
나를 교육(敎育)시켜 눈을 띄워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할머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법당(法堂)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이일 저일 생각하니 내가 진 빚이 한량이 없구나.
불효(不孝)하기 그지없고 ―.
아버지를 여읜 애통(哀痛)과
장례(葬禮) 일로 네 수고가 많을 줄 믿는다.
이제는 홀로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사(家事)도 보살펴드려야 할 것이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더니,
가는 길이 서로 달라 어쩌지 못함이 안타깝고 죄스러울 뿐이다.
어머님을 잘 위로해드려라.
나는 오늘부터 아버지 명복을 불전(佛前)에 빌기로 작심(作心)했다.
사십구일(四十九日) 동안
불교의식(佛敎儀式)에 따라 기도를 드리는 일이다.
가신 분의 은혜에 보답(報答)하는 내 도리요 정성인 것이다.
이제는 집안일을 어머님과 성남이와 네가 서로 의논해
가면서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남은 식구들끼리 서로 위해가며 화합(和合)해서 살기 바란다.
세상일이란 꿈결처럼 덧없고 기약 없기 때문에
후회 없도록 떳떳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겨울 안거(安居)가 지나야만 출타(出他)를 할 수 있으므로
봄에 찾아볼까 한다.
어머님을 잘 모시고 위로하기 바란다.
당장에 가 뵐 수 없음이 진심으로 죄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네 수고가 많았겠다.
건강에 유의하기 바란다.
1970. 11. 27 밤
법정 합장(法頂 合掌)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를 향한 절절함과
남은 식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이 듬뿍 담긴 사부곡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법정 어른 스님께서
스님 어머니를 22년 동안 모신 동생에게 보낸 편지글을 묶어 엮은
<법정 스님 편지 ‘마음 하는 아우야!’>에서
엮은이 박성직님과 녹야원 허락을 얻어 모셨습니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1년 05월-
ㅡ 법정 스님 <산방한담(山房閑談)>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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