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화 보살에게
맑게 개인날 아침
청소하고 빨래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오두막의 살림살이가 아주 충만하네.
불일 서점으로 보내준 책과 차 감사히 받았네.
송내과 보살님께 고맙다는 말 전해주게.
소로우의 윌든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자연의 은혜 속에 사는 처지에 공감한 바가 컸네.
봄에 심어놓은 묘목 사이에 망초가 무성하게 올라오고 있는데
풀씨가 새들의 양식이 된다는 글을 읽고 나서 그대로 두고 보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건강한 여름이기를.
1993년 6월 19일
강원도 오두막에서 합장
도량에 풀 베고 나서 차 한 잔 아주 향기롭게 마셨네.
차는 출출한 공복에 물을 빠듯이 부어 마셔야
차의 진국을 맛볼 수 있네.
공연히 물을 많이 부어
맛없는 차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네.
지난번에 보내준 책
살아서 지금 있다는 것에 감명 깊게 읽었네.
저자 중야씨에게 신뢰감이 가네.
송내과 보살님께 고맙다는 말씀 전해주게.
어제는 삼십리 밖 장에 가서
두부 한모, 아옥 한단,
식빵 한 줄, 낫 한 자루, 연필 두 자루를 사 왔네.
소나기 지나가더니
다시 개울 물소리와 새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오네.
나는 이 여름을 잘 지내고 있네.
더위에 베토벤 식구들 두루 건강하기를.
1993년 6월 27일
강원도 오두막에서 합장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1년 07월-
ㅡ 법정 스님 <산방한담(山房閑談)>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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