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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이변
입 벌려 말하기보다 입 다물고 잠잠히 있을 때
삶의 밀도 같은 것을 느낄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쓰는 일보다는 읽는 일이 더 즐겁고,
읽는 일보다는 이만큼서 바라보며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가득 차 있는 것보다도
오히려 텅 빈 데서 존재의 알맹이를 보게 되고,
밖으로 드러난 현상에 눈을 팔기보다
소리 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
우주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시끄럽습니다.
이 소리 저 소리에 팔리다 보면
제정신을 가누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된 소리 안 된 소리에 묻히면 자기 자신의 소리를 잃고 맙니다.
그저 남의 소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들의 삶을 우리들 스스로 살지 못하고
무엇엔가 떠밀려 살게 될 때,
소중한 우리 인생은 마치 남의 삶처럼 시들해지게 마련입니다.
요즘은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물음을
이따금 아는 사람들로부터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에 시끄러움을 더 보태는 일 같아서
좀 쉬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되풀이되는 인습과
일상적인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어 쉬는 것입니다.
인습과 타성에 찌들면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뻔뻔스러워지고 무디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한낱 티끌이나 소음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내 삶에 성이 차지 않을 때 나는 입을 다뭅니다.
밖으로 향했던 관심과 시선을 안으로 돌립니다.
묵은 밭을 일구듯이 내 속뜰을 다시 경작합니다.
벽을 향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묵묵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합니다.
마음의 바다에 부침하는 사물들을
지켜보면서 스스로를 텅텅 비웁니다.
텅텅 비워버려야 새로운 메아리가 울려옵니다.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세계에 마음을 쓰고 그것을 두둔하게 되지요.
이 세상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매인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듭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할 수도 있고
가난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사는 일이 즐거움일 수도 있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주재하는 것은
그 어떤 외부적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불안정하면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고 맙니다.
내가 하는 일과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말하기를,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울러 살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기도 하지요.
서로가 기대고 의지하면서 얽혀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서로서로의 이웃입니다.
… (중 략) …
<「물소리 바람소리」중에서>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1년 03월-
ㅡ 법정 스님 <산방한담(山房閑談)>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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