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8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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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 중구 정동 5-1 궁중유물전시관 |
소재지 | 궁중유물전시관 |
지정일 | 1985.01.08 |
수량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덕수궁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각 및 문.
중화전은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고 중화문은 중화전의 정문이다. 광무 6년(1902)에 지었으나 1904년 불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중화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집. 중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집.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으로 정령(政令)을 반포하고 조하(朝賀)를 받던 곳이며, 중화문은 궁궐의 중문(中門)이다.
1904년 큰 불로 대내(大內)가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 때 정전 일곽도 모두 타버렸다. 현재의 중화전은 1904∼1905년 사이에 중건되면서 원래 2층이었던 것이 1층으로 되었다.
화강암을 높이 쌓은 이중 기단 위에 다 시 댓돌 1단을 쌓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아 지은 단층의 목조건축으로,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기단의 둘레는 난간을 두르지 않았으며, 사방에 계단을 설치하고 남쪽계단 앞쪽의 어로(御路) 양옆에는 각각 품계석(品階石) 12개씩을 배열하였다. 건물의 정면은 어간(御間)만 18척이고 나머지 칸은 모두 14척이다.
가구(架構)를 보면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짜 맞추고 그 위에 평방을 놓았으며, 기둥머리에 포작(包作)을 짜 올리고 다시 주심포(柱心包) 사이 어간에 3개, 나머지 칸에 2개씩의 공포를 배열하였다.
포작의 수는 외칠포(外七包)·내구포(內九包)로, 출목수로는 각각 외삼출목(外三出目)·내사출목이다. 밖으로 내민 포의 형태는 가늘고 연약하여 보이며, 안쪽의 포는 구름모양을 이루고 있다.
천장을 구성하고 있는 가구는 맨 바깥쪽의 평주(平柱)와 안쪽의 고주(高柱) 사이를 퇴보〔退梁〕로 연결하고, 고주끼리는 대들보로 연결하였으며, 이 위에 다시 중보〔中梁〕를 거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중보 위치에 소란반자를 가설하여 서까래가 드러나지 않게 하였다.
한편, 뒷줄에 있는 고주 사이에 어좌(御座)를 놓은 당가(唐家, 일명 닫집)를 설치하였는데 어좌 위에 떠 있는 보개(寶蓋)를 부당가(浮唐家), 어좌를 받치고 있는 대를 좌탑당가(座榻唐家)라고 부른다.
당가의 천장에는 쌍룡을 새겨 놓았다. 건물의 입면은 사방을 모두 창과 문으로만 두르고, 창과 문에는 소슬빗꽃모양의 살을 마련하였으며 이 위에 다시 교창(交窓)을 냈다.
중화문 역시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화전이 중건될 당시 재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전과 같이 평면 규모에 비해 기둥 높이가 훤칠하여 다른 궁궐문에서 볼 수 없는 비례감을 보여 주는 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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