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0.jpg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 안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각. 정면 9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침전)이다. 광무 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 불에 타,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평면은 ㄱ자형으로, 그 중심이 되는 방의 평면은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이 좌우에 온돌방과 또 그 옆으로 누마루를 두었고, 이들 전면과 후면에는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이러한 평면의 모양은 궁궐의 정침(正寢)이 가지는 공통된 것이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네모뿔대로 다듬은 초석을 놓고, 귀접이와 쌍사밀이를 한 방주(方柱)를 세11119.jpg 웠다. 기둥 윗몸은 모를 둥글게 죽인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고, 기둥 위에는 운두가 낮은 주두(柱枓)를 놓고, 기둥 윗몸으로부터 초각(草刻)된 부재를 놓아 끝머리가 초각된 보머리〔樑頭〕를 받치게 한 몰익공식의 건축이다.

 

보머리 안쪽 보 밑은 초각된 보아지로 받치고 있다. 단면이 둥근 굴도리 밑에는 장여를 놓고, 이 장여를 창방 위에 놓은 소로〔小累〕들이 받치고 있다.

 

가구(架構)는 내진(內陳)에서는 고주(高柱)와 앞뒤 평주(平柱) 사이에 퇴보〔退樑〕를 걸고 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건 뒤,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있는데, 종보 밑에는 우물천장을 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다.

 

사면 모든 칸에는 벽체를 치지 않고, 井자살창과 교창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의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으로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