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2.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일곽의 구들에서 연결된 굴뚝.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이라 하였다. 아미산은 원래 중국 산동성 박산현(山東省博山縣)에 있는 유명한 산인데 이를 상징적으로 붙인 것으며,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後苑)이 된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2단씩의 장대석 석축을 네 층으로 쌓고 그 위에 괴석의 석분(石盆)과 석지(石池) 등 석조물을 배치하였다. 주위에 화초들을 심었는데 이 남쪽에 6각형의 굴뚝 4기가 남아 있다. 이 굴뚝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벽돌을 30단 또는 31단으로 쌓고 6각의 각 면에는 네 가지 종류씩의 무늬를 구성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1869년(고종 6)에 재건하였다. 1876년 또 다시 소실되었으나 1888년에 복구되었다. 그러나 1917년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 일곽이 불에 타버리자, 일본인들은 그것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 그 재목으로 대조전을 재건하였으므로, 이 굴뚝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면적이 넓을 경우는 회벽에 제각기 따로 만들어 구운 소조편(塑造片)을 이용하여 무늬를 구성하였다. 면적이 좁을 경우에는 네모 반듯한 벽돌무늬를 만들어 하나씩 끼워 넣었다. 그 소상(塑像)의 형태도 세련되었고 화면의 구성도 아름다워 굴뚝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교태전 후원의 장식물로서의 효과도 겸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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