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86.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 있는 조선 후기의 궁문 및 행각. 근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중층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 보물 제812호. 1395년(태조 4)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바로 앞 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으로 향하는 주출입문의 구실을 하였으며, 행각은 문의 좌우에서 직각으로 꺾여 정전건물을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이 문의 남쪽에는 금천교(錦川橋)·홍례문(弘禮門), 그리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다.

조선 후기에 중건되면서 창건 당시의 위치를 그대로 지켰으나 행각의 규모, 부출입구의 위치 등이 약간 달라졌다. 석조기단을 낮게 꾸미고 여기에 세 벌의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기단 위에 원형의 잘 다듬은 주춧돌을 놓았다.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외이출목·내삼출목의 공포를 짰다.

포작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각각 3구씩 올려놓았으며 기둥머리에는 안초공(按草工 : 기둥머리에 끼워 상부의 주심포를 받드는 부재)을 새겼다. 쇠서의 날카로운 곡선, 내부살미의 운궁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지붕의 각 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추녀마루에 잡상(雜像)·선인(仙人)·용두(龍頭)를 두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 매머리모양의 장식)를 놓았다.

행각은 창건 때는 단랑(單廊)이었던 것을 중건하면서 복랑(複廊)으로 꾸몄으며, 창건 때 남쪽 행랑 양끝에 있던 일화문(日華門)·월화문(月華門)도 중건하면서 근정문의 바로 좌우에 잇대어 설치하였다. 낮은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는 간결한 초익공(初翼工)을 짰다.

내부의 가구(架構)는 5량(五樑)집이며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외부 벽체는 하부를 사고석쌓기로 하고, 상부에는 회벽 중앙에 빗살이 있는 창을 대었는데 창의 형태는 장방형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한 특이한 모습이다.

동쪽과 서쪽 회랑의 앞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위치에 각각 돌출한 융문루(隆文樓)·융무루(隆武樓)라는 누각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남문 중 유일하게 중층지붕의 건물이며, 행각도 다른 건물과 달리 복랑으로 구성되어 정궁으로서의 위엄을 살린 점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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