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9.jpg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로 몸통 전체를 모깎기 방법을 사용하여 8각의 모를 이룬, 높이 40.6㎝, 아가리 지름 7.6㎝, 밑 지름 11.5㎝ 병이다.

 

 몸체 전면을 모깍기 방법으로 성형하여 팔각(八角)의 모를 이룬 병(甁)으로 길게 뻗은 목과 도톰하게 마무리진 입, 그리고 어깨로 부터 벌어져 둥근 몸체를 이루었으며, 높고 넓은 굽다리를 갖춘 대병(大甁)의 하나이다. 문양(文樣)은 밝은 청화(靑畵)로서 몸체의 대칭되는 양면 중 한쪽에는 한그루의 자그마한 대나무를, 다른 한면에는 여러 그루의 대나무를 한줄의 지문(地文)위에 간결하고 품위 있게 그렸는데, 유색(釉色)은 담청색(淡靑色)을 머금은 백자유로 전면에 곱게 시유하여 광택이 있고 굽다리 측면에는 [井]명(銘)이 음각되어 있으며 굽다리에는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각이 진 병(甁)과 청화문양(靑畵文樣) 그리고 담청색(淡靑色)의 유색(釉色)으로 보아 18세기전반(18世紀前半)인 영조년간(英祖年間)에 경기도 광주지방(京畿道 廣州地方)의 금사리요(金沙里窯)에서 주병용(酒甁用)으로 제작된 대표적(代表的)인 작품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18세기(世紀) 전반(前半)의 이러한 청화백자각병(靑華白磁角甁)은 그 예(例)가 더러 있으나 대체로 소병(小甁)이며 이와같이 당당한 품격을 갖춘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이 시대의 청화문양(靑畵文樣)도 대개 난초계 문양인데 이 병(甁)은 활달하면서 운치있는 죽문(竹文)으로 병(甁)의 형태(形態)에 걸맞는 그림을 갖추고 있다.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선비들의 기개를 잘 나타낸 이러한 각병(角甁)은 조선후기 문화(文化)가 꽃피는 18세기전반(世紀前半)의 시대적인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