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와 이혼
사회에 의하면 결혼이란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
취소될 수 있는 두 개인 간의 계약입니다.
그와 같이 한정된 결혼관에 입각하여 볼때
사회가 결혼관계를 취소하고
또 결혼이 어떻게 성취되는가
알아보기 위해 시험적으로 결혼을 하기 위한
여러가지 종류의 구실을 찾아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혼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주님을 찾아갔을 때
주님은 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19:4-6)
말라기 제2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결혼이란 인생을 위한 것이며 별거와 이혼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별거 또는 이혼사유에 대한 예의를 예시해 주셨으며
사도 바울도 그에 대한 예외를 언급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서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5:32).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고전 7:15).
성경에 의해 허락된 예외 기준에서 엄격하게 취소되는 결혼은 극히 드뭅니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성경말씀에 따라 살기를 결심할 때
결혼에는 좀처럼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본 회퍼가 결혼할 여조카에게 한 말을 다시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결혼의 불변성을 보장해 주신다.
어떠한 유혹과 어떠한 인간의 약점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것을
분리시키거나 취소시킬 수 없다. 진실로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신자들은 저들이 시당국에서 허가하는 기준과 다른 결혼기준을
그리스도의 이름을 취하여 받아들인다는 사실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찬없는 곳에서,또는 그릇되고 불실한 크리스찬이
있는 곳에서는, 당국이 저들에게 저들의 아내를 떼어두고 다른 아내를
취하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저들이 이혼으로 인하여 크리스찬의 자격을 잃고
불신앙자가 되어 정죄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어떠한 사람도 놀라지 않을 만큼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대가 있습니다.
즉 결혼이 분리될 수 없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일생동안 구속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불행한 결혼이 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와 같은 처벌이 선택이 결심한 젊은이들의 변덕에 대해
너무 가혹하다는 말을 듣지 맙시다.
그러한 변덕은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모든 인간관계를 농담도 부주의한 것으로
그리고 관능적인 희열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한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설사 진실로 결백한 사람이 불행한 결혼의 짐을 짊어진다 하더라도
고통 가운데서도 그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게 복종하여 가장 유익한 정결을 쌓고 도덕을 닦았기 때문에,
세속적인 행복을 위해 상실했던 세월을 다시 영원히 얻게 됩니다.
개인의 행복을 결혼의 주요목표와 목적으로 세우는 사람들은
이것이 겨닐 수 없을 만큼 가혹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꼐"께서 그것을 너무 가혹한 것으로 간주하고 계시는가가 의문입니다.
만일 이것이 하나님이 목적을 성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면,
하나님게서는 기꺼이 당신의 백성에게 고생을 참으라고 요구하실 것입니다.
결혼의 안정성을 하나님의 제도로 보존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불행한 결혼을 참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시대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결혼의 전체적인 파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조류를 사회전반에서 떼어낼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우리 주변의 세상에서 유행하는 기준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목사님들이나 카운슬러들은 불쌍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약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크리스챤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을 견디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혼의 죄악은 개인 자신에게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이혼율이 미국의 전국 평균치가 거의 두배나 되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일반질병과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의 산모및 어린이의 자살이
이혼한 사람들 중에 현저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사회전반에 행하여진 죄악은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이혼을 찬성하는 법률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법률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사랑의 정신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정신입니다.
결혼은 모든 사회의 귀중한 초석이요 추춧돌이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파괴적인 정신이 이혼법률에 아주 강력하게 표명되어 있습니다.
만일 무력이나 교묘한 간첩 행위로 국가를 좀먹는 일이 가능하고,
도덕을 바람결에 던져 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종교를 잃고
결혼의 유대를 풀어놓으며 거룩하게 정해진 모든 인간의 번영과
행복의 기초를 파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아주 크고 치명적인 어리석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악 중에서 가장 큰 죄악은
그리스도와 권세와 지배에 대한 반항입니다.
왜냐하면 이혼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라져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19:6).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깊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주 근엄하게 변경하는 사람은
커다란 영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합니다.
사도들은 저들에게 영원한 것을 위해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을
희생하라고 촉구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후회보다는 고독이나 고통의 생애가 훨씬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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