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0.jpg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13.5m.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1909년경 우리 나라에 대사로 와 있던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에 의하여 일본 동경(東京)으로 불법반출되었다가 그 뒤 반환되어 오랫동안 경복궁 근정전회랑에 방치되었는데, 1959년 재건에 착수하여 1960년 완공을 보게 되어 현 상태로 보존하게 된 것이다.

 

이 석탑은 부재(部材) 전체가 회색의 대리석인데, 현 지대석은 본래의 것이 아니고 재건 때에 맞춘 것이다. 탑의 구성은 기단부 위에 탑신부와 상륜부가 건조되었는데, 각 부는 그 평면과 부재의 구조 등에서 각기 특수한 건조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3층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평면은 사면두출성형(四面斗出星形)의 亞자형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층의 면석에는 각기 불(佛)·보살·인물·초화(草花)·반룡(蟠龍) 등을 조각하였으며, 각 모서리〔隅角〕에는 절목원주형(節目圓柱形)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각 층이 같은 형식으로서, 측면은 굽형을 노출시키고 상하에는 연화문을 조식하였는데, 삼층의 갑석만은 상단부에 난간을 돌리고 그 위에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일반형 석탑에서의 탑신 굄대와도 같은 의장(意匠)의 가구(架構)인 것 같다.

탑신부는 10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초층과 2·3층은 기단부와 같이 사면 두출성형의 亞자형을 이루었고 그 위의 4층부터는 방형이다. 4층부터의 체감은 없는 편이나 초층과 2·3층에서는 감축(減縮)을 느낄 수 있다.

 

탑신의 구조는 각 옥신 위에 옥개석을 겹겹이 쌓았는데, 옥신석의 각 모서리에는 원주형을 모각하고 각 층, 각 면에는 십이회상(十二會相)을 조각하여 불·보살·천부(天部), 기타의 문양을 빈틈없이 전면에 조각하였다. 그리고 각 층 옥신석 하단부에는 높직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데, 이것도 옥신굄의 의장일 것으로 여겨진다.

 

각 층의 추녀도 전각부(轉角部)에 이르면서 곡선을 보이고 반전을 일으켜서 경쾌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단조로운 형식으로 평면은 원형이며, 노반과 연주문형(連珠文形)의 복발, 그리고 앙련(仰蓮)으로 된 앙화(仰花)가 있고 그 위에 보탑형(寶塔形)과 보주가 있다.

이 석탑은 세장(細長)하고 또한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것 같으나 3단의 기단부와 3층까지의 탑신이 안정된 亞자형을 이룬 평면이고, 또 3층까지의 체감이 뚜렷하여 오히려 경쾌하고 날씬한 가운데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각 부재(部材)세부의 조각은 부분에만 그치지 않고 기단 탑신부 할 것 없이 전면에 가득 차 있는데, 이들 조식(彫飾)은 장려하고 변화가 많으며, 전체의 균형 또한 우미하여 고려시대의 석조탑파 중 가장 특이하고도 정련한 기교를 보이고 있다.

초층 옥신 이맛돌에 조탑명(造塔銘)이 새겨져 있는데, ‘至正八年戊子三月日(지정8년무자3월일)’이라는 기명(記銘)에 의하여 그 건립연대가 1348년(충목왕 4)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은 이 탑의 양식 수법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진다.

 

9063.jpg

 

9062.jpg

 

90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