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마산시 진북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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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남도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 여항산(餘航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8년(신문왕 8)에 위웅대사(爲雄大師)가 창건하여 봉덕사(奉德寺)라 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으며 선종(禪宗)에 속하였다.
의림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달리하고 있어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삼국통일 직후인 688년(신문왕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창건하였다는 두 설이 있다. 두 내용 모두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나 현재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 9세기 양식을 지니고 있어 늦어도 이 때는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사중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림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봉국사(奉國寺)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신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자 인근 각처에서 의병이 숲처럼 모여 들었다고 해서 사명을 의림사(義林寺)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또한 1530년(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림사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법등을 밝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림사가 조선시대 중후기에 들어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음을 1797년(정조 21년)에 반포한 ‘장용영공문(壯勇營公文)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은 진해 현감 명의로 된 일종의 공문서인데 이 내용에 ‘본영(本營)의 침해가 있어 사찰이 폐사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으므로 이후로는 납징, 즉 일종의 세금을 모두 없애겠다’는 훈령이 담겨 있다. 이 내용으로 이루어 볼 때 원래 이 지역이 수군의 기진인 수영(水營)이 자리한 곳으로 수영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물품들을 의림사에 과도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절 살림이 어려워지고 결국 스님들이 떠나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1799년에 나온‘범우고(梵宇攷)’에‘의림사는 여항산에 있다’고 하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가람고(伽藍考)’에 ‘의림사는 군에서 북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다’라고 나와 있다. 또한‘대령지(大領志)’에도 의림사의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어 조선시대 후기에 중창된 후 계속 존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호국사명을 지닌 의림사도 오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풍란을 겪었으니 1950년 6.25전쟁 이후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새롭게 중창된 후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조선 후기 영조·정조대 이후에 제작된 〈의림사도형 義林寺圖形〉이라는 채색지도를 통하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지도는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지도에는 법당·노전(爐殿)·시왕전·나한전·국사영당(國師影堂)·청원루(淸遠樓)·영원당(永元堂)·금장각(金藏閣)·북암(北庵)·남암(南庵) 등이 있었고, 그 이전에 세웠던 보광전·관음전·천왕문·청하당(淸霞堂)·백하당(白霞堂)·만월당(滿月堂)·망월암(望月庵)·동암(東庵)·해행당(解行堂)·미타전 등이 경내외에 있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월정암(月精庵)·옥계암(玉溪庵) 등의 산내암자 7개를 거느린 대찰이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모두가 6·25 이후 중창, 건립된 것으로, 대웅전·산신각·승당·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층석탑과 부도 3기가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相輪部)는 본래의 것이 아닌 자연석을 올려놓았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또 부도는 의림사 앞쪽 300m 지점의 야산 기슭 경작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석종형(石鐘形)과 원통형 옥개(屋蓋)를 갖추고 있으며 가운데 부도에 판독하기 어려운 각자가 있다.
사찰풍경
봄이면 한껏 흐드러진 벚나무 그늘이 가람을 드리우고 여름을 거쳐 늦가을까지 이름모를 야생화로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 의림사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다름아닌 한 그루의 모과나무 때문이다.
대웅전 뒤편 삼성각 아래 늠름한 기세를 하고 있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 의림사 모과나무는 수령이 250살이나 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성한 열매를 자랑해 인근 마을 사람들과 참배객들에게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드물게 잘 자란 생김새를 갖춘 탓에 대웅전 석가모니불 다음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이곳에 가면 모과나무 아래에서 경건히 합장하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심심챦게 볼 수 있는데 이 합장 배례가 삼성각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삼성각보다 훨씬 융융한 자태로 솟아오른 모과나무에 절을 올리는 것인지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이니 이 또한 의림사를 찾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주변 초등학교 아이들의 소풍 장소로 안성맞춤인 의림사 경내로 들어서면 삼성각 앞에 늠름하게 서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위용의 이 모과나무는 1985년 1월 경상남도 기념물 7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로 대웅전 오른 편 언덕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홀로 서 있는데, 키가 10m에 이르며 가지들이 15m 가까이 퍼져 나갈 정도로 위용을 자랑한다. 이쯤 되면 나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과나무 가운데 가장 큰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뿌리가 솟구쳐 오른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뉜 모과나무 특유의 주황색 얼룩을 가진 줄기는 단단한 느낌을 주며 건강함을 보여준다.
줄기가 근육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골이 패어 있어 오래된 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이 모과나무는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어 주변으로 즐비한 작은 돌탑들을 볼 수 있다.
교통안내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를 나와 고성, 통영방면으로 16km를 가면 진동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진북 방면으로 향하야 진북마을애서 6km 정도 가면 14번 국도변 오른쪽에 해병대 진동리 지구 전적비가 우뚝 서 보이고 이 사이에 있는 의림사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의림사에 가 닿을 수 있다.
도로 입구에서 절까지는 대략 4㎞ 남짓한 거리로 길옆으로 펼쳐진 보리밭 풍경이 마치 고향의 품처럼 포근하게 해준다. 도로 왼쪽으로는 낮은 산이 산그늘을 드리우고 아스팔트 포장길을 십리쯤 가면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오고 포장길에 들어서면 철 울타리 안에 있는 의림사 부도 4기를 먼저 만날 수 있다.
부도를 지나 100m 오른쪽 의림사 당간지주를 지나면 하늘을 가린 100m쯤 되는 벚나무 길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어서 아름다운 정취가 묻어 났지만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길이 의림사 입구까지 가 닿는다.
찾아 가기
마산 -> 통영·고성방면 국도 -> 진북 지산리 ->진북면사무소 -> 인곡마을 -> 의림사 -> (인곡- 저수지)
대중교통편
일반버스 : 마산시내버스 86번
좌석버스 : 마산시내버스 38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