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부안군 산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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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중계리 변산 쌍선봉(雙仙峰, 妙寂峰)에 있는 절.
〔창 건〕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월명암은 변산의 제 2봉인 쌍선봉(498m)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월명암은 692년(통일신라, 신문왕 12)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부설거사는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온거사와 더불어 세계 3대 거사중의 한 분이시다.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신 분이기에 더욱 뜻이 깊다고 하겠다. 재가자도 득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기에 일반 민중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중 수〕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성암화상(性庵和尙)이 크게 고쳐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나 한말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일본군과 싸울 때인 1908년에 다시 불타버리자 중고선사(中故禪師)가 어렵게 다시 절을 세웠다.
그러다가 8.15 광복 후 여순반란군이 이곳에 들어와서 6.25직전, 그들 반란군에 의해 또다시 불에 타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1954년 원경(圓鏡)스님이 군내 각 기관의 협조를 얻어 지금과 같은 작은 규모의 암자나마 다시 보게 되었다.
월명암 사성선원의 옛 이름은 봉래선원이다. 근대 고승이었던 학명 용성 행암 고암 해안 월인 만허 소공 서옹 향봉 탄허스님 등이 참선 정진하였다. 학명스님은 1915년 월명암으로 와 선원을 열고 선풍을 일으켜 봉래선원을 개원하였다. 학명스님은 봉래선원에서 10년 동안 머물기로 서원하고 조실로서 납자들을 제접했다.
학명스님은 1923년 봉래선원 아래 양진암에서 만해스님을 만나 “이 세상 밖에 천당은 없고/ 이 인간에는 지옥이 많다/ 장대 끝에 우두커니 섰을 뿐으로/ 어찌 한 걸음 내딛지 않는가”라는 글을 받고 봉래선원을 떠나게 된다. 내소사에서 출가한 해안스님은 1925년 중국북경대학에서 2년간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내소사 월명암을 오가며 선정삼매에 들었다.
1927년 해안스님은 내소사 주지를 부임하면서 학명스님에 이어 봉래선원을 호남제일선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로 월명암이 전소돼 폐허가 되고 말았다. 전쟁이후 원경 월인 해안 소공 도전스님 등이 관심을 가지면서 새롭게 복원되기 시작했다.
1983년 제6대 중창주 종흥스님이 월명암에 주석하면서 복원불사에 진력, 사성선원을 열었다. 선원에서 대중들이 여법하게 정진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께부터다. 이 때부터 비구 스님 10여명이 정진해왔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한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太古寺), 백암산 운문암(雲門庵)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靈地)로 손꼽히는 곳이며, 봉래선원(鳳萊禪院)이 있어서 근대의 고승인 행암(行庵)·용성(龍城)·고암(古庵)·해안(海眼)·소공(簫空) 등이 수도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당우와 유물〕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산신각(山神閣)·운해당(雲海堂)·수각(水閣)·요사채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쌍선봉 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묘적암(妙寂庵)이 있다.
이 중 운해당과 묘적암, 요사채는 최근에 주지 종흥(宗興)이 신축 또는 중수한 것이다.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으나 묘적암 위쪽에 있는 2기의 부도(浮屠)가 주목된다.
사찰측에서는 이 부도 중 왼쪽에 있는 석종형 부도가 부설의 사리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부설전 浮雪傳〉에는 그가 죽은 뒤에 다비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 기슭에 묻었다는 기록이 있다.
절의 앞쪽으로는 의상봉(義湘峰)과 가인관음봉(佳人觀音峰) 등의 암봉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고, 법왕봉(法王峰)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 광경이 빼어나다.
부설거사
경주에서 태어난 부설거사는 계행과 경학에 뛰어났으며,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도를 하셨던 분이다.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도하고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묘법을 얻고자 만행을 떠나는 중 지금의 김제 성덕면 부서울 지역의 무구원이라는 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다.
불심이 지극하였던 무구원은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대접하고 밤새 불법을 청해 듣게 된다. 무구원에게는 총명하고 미색이 뛰어난 19살의 묘화라는 벙어리 딸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리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묘화는 자신의 말문을 열게해준 부설을 사모하여 같이 살고자 하였으나 스님의 신분인 부설이 이를 들어줄리 만무하였다. 부설이 거절을 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한다. 딸의 자살기도를 목격한 무구원이 스님에게 간절히 요청하자 스님은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따라 제도하는 것이라 생각으로 묘화와의 인연을 받아들인다. 중생제도를 위해 환속을 하였지만, 환속 중에서도 끊임없는 수도로 깨달음의 길에 이르게 된다.
부설과 묘화는 부부의 연을 맺은 다음 등운과 월명을 낳았다. 이후 두 사람은 망해사에 기거하다 내변산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수도에 전념하였다. 한참을 지난 후 지난 날의 도반인 영조와 영희가 오대산에서 수도를 마치고 부설을 찾아왔다. 이때 부설은 아들 등운에게 질그릇병 세 개에 물을 가득 채워서 대들보 위에 달아두게 한 후, 영조와 영희와 더불어 도력을 시험하게 되는데 영조와 영희가 병을 돌로 치자 물이 아래로 흘러내렸는데, 부설이 병을 치자 병은 깨어지고 물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이때 부설은 영조와 영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환신(幻身)이 생멸(生滅)을 따라서 옮는 것이 병이 부서지는 것과 같고 진성(眞性)이 본래(靈明)하여 상주(常主)하는 것은 물이 허공에 달린 것과 같다. 이렇게 부설은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들에게 보이고 나서 단정히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이러한 부설의 삶을 목격한 아들 등운(登雲)은 충청도 일원에서 크게 법을 펼친 유명한 조사(祖師)가 되었다. 딸 월명(月明) 또한 수도를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월명이 수도한 곳이 지금 부안의 월명암인 것이다.
묘화부인 또한 부설원을 세우고 부설거사의 명복을 빌다가 용맹정진을 다해 110세 까지 장수를 누리다가 고요히 입적하였다. 이와 같이 부설거사는 그의 부인 묘화와 아들 등운, 딸 월명 등 일가족이 모두 해탈하여 호남 충청 지방에서 법을 진작시키는 크나 큰 자취를 남긴다. 가족전체가 해탈을 이룬 것은 유마거사나 방거사와는 다른 일대 사건인 것이다.
교통안내
월명암은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부안 IC에서 나와 좌회전을 한다. 여기서 3km 정도 가면 30번 도로가 나오고 선은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거기서 2km 정도 가면 부안중이고 직진해서 50m 정도 가면 행안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을 한다. 부안효병원을 보면서 직진을 해서 30번도로를 계속 따라 가면 오른쪽에 부안행안우체국이 나온다. 두루막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섶못삼거리가 나오고 섶못오거리를 지나 석하삼거리 및 마전삼거리를 지나 등용삼거리까지 직진을 하면 풍력발전소가 보인가 바닷길을 따라 펼쳐진 새만금 해안의 멋진풍경을 볼 수 있다. 묵정삼거리를 지나면 새만금전시장이 오른쪽에 있다. 이 길은 바닷가를 따라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서 멋진 경치가 끝내주고,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꼬불꼬불한 길이래도 여행의 참맛을 느끼려면 차 안에서 잠을 자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애 한다. 해안도로의 참 멋과 흥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지서 삼거리까지가 IC에서부터 28km 정도 걸리면 변산면소재지에 도착하게 된다. 지서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내변산쪽으로 접어들면 해안도로와 달리 산길도로와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줄창 산이고 나무이다. 꼬불꼬불한 산길에 저마다 초록을 다툰다. 지서삼거리에서 3km 정도 가서 좌회전하면 남여치에 도착하는데 ‘참방지원센터’부터 월명암까지는 그 누구도 차를 놓고 가야 한다. 이곳 매표소에서 ‘변산국립공원’ 입장권을 끊고 2.3km의 가파른 산길을 하염없이 등산한다. 아무리 빨라도 50분 내지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평지는 거의 없고 45도 이상의 경사를 조심스레 걷는다. 가끔씩 산바람이 불어와서 쉬려고 아래를 내려보면 깎아지른 절벽이라 놀래곤 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1시간을 가면 월명암에 도착한다.
* 고속버스
서울(강남 터미널) - 부안
6시50분부터 19시30분까지 50~60분 간격, 274.9km, 3시간10분소요, 12,000원.
입장료 <남여치 탐방센터>
구분학생, 군경, 청소년어린이 7- 12세개인 1,600원600원300원단체 30인 1,400원500원2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