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청원군 문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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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문화재청 |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구룡산(九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신라 때 의상(義湘)이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여오나 1550년(중종 25)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월리사에 대해 언급된 내용이 없다.
그러나 이후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호서읍지』, 『문의읍지』 등 조선후기의 각종 지리서에는 월리사에 대한 간단한 기록과 위치 설명이 보인다. 따라서 적어도 조선후기에는 절의 법등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월리사의 연혁에 대해서 절 입구 왼쪽 언덕에 서 있는 사적비의 내용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665년(현종 6)에 세워진 사적비에는 형강(荊江) 동쪽 구룡산에 절이 있는데, 이름을 월리사라 한 것은 절이 높아 달에 가깝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절 아래에 월동사(月洞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1645년(인조 23) 명현원학(明玄元學)대사에 의해 현위치로 옮겨 법당을 짓고, 금불상과 승방, 선실을 짓는 등의 중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창이후 절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였겠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해서 짐작해볼 따름이다. 대웅전 처마끝의 암막새 기와에 1730년(영조 6)에 해당되는 글씨가 보여 이때 대웅전이 중수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절에 소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1837년(헌종 3)과 1897년(광무 1)에 조성된 탱화가 있었다고 전하니 중창이후 불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1972년에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1997년에 대웅전의 기와를 새로 입히고 단청을 했으며, 1998년에는 삼성각을 완공했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요사채가 있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지붕에 다포(多包)건물로서 조선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내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90㎝의 석가여래좌상과 1897년에 조성한 후불탱화(後佛幀畵), 1838년(헌종 4)에 조성한 신중탱화(神衆幀畵)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의 문화재로는 목조위패함(木造位牌函), 부도(浮屠) 1기, 사적비, 동종 등이 있다. 목조위패함은 높이 140㎝에 4층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각기 다른 조각을 정교하게 새기고 있는데 불교의 위패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조선 중기 이후의 작품이다.
또 부도는 높이 60㎝의 석종형(石鐘形)이며, 동종은 상부에 범자(梵字)를 새기고 중앙에 합장한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조각한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작품이다.
〔사찰풍경〕
끝없이 이어지는 맑은 물과 호수 위에 섬처럼 떠있는 야산 그리고 새벽이면 물안개가 자욱이 떠오르고 낮에는 쪽빛 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곳이 대청호다.
월리사는 이 대청호를 끼고 있는 구룡산 서쪽, 이른바 샘봉산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청호가 가둬둔 물이라면 월리사로 가는 길은 비탈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요동친다.
월리사에 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구룡산 월리사를 알리는 표석과 ‘이곳은 불존(佛尊)이 있는 특별한 구역이니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적어 놓은 금비(禁碑)다. 아마도 공양미 자루를 머리에 이고 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걸어서 절을 찾던 옛 아낙들은 이쯤에서 버선발에 힘이 모이고 노는 입에서는 저절로 염불이 흘러 나왔을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월리사의 창건주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다. 구름을 벗 삼아 이곳 샘봉산 아래 절을 짓고는 보름달의 청정함에 큰 깨달음을 얻어 월리사라는 이름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월리사는 1632년(인조 10)경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서승람 불우편에 월리초막(月裡草幕)이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지도서』, 『호서읍지』 등에도 잇따라 등장한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법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월리사에는 1665년(현종 8) 절을 중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월리사사적비』가 남아 있다.
월리사는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사찰로 자연의 풍광을 거스르지 않는 전각들이 천상 고졸한 산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다. 월리사에 있는 전각은 대웅전, 삼성각, 요사 등 모두 3동이다. 이 중 으뜸은 하늘로 날아갈듯 한 추녀의 곡선이 빼어남을 자랑하는 대웅전으로 월리사의 중창과 함께하는 건물이다. 대웅전에 들어서 부처님께 참배한 뒤 천장을 보면 색과 선으로 표현된 천상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설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월리사의 창건주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이지만 문헌상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구름을 벗삼아 운수행을 하던 의상대사가 이곳 샘봉산 아래 절을 짓고는 보름달의 청정함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월리사라는 이름을 남겼다는 것이다. 의상대사가 샘봉산에 절을 지은 까닭은 이곳이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이 만나는 중간 문에 해당하는 전국 5대 명당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샘봉산에도 분화구가 있어 천지의 물과 백록담의 물이 서로 통하는 지점이라고 하니 남북이 갈라져 산 반세기만에 샘봉산에서 솟구칠 통일의 기운마저 고대하게 된다. 이곳이 심상치 않은 길지임을 나타내는 일화가 있으니 지난 1994년 여름 삼성각을 짓기 위해 산을 깎는 과정에서 귀가 달린 구렁이가 출현한 것을 주지 원명스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함께 목격했다는 것이다.
다른 뱀들과 함께 출현한 이 구렁이는 팔뚝 보다 굵은 몸체에 귀의 흔적이 뚜렷했다는데, 구렁이의 출현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이듬해 봄 제를 올린 뒤에야 삼성각 불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천년을 한자리에 나고 죽으며 염불소리, 법문에 귀를 열었던 것일까? 도량을 온몸으로 누볐을 그 구렁이는 육도를 돌아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불도를 이룰 것이다.
〔교통안내〕
1) 위치
월리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5번지 구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043 221-7600)
2) 교통편
■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월리사를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청원IC를 이용하는 방법과 신탄진IC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청원IC로 진입할 경우 17번 국도를 이용하여 청주 방향으로 가다 척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청남대 표지판을 따라 보은방면으로 향하면 문의면에 도착하게 되고, 청남대 매표소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청남대 쪽으로 가다 청남대 입구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고갯길을 넘으면 염티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소전방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머지않아 구룡산 월리사를 알리는 표석을 만나게 된다. 이 표석에서 절까지는 약 2km정도 거리다.
(신탄진IC를 이용할 경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신탄진 사거리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가면 대청댐 입구가 나오고, 대청댐을 건너 청주 방면으로 가면 문의면 입구에 청남대 매표소가 있다.)
■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버스를 이용할 경우 우선 청주를 거쳐야 한다. 서울에서 청주까지는 강남고속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10분~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청주에 도착하면 다시 청주터미널에서 300번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1시간 정도가면 문의면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소전리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탄 다음 절 입구에서 하차한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신탄진역에서 하차하여 대청댐 방면으로 가는 청주행 버스를 이용하여 문의면까지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