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jpg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청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불신 높이 251㎝, 머리 높이 70㎝.

비록 광배는 없어졌지만 보기 드문 거작의 완전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그 장대함에 있어서 석조좌불로서는 석굴암본존에 버금갈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조각 수법은 석굴암본존보다는 뒤떨어진다. 하지만 개태사(開泰寺)의 삼존석불입상이나 관촉사(灌燭寺)의 석조미륵보살상 등 고려 초기의 석불에 비하여 우수하다. 그러므로 대개 신라 말기의 90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 높이 대 머리의 비례는 1 : 0. 28로서 887년에 조성된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상과 비슷한 편으로 당시의 불상 비례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동화사석조비로자나불·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 등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858년의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에서부터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적 특징이다. 거구이면서도 위축되고 탄력성이 줄어든 조각 수법은 새로운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 즉, 무릎 폭이 얕고 좁아서 약간 불안정하고 위축되게 보이는 점이라든가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줄어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점은 비로자나의 지권인 (智拳印)이라고 하는 특수한 수인(手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시대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느슨하고 형식화된 수법은 의문선(衣文線 : 옷주름 선)에서도 나타난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얇게 새겨 의문선이 많이 드러나지 않고 형식적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옷주름은 비교적 유연하며 규칙적인 반복을 피하고 있다. 가슴에는 비스듬히 승각기(僧脚岐)를 입고 있고 배에는 띠 매듭이 있어 군의(裙衣)를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손 모양은 왼쪽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다른 손가락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도 주먹을 쥐고 새끼손가락이 왼손 집게손가락을 잡은 형태를 취하였다. 이 불상에서의 지권인은 꽤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단정하며 강인한 인상을 준다. 그 모습은 867년에 조성된 축서사석조비로자나불상과 유사하다.

 

대좌는 8각연화좌로서 하대는 16판(瓣)의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8각형을 이루고 그 위에는 3단의 굄돌이 있다. 위에는 높이 45㎝의 팔각간석(八角竿石), 곧 중대가 놓여 있다.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두 줄로 교차되어 있다. 그리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다른 대좌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된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위축되고 긴장감이 빠진 모습이라든지 탄력성이 적어진 세부 표현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석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불상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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