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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박해의 칼바람은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을 도성 안으로 끌고 들어왔고,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가차 없이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광희문(光熙門)은 박해 당시 이름 모를 수많은 치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내던져졌던 곳이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이곳에 내다 버려졌으며, 그때마다 문밖은 굴러 떨어진 시신이 너무 많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그의 가족이나 친지가 남녀 구별에 따라 옷을 달리 입히고, 동여매서 거적으로 싸는 정도로 겨우 매장되었다. 그러나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은 그대로 버려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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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은 조선 시대 축성 기술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호국 정신이 깃든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과 함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궁궐과 종묘를 지은 뒤 재위 4년만인 1395년 도성 축조도감을 설치하고 도성 둘레에 성곽을 쌓아 이듬해 서울 성곽의 원형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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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람이 죽으면 서울 성곽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어서, 일단 그 시신을 서울 성곽 밖으로 이전시켜 묘를 장만하여야 했다. 그리고 시신을 내보낼 때는 서소문과 광희문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광희문을 시구문, 즉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몇 차례 개축을 거쳐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1915년경에 문루가 자연 붕괴된 이래 홍예만 남아 있었는데 1966년에는 문 북쪽의 성곽 일부를 철거하고 도로를 확장하였다. 그후 1975년 서울 성곽을 다시 옛 모습대로 수축할 때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여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당시 퇴계로 확장 공사로 원래 위치보다 15m 남측으로 밀렸다.
◆ 사소문(四小門)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 동서남북에 사대문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사소문을 배치하였다. 사대문은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그리고 북쪽에 숙정문이다. 사소문은 사대문 사이에 나 있던 소문(小門)을 말한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동북쪽에 홍화문(弘化門 : 東小門), 동남쪽에 광희문(光熙門 : 水口門), 서남쪽에 소덕문(昭德門 : 西小門), 서북쪽에 창의문(彰義門)을 세웠다.
그중 동소문은 1484년(성종 15)에 창경궁을 건축하고 그 동문을 홍화문이라 하였으며 1511년(중종 6)에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1816년(순조 16)에 중수하고 1869년(고종 6)에 보수하였으며, 1928년에는 문루를 헐고 석문만 남겨 두었는데 그 후 전차를 부설하면서 석문마저 철거하여 지금은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수구문은 1711년(숙종 37) 새로이 석문만 건축하고 9년 후인 1720년에는 문루를 지어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1975년 도성 복원 공사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광희문 이외에 1457년(세조 3) 지금의 장충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따로 남소문을 축조하였으나 1469년(예종 1)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폐쇄되었다.
서소문은 1738년(영조 14)에 석문을 개축하고 1744년 문루를 건축한 뒤 소의문으로 개칭하였으나 1914년 도시 계획 때 철거되었다. 창의문은 1413년(태종 13)에 폐쇄되었으나, 1741년(영조 17) 성문을 다시 고쳐 짓고 인조반정 공신의 명단을 걸게 하였는데 지금도 남아 있으며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 서울 성곽길 복원, 도심 걷기문화 새 지평 열다
걷고 싶은 도심 숲길, 600년 역사의 서울성곽길이 온전히 시민의 품에 되돌려진다. 녹색연합은 높은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느끼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서울성곽 순례길 - 걷고 싶은 서울,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걷기”라는 시민들을 위한 안내서(지도)를 발간했다. 서울성곽길 전체를 대상으로 순례길을 완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 안내서는 그 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18.2km의 서울성곽길을 지난 1년 간 직접 걸어서 조사하고, 시민참여를 통해 모니터링한 결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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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발간한 이번 안내서는 서울성곽길을 크게 4구간으로 나누고, 주변 문화, 예술, 상권 등과 어우러져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하루를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서울성곽이 현대의 삶과 단절된 역사가 아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하나의 예로 2구간인 ‘장충체육관 ~ 혜화문 (약 5.5km, 2시간 소요)’ 구간은 “북악의 좌청룡, 낙산 - 과거와 현대의 공존, 예술과 패션을 만나다”를 주제로, 서울성곽길을 걸은 후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현대 패션과 대학로의 연극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서울성곽을 처음 걷는 사람들도 지도만 갖고 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소실된 구간 등에 대한 세부지도와 대중교통 이용 방법도 상세히 실었다. 어린이나 어르신들에게 비교적 수월한 걷기 코스를 안내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고 있다. 기존의 관광지도와 달리 우리나라 전통의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정감있고 따뜻한 느낌을 살려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서울성곽의 가치와 의미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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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은 서울의 4대문을 잇는 옛 한양의 도성으로 현재, 약 2/3가 복원되었고 나머지 구간도 복원 중이거나 복원될 계획이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순례길은 약 23km(서울성곽 전체 길이 18.2km)이다.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 흔적이 전혀 없는 구간, 흔적만 겨우 남은 구간을 뺀 나머지는 성곽을 따라 탐방할 수 있다. 소실된 구간은 안내서를 참조하면 된다. 서울성곽길의 대표적 구간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장충동 구간으로, 지난 해 녹색연합 ‘서울성곽 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대체로 코스의 길이나 난이도 등이 무난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겠다”면서, “도심에 이런 길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2007년 4월 일부 복원된 서울성곽길 중 말바위쉼터~숙정문~창의문 구간이 전면 개방되었다. 이에 따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지만, 서울성곽 전체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 코스에 대한 인식은 낮다. 녹색연합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서울성곽 전체를 탐방할 수 있도록 주요 관광 안내소, 탐방 안내소, 학교 등 서울 곳곳에 안내서를 배포할 계획이다. 또 서울시나 문화재청 차원에서 서울성곽의 가치를 알리고 시민들의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역사·문화·생태 해설판 설치, 주요 지점 쉼터 제공, 고정적인 탐방프로그램도 제안할 예정이다.
걷기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북한산, 관악산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주요 등산로는 물론 그 주변부 훼손과 생태계 파괴가 매우 심각하다. 녹색연합은 자연과 문화, 역사 탐방을 접목한 걷기를 통해 정상정복, 종주중심의 산행문화를 개선하고, 바람직한 생태여가 문화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순례길을 발굴할 것이다. 서울성곽길 걷기는 등산인구를 분산시키고 단순한 걷기를 넘어 ‘역사·문화·생태의 공존’을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시민들은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으로 이어지는 환생태축을 체험하면서 생태축 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성곽 순례길 안내서는 녹색연합 자료실( http://www.greenkorea.org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2009년 4월 9일)
▒ 어디 쯤해서 (광희문에서) <김영수>▒
목마른 날, 나는
상처를 햇살에 말리며
광희문에 서성입니다
묵중한 돌들에 피 튀기는 순간마다
이슬들 더욱 맑고
새벽 더욱 붉었을 것입니다
오랜 첫날부터 예비된 하늘에는
아무리 멀어도 떠나야만 하는
아무리 아득해도 돌아와야만 하는
그 슬픔의 침묵 푸릅니다.
말없이 뜨거운 것만이
영원하는 것입니까
나도 이제 침묵으로 몸 뒤채며
목숨 제 빛 낼 때까지
광희문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까
정년 나의 사랑은 어디 쯤에서
들꽃 하나 씻으며 떠나는 것입니까
풀잎 하나 흔들며 돌아오는 것입니까
■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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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