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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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송광사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2권1책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송광사 |
관리자 | 송광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열반을 다루고 있는 경전으로, 중생들에게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깊이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책은 담무참(曇無嘴)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에 당나라 법보(法寶)가 주석을 붙인 것으로, 권9와 10이 한 책으로 되어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크기는 세로 35.5㎝, 가로 32.7㎝이다.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긴 것인데, 교장(敎藏)은 고려 숙종 4년(1099)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 요, 일본 등에서 구해 온 불경을 흥왕사에서 간행한 것을 가리킨다.
이 책이 교장(敎藏)이 아니고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겼다는 사실은 체재가 두루마리 형식을 따르나 책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종이의 질이 조선 초기의 것이란 점이다. 또한 같은 절에 보관되어 온『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끝에 교장(敎藏)을 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간행기록이 남아있어 그 확증을 굳혀 준다. 원본 맨 뒤에 있는 기록을 보면 장모(蔣모)가 목판의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으며, 글씨는 당시 유행한 구양순의 서풍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에서 운영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만큼 원판 못지않게 정성들여 불경을 새겼으며, 불교경전으로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 판본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은 담무참(曇無嘴)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에 당나라 법보(法寶)가 주석을 붙인 것으로, 권9와 10이 한 책으로 되어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크기는 세로 35.5㎝, 가로 32.7㎝이다.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긴 것인데, 교장(敎藏)은 고려 숙종 4년(1099)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 요, 일본 등에서 구해 온 불경을 흥왕사에서 간행한 것을 가리킨다.
이 책이 교장(敎藏)이 아니고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겼다는 사실은 체재가 두루마리 형식을 따르나 책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종이의 질이 조선 초기의 것이란 점이다. 또한 같은 절에 보관되어 온『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끝에 교장(敎藏)을 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간행기록이 남아있어 그 확증을 굳혀 준다. 원본 맨 뒤에 있는 기록을 보면 장모(蔣모)가 목판의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으며, 글씨는 당시 유행한 구양순의 서풍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에서 운영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만큼 원판 못지않게 정성들여 불경을 새겼으며, 불교경전으로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 판본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은 대량(大凉)때에 번역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대하여 당(唐)법보(法寶)가 주석인 소(疏)를 붙인 것이다. 책 끝에 다음과 같은 간기(刊記)가 있다.
해동전교사문(海東傳敎沙門) 의천(義天) 교감(校勘)
수창오년(壽昌五年)(1099)기묘세고려국대흥사봉선조조(己卯歲高麗國大興寺奉宣雕造) ...
이 책의 교정을 맡은 의천(義天)은 고려 문종(文宗)의 네째아들인 후(煦)인데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중국에 들어가서 많은 불교의 경전을 수입하였고, 귀국한 후에 다시 중국(中國) ·요(遼) ·일본(日本)에서 경소(經疏)를 모아서 이를 흥왕사(興王寺)에서 간행하였다. 이를 교장(敎藏)이라 한다.
이 책은 의천(義天)이 간행한 그 교장(敎藏)은 아니나 조선 세조(世祖)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그것을 그대로 복각한 것이므로 그 책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복각임을 알수 있는 증거로는 이 책의 체재가 권자본(卷子本)이나 섭본(摺本)이 아닌 책자로 되어 있으며, 지질이 조선 초기의 것과 같을 뿐 아니라 같은 절에 간수되어 온 동일한 판본과 체재의 책이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초) 끝에 수창사년(壽昌四年)(1098)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 등의 간기가 있고, 그리고 천순오년신사세(天順五年辛巳歲)(1461)조선국간경도감봉교중수(朝鮮國刊經都監奉敎重修)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더욱 그 확증을 굳혀 준다.
원본 간기의 맨 뒤에 「장사랑사재승동정신장모서(將仕郞司宰丞同正臣蔣모書)」라고 기록되어 판각의 글씨를 쓴 사람까지 알 수 있다. 글씨는 당시에 유행하던 구양순(歐陽詢)의 서풍을 따랐으며, 매우 근엄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쓰여져 있으며 복각함에 있어서도 국가에서 운영한 기관인만큼 극히 정성을 다하여 거의 원형을 방불케 하는 정각이었다. 불교경전으로서 뿐 아니라 한국의 판본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하다.
해동전교사문(海東傳敎沙門) 의천(義天) 교감(校勘)
수창오년(壽昌五年)(1099)기묘세고려국대흥사봉선조조(己卯歲高麗國大興寺奉宣雕造) ...
이 책의 교정을 맡은 의천(義天)은 고려 문종(文宗)의 네째아들인 후(煦)인데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중국에 들어가서 많은 불교의 경전을 수입하였고, 귀국한 후에 다시 중국(中國) ·요(遼) ·일본(日本)에서 경소(經疏)를 모아서 이를 흥왕사(興王寺)에서 간행하였다. 이를 교장(敎藏)이라 한다.
이 책은 의천(義天)이 간행한 그 교장(敎藏)은 아니나 조선 세조(世祖)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그것을 그대로 복각한 것이므로 그 책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복각임을 알수 있는 증거로는 이 책의 체재가 권자본(卷子本)이나 섭본(摺本)이 아닌 책자로 되어 있으며, 지질이 조선 초기의 것과 같을 뿐 아니라 같은 절에 간수되어 온 동일한 판본과 체재의 책이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초) 끝에 수창사년(壽昌四年)(1098)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 등의 간기가 있고, 그리고 천순오년신사세(天順五年辛巳歲)(1461)조선국간경도감봉교중수(朝鮮國刊經都監奉敎重修)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더욱 그 확증을 굳혀 준다.
원본 간기의 맨 뒤에 「장사랑사재승동정신장모서(將仕郞司宰丞同正臣蔣모書)」라고 기록되어 판각의 글씨를 쓴 사람까지 알 수 있다. 글씨는 당시에 유행하던 구양순(歐陽詢)의 서풍을 따랐으며, 매우 근엄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쓰여져 있으며 복각함에 있어서도 국가에서 운영한 기관인만큼 극히 정성을 다하여 거의 원형을 방불케 하는 정각이었다. 불교경전으로서 뿐 아니라 한국의 판본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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