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2.jpg9012.jpg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창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7m.

본래 하리의 옛 절터에 서 있었던 것을 1957년 11월에 한강변에 위치한 영월루(迎月樓) 밑의 공원 산중턱으로 옮겨 세워 바로 옆의 여주창리삼층석탑(驪州倉里三層石塔, 보물 제91호)과 나란히 있다.

 

석탑의 구성은 신라 이래의 전형적인 일반형 양식을 계승하여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쌓은 방형탑이다. 하층기단의 구조는 일반적인 형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갑석(甲石)은 상면에 현저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상층기단 면석을 받기 위한 높직한 2단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이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2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측면에까지 모각(模刻)하였고, 다른 2면에는 평판석을 그 사이에 삽입하는 구성형식을 취하였다. 갑석은 평박한 편이고 밑에는 얕은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그리고 상면 중앙에는 역시 높은 2단의 몰딩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이다. 각 층 옥신에는 우주형이 얕게 모각되었으며 초층옥신은 특히 높은 편이다. 옥개석 각 층 받침은 4단이고 추녀 밑은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 이르러 상향(上向)하였다.

 

낙수면의 경사는 온화하며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은 약하다. 옥개석 정상에는 굄 1단이 있어 위층의 옥신을 받고 있다. 상륜부는 전부 결실되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이 탑을 옮겨 세울 당시 특이한 사리공(舍利孔)이 발견되었는데, 일반형 석탑의 사리공과는 정반대로 초층옥신 상면 중앙에 18.8×21.2㎝의 얕은 층단 위에 10.6×13.6㎝, 높이 3㎝의 돌기가 있어 마치 대(臺)와 같은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지름 3㎝와 1.5㎝의 2개의 둥근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내용물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어 이 둥근 구멍이 무슨 용도였는지 알 수 없다.

또, 이 위에 얹히는 옥개석 밑면에는 1변 25.8㎝, 높이 12㎝의 단면능형(斷面菱形)의 홈이 팬 부분이 있어 사리공 돌기부 상면에서 9㎝에 가까운 공간을 남기면서 덮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리공의 구조는 특이한 예로서 매우 주목되고 있다.

 

이 탑은 외형의 온아한 비율이나 각 부 구조의 규율성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속했던 사찰은 여주읍내의 평지에 창건되었던 사찰이나 그 절이름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