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묵 | 중요민속자료 제19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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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 568 |
소재지 | |
지정일 | 1984.12.24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정동호 |
관리자 | .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잡목이 무성한 둔 덕 정도의 뒷산이 좌우로 뻗어나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이루고 오른쪽으로 비껴서 수구가 열리면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너른 들의 중간에는 나무를 일열로 심어서 공간감을 형성하며 오른쪽 산자락 끝을 안산 삼아 소나무 숲을 울창하게 조성하고 그 안에 연못을 팠다. 이 집에 이르는 진입로는 안산을 휘감아 돌아서 연못 옆을 지나도록 하였다. 뒷산의 무성한 숲에 둘러싸인 이 집은 안산과 연못을 바라보도록 축을 잡아 배치하여 가히 풍수지리상(風水地理上) 명당이라 하겠다.
안채와 사랑채는 축을 맞춰 동남향하여 앞뒤로 배치되고 광채는 안마당의 서쪽에 놓여서 전체적으로 튼ㅁ자를 이룬다. 집 앞은 경작지로 트여 있어 동쪽 바깥에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아마도 집터와 지반 높이의 차이 대문일 것이다. 이 집은 모두 초가집으로 19세기 초 무렵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는 一자 5칸 전퇴집인데 동쪽의 맨 아랫칸만 처마 밑을 이용하여 반칸(半間)쯤 더 내었으나 지붕의 모양은 네모꼴로서 변하지 않는다. 평면구성은 동쪽으로부터 뒤에는 나뭇간을, 앞(退間)에는 부엌광이 마련되며 다음은 부엌이다. 나머지 3칸은 앞퇴에 툇마루를 시설하고(안방 앞만 우물마루이다.) 동쪽으로부터 안방, 웃방(가운데방), 끝방의 차례로 놓였다. 세 방의 사이는 개방할 수 있는 미서기문이다.
구조는 2고주4량집인데 이는 3량집에 앞퇴만 덧붙이는 민가의 일반적 기법이다. 따라서 전면의 서까래는 단연과 장연으로 이루어지고 후면은 하나의 서까래만 걸친 것으로서 지붕은 전면의 길이가 길고 후면은 짧게 하였다. 특이한 것은 전면의 긴 서까래가 거의 수평에 가깝게 걸쳐지는 것으로서 중남부 지역의 평야지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도리는 굴도리이며 기둥은 전면만 네모이고 나머지는 둥근꼴이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쌓기 네벌대 정도의 높이로서 높으며 초석(礎石)은 덤벙주초이다. 광의 지붕틀은 중도리 위에 동자주를 올리고 종도리를 직각으로 걸쳐 ㄱ자형을 만들었는데 지붕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채는 5칸ㄱ자형집으로서 가로칸을 4칸 전퇴로 하고 동쪽칸 뒤에 단칸(單間)을 덧달아낸 것이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2칸 사랑방을 두고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다음은 대문간인데 사랑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축조되었다. 맨 동쪽간은 광이며 뒤로 꺾어져서 외양간이 된다. 지붕은 우진각 초가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방식인데 모를 접은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장혀는 쓰지 않았고 사괘맞춤 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 앞 툇마루의 가운데는 퇴보를 사용하지 않고 토막보만 도리에 맞춘 점인데 이것은 마루를 통행할 때 불편했기 때문이며 민가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기둥은 네모이고 덤벙주초이며 댓돌은 막돌 허츤층 쌓기이다.
광채는 맞걸이 3량3칸, 우진각 초가지붕집인데 북쪽에 광을, 나머지 2칸은 헛간을 배치했다.
이 집은 공간의 짜임새가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아담하게 만들어졌다. 특히 굴뚝은 지방적 특색을 나타내는 전통적 구조이다. 통나무 굴뚝을 세워서 원뿔형 토담을 쌓고 이엉으로 덮어 보호했다.
안채와 사랑채는 축을 맞춰 동남향하여 앞뒤로 배치되고 광채는 안마당의 서쪽에 놓여서 전체적으로 튼ㅁ자를 이룬다. 집 앞은 경작지로 트여 있어 동쪽 바깥에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아마도 집터와 지반 높이의 차이 대문일 것이다. 이 집은 모두 초가집으로 19세기 초 무렵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는 一자 5칸 전퇴집인데 동쪽의 맨 아랫칸만 처마 밑을 이용하여 반칸(半間)쯤 더 내었으나 지붕의 모양은 네모꼴로서 변하지 않는다. 평면구성은 동쪽으로부터 뒤에는 나뭇간을, 앞(退間)에는 부엌광이 마련되며 다음은 부엌이다. 나머지 3칸은 앞퇴에 툇마루를 시설하고(안방 앞만 우물마루이다.) 동쪽으로부터 안방, 웃방(가운데방), 끝방의 차례로 놓였다. 세 방의 사이는 개방할 수 있는 미서기문이다.
구조는 2고주4량집인데 이는 3량집에 앞퇴만 덧붙이는 민가의 일반적 기법이다. 따라서 전면의 서까래는 단연과 장연으로 이루어지고 후면은 하나의 서까래만 걸친 것으로서 지붕은 전면의 길이가 길고 후면은 짧게 하였다. 특이한 것은 전면의 긴 서까래가 거의 수평에 가깝게 걸쳐지는 것으로서 중남부 지역의 평야지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도리는 굴도리이며 기둥은 전면만 네모이고 나머지는 둥근꼴이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쌓기 네벌대 정도의 높이로서 높으며 초석(礎石)은 덤벙주초이다. 광의 지붕틀은 중도리 위에 동자주를 올리고 종도리를 직각으로 걸쳐 ㄱ자형을 만들었는데 지붕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채는 5칸ㄱ자형집으로서 가로칸을 4칸 전퇴로 하고 동쪽칸 뒤에 단칸(單間)을 덧달아낸 것이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2칸 사랑방을 두고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다음은 대문간인데 사랑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축조되었다. 맨 동쪽간은 광이며 뒤로 꺾어져서 외양간이 된다. 지붕은 우진각 초가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방식인데 모를 접은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장혀는 쓰지 않았고 사괘맞춤 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 앞 툇마루의 가운데는 퇴보를 사용하지 않고 토막보만 도리에 맞춘 점인데 이것은 마루를 통행할 때 불편했기 때문이며 민가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기둥은 네모이고 덤벙주초이며 댓돌은 막돌 허츤층 쌓기이다.
광채는 맞걸이 3량3칸, 우진각 초가지붕집인데 북쪽에 광을, 나머지 2칸은 헛간을 배치했다.
이 집은 공간의 짜임새가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아담하게 만들어졌다. 특히 굴뚝은 지방적 특색을 나타내는 전통적 구조이다. 통나무 굴뚝을 세워서 원뿔형 토담을 쌓고 이엉으로 덮어 보호했다.
중요민속자료 191-1 |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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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91-2 |
사랑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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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91-3 |
고방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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