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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출토된 금목걸이[金製頸飾]

문성식 2015. 5. 18. 09:58

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출토된 금목걸이[金製頸飾]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작은 금환을 연결하여 금구슬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금달개를 달은 이 금목걸이는 비취빛의 커다란 곱은옥 1점을 가슴 중앙에 달았다. 이 명품 목걸이는 신라 무덤에서 발견된 금목걸이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

명품 금목걸이가 발견된 노서리 215번지 무덤은 4~6세기 신라의 최상류층의 무덤이 모여 있는 경주 중심가의 대릉원 근처에 위치하며, '호우(壺杅)‘명 청동합이 출토되어 유명한 호우총(140호) 서남쪽 호석과 맞물려 있다.

경주 노서리 215번지 무덤에서 출토된 금목걸이, 신라 6세기, 길이 30.3㎝, 보물 456호

명품은 우연히 발견되기도 한다

 

이 금목걸이는 우연히 발견되었다. 1933년 4월 3일 경주읍 노서리 215번지에서 김덕언이라는 사람이 호박씨를 뿌리려고 땅을 갈다가 곱은옥, 대롱옥, 금반지, 금귀걸이 등을 발견하여 경주경찰서에 신고하였다. 당시 조선고적연구회의 조수로 있던 아리미츠 고이치[有光敎一]가 조선총독부에 파견되어 조사를 해보니, 귀걸이나 반지 등이 세트가 아닌 점을 수상히 여겨 4월 12일부터 19일까지 1주일 정도 긴급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경찰서에 보관 중인 귀걸이와 쌍으로 보이는 귀걸이 한 짝을 비롯해서 금제구슬, 금은 팔찌와 반지, 신라 토기 몇 점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귀걸이의 위치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동쪽에 머리를 두고 묻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지 목록

경주 노서리 215번지 발굴조사 (1933년 촬영)

무덤 내부를 노출하는 모습

가장 화려한 목걸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신라 목걸이는 옥으로 만든 구슬류가 대부분인데, 금·수정·경옥·마노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금으로 만든 목걸이의 경우, 금판을 두드려서 반원모양으로 만든 뒤 공처럼 접합하여 만들거나 금사슬처럼 꼬아서 만들었다. 그러나 경주 노서리 215번지 무덤에서 발견된 금목걸이는 새김눈을 한 가는 금환을 상하로 각각 6개씩 연결하여 하나의 구슬형태로 만들었다. 이 구슬에 또 나뭇잎모양의 달개를 5개씩 매달았다. 이러한 달개도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달개의 가장자리를 안쪽으로 말고 새김눈을 새겨서 화려함을 더하였다. 이러한 금제구슬 77점과 비취빛 곱은옥 1점을 연결하여 하나의 목걸이를 만들었다. 신라의 가장 화려한 목걸이이다.

무덤에서는 굵은고리 귀걸이, 금은팔찌, 반지, 토기 몇 점이 발견되었다. 반지는 표면에 새김눈을 표현하였으며 금팔찌는 새김눈으로 용무늬를 새겨 넣었다. 반면에 은팔찌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무덤 내에서 확실히 확인된 것은 금은 장신구뿐이며, 목곽의 적석부 동남쪽 끝 부분에서 대형 항아리가 1점 발견되었다. 그 항아리 내부에는 굴, 대합, 논우렁, 소라, 전복 등의 패각류와 물고기뼈, 새뼈가 있었다. 이것들을 수습하여 아래를 살펴보니 뚜껑접시 등 50여점이 담겨져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황남대총 봉토에서 확인된 대형 항아리 안에 담겨있던 접시, 새뼈, 패각류 등과 동일한 것으로 제사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된다.

경주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팔찌, 보물454호

경주 노서리 215번지 무덤과 호우총, 은령총 무덤과의 관계는?

 

노서리 215번지 무덤과 호우총·은령총 세 개의 무덤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따라서 만들어진 모양을 보면 이 세 무덤 간의 선후관계를 알 수 있다.

경주 노서리 215번지 배치도

일단, 호우총과 은령총은 황남대총처럼 2개의 무덤이 연접된 표형분이며, 먼저 은령총이 만들어지고 호우총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두 무덤과 노서리 215번지 무덤의 선후 관계가 중요해진다. 호석의 중첩 관계를 통해 살펴보면, 노서리 215번지 무덤의 적석 윗부분에 호우총의 호석이 놓여져 있어 노서리 215번지 무덤이 먼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출토유물의 연대를 보아도 이와 동일한 상황이다.

보통 발굴조사 등으로 박물관에 소장되는 다양한 유물들은 입수된 연유 등에 의해서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일련번호가 주어진다. 따라서 1점의 유물에는 하나의 번호가 부여된다. 그런데 노서리 215번지 무덤에서 출토된 굵은고리 귀걸이나 금목걸이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2개의 번호가 주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발굴 직후 일부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되었기 때문이었다. 1933년 당시 긴급조사를 담당한 일본 고고학자 아리미츠[有光敎一]는 노서리 215번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금귀걸이와 금팔찌 1쌍 중 1점씩, 77점의 금목걸이 중 반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일본 동경제실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다행히도 1966년 한일 반환 협정으로 노서리 215번지 황금장신구류 등을 비롯한 이 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원래 남아있던 금귀걸이 1점과 금목걸이는 관리를 위해 본관품 번호로 등록되었고, 1966년에 반환받은 나머지 금귀걸이와 금목걸이는 새로 박물관에 들어왔기 때문에 신수품 번호로 등록되어 2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김현희 |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발행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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