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김제시 금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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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20091001촬영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국신사(國信寺)라 하였으며, 국신사(國神寺)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은 이곳에서 〈법장화상전 法藏和尙傳〉을 편찬하였다.
귀신사는 백제 법왕(法王, 재위 599년) 때 원당(願堂), 곧 왕실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경내에 있는 석수(石獸)가 백제 왕실의 자복사찰(資福寺刹)에서만 볼 수 있는 석물이라는 견해 때문이다. 또한 뒤에서 소개될 자수 무경 스님의 <전주무악산귀신사사적사인>에서도 이 귀신사는 백제 왕실의 원당이었다는 글이 있다.
창건과 관련한 또 다른 설로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처음으로 세웠다는 것이며, 당시의 사찰명은 국신사(國信寺), 혹은 국신사(國神寺)였다고 전한다. 최치원(857 - ?)은 이곳에서 <법장(法藏)화상전>을 편찬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는 대사찰의 면모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원명(圓明, 1090-1141)국사는 1120년대에 절을 중창하였는데, 이 당시에 귀신사의 이름은 구순사(口脣寺), 혹은 구순사(狗脣寺)로 불렸다고 한다. 그것은 이것은 절 주위의 지형이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구순혈형(狗脣穴形)인 것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고려말인 1376년(우왕 2) 무렵 왜병 300여기가 이 지역에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키고는 이 절에 주둔하였는데, 병마사 유실(柳實)이 격퇴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던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의 정책 탓인지 초기에는 절은 매우 퇴락된 듯하다. 이미 폐허화되어 있었던지 그것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김시습(1435 - 1493)이 이 절을 찾은 뒤에 지은 시문인 “귀신사허(歸信寺墟)”라는 시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에 보면 ‘탑은 무너지고 비석은 끊어져 있다.’라고 하는 내용이 써 있어서 조선초기에 이미 황폐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절에 관한 연혁으로는 지금 절에 전하는 상량문 및 <귀신사중수기>(1823년), <시주질>(1884년), <전라북도전주군무악산귀신사명부전개와기>(1914년) 등의 현판, 그리고 17-8세기에 활동한 자수무경(子秀無竟, 1664 - 1737) 스님의 <무경집>에 수록된 <전주무악산귀신사사적사인>과 <무악산귀신사팔상전기>와 같은 기문을 들 수 있다.
그 뒤 임진왜란 때에는 전쟁 때문에 소실되어 폐허화되었다가 이 가운데 1633년(인조 11)에 작성된 상량문은 현재 전하는 절에 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주목된다. 이 상량문에 의거하여 1624년 이후 대대적으로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적에는 이 때의 중창은 옛터가 아닌 새로운 터 위에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맞다면 지금 절 뒤편에 있는 삼층석탑 자리가 옛 절터이고 지금 절이 있는 곳은 이때 비로소 새롭게 들어선 자리인 듯하다. 그 뒤에도 얼마 안 있어 비바람으로 인해 전각이 퇴락하자 1657년(효종 8)에 대웅전 등을 중수했다고 한다.
절은 그 뒤 사운(寺運)이 기울었는지 다시 쇠락하여 간신히 법등을 잇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두감 스님이 주석하면서 절은 새롭게 중창의 기운을 얻었다. 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널리 시주를 받아 1707년(숙종 33)에 여러 전각을 중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해에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1715년에 팔상전을 짓고 이듬해에 불상을 봉안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1873년(고종 10)에 춘봉(春峰) 스님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흔히 이 때 스님이 절이름을 귀신사로 바꾼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앞에서도 보았듯이 김시습의 시에 이미 ‘귀신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절의 이름은 고려말 조선초에 이미 귀신사로 바뀌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84년에는 명부전을 중수했으며, 1914년 명부전 기와를 개수하였고, 1927년에도 명부전을 보수하였다. 1934년에는 대적광전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명부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귀신사삼층석탑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인 귀신사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인 귀신사석수(石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층석탑은 높이 4.5m의 화강암재 석탑으로,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선이 정밀하고 옥개석의 곡선이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도 신라시대의 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석탑과 통일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부도는 정교한 조각의 예술성을 보이고 있으며, 높이 2.5m이다.
또 석수는 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男根) 같은 석주가 꽂혀 있고 도약하려는 듯한 석수의 모습에는 당당한 위용이 엿보인다. 석수나 남근은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높이 1.65m, 너비 1.65m이다. 귀신사대적광전(보물 826) * 전주에서 - 금산사 방면 712번 지방도로 - 원청도 마을 1)전주고속터미널에서 79번 시내버스가 20분 배차간격으로 운행, 40분소요 귀신사 종점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5분 2) 김제고속터미널에서 5번 시내버스가 1일 6회 운행 55분 소요 귀신사 063-548-0917 지정 문화재
귀신사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1516)
귀신사석탑(전북유형문화재 62)
귀신사부도(전북유형문화재 63)
귀신사석수(전북유형문화재 64)
교통안내
* 호남고속도로 금산사IC - (2.5km) - 원평지서 삼거리(좌회전) - 금산사 방면 712번 지방도로 - (4.2 km) - 금산사 입구 바로 못 미처 왼쪽으로 712번 지방도로 - (2.9km)- 청도리 - 좌측으로 300m 거리(시멘트길)
* 김제에서 전주방면 712번 지방도로로 22km가면 원청도 마을
* 모악산도립공원(금산사 방면)입구에서 도보 5km 현지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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