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풍물,생활

막사발 - 자연스러움의 미학

문성식 2012. 8. 20. 13:35

 

일본인들이 한국의 도자기에 대해 갖는 열정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는 도자기에 관한 한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 선진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릇 중에 청자백자와 더불어 최고의 상품인데, 10세기 언저리에 지구상에 이런 그릇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고려와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고려청자는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천하 명품이었습니다. 그런 그릇이니만큼 일본인들이 우리 그릇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16세기 후반, 일본에서 그릇의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키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같은 최고 그릇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막걸리의 ‘막’처럼 막 만들었다고 해서 ‘막사발’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그릇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은 이 그릇이 막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사발로 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즘의 대세입니다마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그냥 과거의 예를 따르겠습니다. 이 그릇은 일본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도차완(井戶茶碗)’이라는 이름입니다.

 

사진의 막사발은 본문에 소개된 대표적인 이도차완이다. 얼핏 보면 하치의 그릇 같으나 조선 도공이 무심으로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이 그릇은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불가사의한 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16세기 후반부터 일본에 알려지면서 그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그릇의 한류 바람이 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릇은 한국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최상의 막사발은 모두 일본에 있습니다.

 

이 그릇이 일본에 알려지자 어떤 일본 도공은 “이런 그릇을 일생 하나라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라고 하고, 어떤 일반인은 “이 그릇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기만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다인은 이 그릇은 성 하나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신성한 그릇이라는 의미로 신기(神器)라 부르면서 그릇을 모셔놓고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일본의 실력자였던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사람들이 이 막사발에 환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가장 아끼는 부하들에게 이 막사발을 하사했는가 하면, 그 부하들은 좋은 막사발을 이들에게 바쳐 살아남기를 도모했다는 것도 많이 아는 사실이지요. 그중에 쓰츠이 준케라는 성주는 도요토미의 말을 어겼다가 이 그릇을 그에게 헌상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릇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 ‘쓰츠이즈츠’라고 불린답니다. 당시 우리 그릇의 파워가 이리도 대단했습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용도로 쓰였을까?

 

막사발이 불가사의하다는 점은, 이 그릇의 용도에 대해 아직 학계에서 완전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릇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찻잔 용도로 쓰이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 한국에서 전통차를 마실 때 쓰는 찻잔에 비해 다소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일본인들이 즐겨 마시던 차는 지금 우리가 많이 마시는 종류가 아니라 말차(末茶)입니다. 말차는 찻잎을 분말로 만들어 이것을 풀어먹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그릇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아직 확실히 모른답니다. 밥그릇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제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그릇에 대해 이렇게 무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걸쳐 잠깐 만들어졌다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산되었던 지역도 경상남도 일원에만 해당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불가사의하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이 어쩌다가 일본에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을까요? 이 그릇을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도요토미의 차 스승이었던 ‘센노 리큐’라는 승려입니다. 인기의 비결을 다 캘 수는 없으니 미학적인 면만 살펴보도록 하죠. 이 찻잔 내면을 보면 작은 옹달샘이 비친다고 합니다. 샘물이 솟아나오는 듯한 신비를 느끼는 것이지요.

 

매우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본의 다실. 완벽미를 추구해서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미학과는 정반대에 서 있어 더욱 가치 있는 막사발

 

이것을 그릇 내면의 미학이라고 하면 외면의 미학도 있습니다. 일본의 다실을 보면 위쪽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규격적이고 대칭적입니다. 일본의 미는 이런 겁니다. 완벽미를 추구해서 어디 빈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숨이 막힐 수도 있겠죠. 일본의 다실에 우리의 그릇이 놓인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순간 마음이 탁 풀리면서 아주 편안해집니다. 이 막사발의 미학은 일본 미학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막사발은 보통 매우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그릇으로 불립니다. 원래 이 그릇은 청자에 흰색을 입힌 분청자에서 나왔습니다. 분청자를 유약에 담그든지 아니면 붓으로 유약을 거칠게 칠하는 방법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분청자가 이미 매우 자유분방한 미학을 자랑하는 그릇인데, 막사발은 더 거친 모습을 보입니다.


자유분방한 표현이 놀라운 조선의 분청사기. 그릇의 모양도 자유롭고 죽은 듯한 물고기의 입 벌린 모습도 그 파격이 이채롭다.

 

 

막사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교토에 있는 대덕사(大德寺)라는 절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을 보고 있으면 그 자연스러움에 놀랄 지경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본 학자는 “이런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조선의 도공 손을 빌려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막사발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한국의 미학

 

그릇에 금이 가면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옆이 터지면 그것도 그대로 놓아둡니다. 밑으로 유약이 흐르면 그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릇 모양만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다음부터는 자연에 맡겨놓습니다. 한국 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능한 대로 인위적인 손길을 줄이는 데에 있습니다. 이 그릇에서도 그런 정신을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모습은 당당합니다. 자연과 인공의 솜씨를 절묘하게 배합한 작품이 바로 이 막사발인 듯합니다.

 

 “(막사발은) 우리 일본인들에게 신앙 그 자체이며 (…) 영원한 안식처로 이끌어주었던 (…) 신과도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윤용이 교수가 인용한 어느 일본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면 이 그릇이 어떤지 절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일본인 가운데에서도 최고 지성인들이나 최고의 도공들이 이 그릇을 좋아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은 일제기에 이 그릇의 미학을 처음 발견한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지요. 야나기는 일본 최고의 지성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인의 미감각이 지금은 보이지 않지요? 그런 감각이 살아 있다면 왜 지금은 그런 그릇을 만들지 못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감각은 분명히 우리들의 문화적 DNA 속에 살아 있습니다. 다만 발휘되는 분야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변변한 제품 하나 못 만들던 한국인들이 지금은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인에게 전승되어 온 천부적인 감각이 되살아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앞으로 계속해서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발행일  201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