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풍물,생활

살풀이춤 - 가장 한국적인 몸짓

문성식 2012. 8. 20. 13:44

 

수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아비뇽 축제 관계자가 한국의 예인을 그 축제에 초청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 하는 무용가들의 공연을 모두 관람한 이 프랑스인은 성에 안 찼던 모양입니다. 이 춤이 자기들이 해왔던 춤과 그리 다르지 않아 큰 관심이 안 갔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측에서 이매방 씨의 살풀이춤을 보여주었는데 이 춤을 보자 이 프랑스인은 시쳇말로 ‘뻑’ 갔답니다. “사람이 어떻게 춤을 저렇게 잘 출 수 있느냐?”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이매방 씨가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TV 같은 데서 그의 춤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왜일까요? 그 춤을 감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짓도 볼 줄 모르는 민족이 된 모양입니다.

 

외국인도 감동하는 인간문화재 이매방의 살풀이춤.

 

남도 굿판의 씻김굿에서 기원한 수건을 가지고 추는 춤

 

명성황후 추모제에서 넋을 기리며 살풀이춤을 추고 있다. 살풀이춤은 죽은 이가 가진 좋지 않은 기운을 풀어주는 춤이다.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민속춤을 대표하는 유명한 춤입니다. 수건을 갖고 춘다고 해서 ‘수건 춤’이라고도 합니다. 이 춤은 (전라)남도 굿판에서 무당이 추던 춤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씻김굿’판에서 반주 음악인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추던 춤이었다는 것이지요. 살풀이란 죽은 이가 가진 좋지 않은 ‘살(기운)’을 풀어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살풀이춤은 원래의 춤이 아니라 후대에 예술적으로 가다듬어진 춤입니다. 무당들이 원래 추던 살풀이춤은 기방으로 전해져 기생들이 추게 됩니다. 그 춤이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은 1930년대에 한국 민속춤의 대부로 불리던 한성준 선생이 무대에 올릴 수 있게끔 다듬은 후의 일입니다. 한성준이라는 이름이 낯설 터인데 한국의 민속 무용 분야에서 이분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전통 무용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나타내고 있는 장르

 

앞에서 우리는 전통춤을 감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살풀이춤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춤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에 대해 보려고 합니다. 이 특징들을 파악하고 있으면 우리 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춤은 한국 문화를 알려고 할 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무용이라는 장르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악이나 도자기, 건축 같은 분야는 아무래도 중국의 영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춤, 그 가운데에서도 민속춤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입니다. 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서양 춤은 하늘 지향적, 우리 춤은 땅 지향적

 

그러면 우리 춤이 가진 한국적인 몸짓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것을 서양의 대표적인 춤인 발레와 비교해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양 문명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선 들고 싶은 차이점은, 우리 춤은 땅 지향적인 것에 비해 발레는 하늘 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 춤의 스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발레는 발끝으로 서는 것에 비해 우리 춤은 발뒤꿈치로 섭니다.

 

발레를 배태한 서양의 기본적인 가치는 대부분이 기독교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존재인 신이 하늘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늘을 향합니다. 교회 건축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발레는 그러한 정신의 신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더 가까이 가려고 발끝으로 서려는 것이고 그것도 모자라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번쩍 들어 올리기도 합니다.

 

  • 1 발끝으로 서고,점프를 많이 하는 발레는 하늘을 추구하는 서양의 가치를 담고 있다.
  • 2 땅을 지향하는 우리 춤은 발끝이 아닌 발뒤꿈치로 걷고 돈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모든 가치의 중심이 인간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의 성품이 부처의 성품(佛性)이고 하늘의 성품(天性)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까이 가는 걸 선호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종교 건축은 높이 세우기보다는 땅에 가깝게 지었습니다. 한국의 절 건물 가운데에는 교회처럼 뾰족한 것이 없지요?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레는 하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점프를 많이 합니다. 한국 춤에서도 점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로 비약하기 위함이 아니라 착지하면서 땅에 더 가까이 가려는 시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회전을 할 때에도 발레처럼 발끝으로 도는 게 아니라 뒤꿈치로 돈답니다.


동양 사상에서는 ‘반대’라는 개념을 ‘다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움직임과 정지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음양처럼 조화한다고 보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춤에는 정중동(靜中動) 사상이 있는데 이것은 정지 속에 움직임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한국 춤에서는 정지한 듯이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결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움직임이 있습니다. 반면 발레는 외향적으로 항상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정지를 움직임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들썩들썩, 신명을 내서 추는 것이 최고

 

그 다음으로 한국 춤에는 어깨춤을 ‘들썩들썩’ 추면서 무릎을 굽혔다 펴는 굴신 동작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춤은 ‘능청거린다’라는 표현을 하지요. 반면 발레는 상대적으로 직선적인 동작이 많아 출렁거리거나 너울거리는 동작이 별로 없습니다. 동작들이 매우 기하학적입니다. 한국 춤에서 어깨를 들먹거리는 것은 신명으로 들어가려는 동작입니다. 한국 춤은 신명을 내서 망아경 속에서 추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그래서 한국 춤꾼들은 기예의 출중함을 보이기보다 망아경 혹은 신명에 빠져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한국 춤에서는 즉흥성이 매우 강조되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빠져서 몸이 이끄는 대로 동작을 하다 보면 자신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즉흥적인 몸짓이 나오게 됩니다. 반면에 발레는 내면의 표현보다는 주어진 기예를 외적으로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발레에는 즉흥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발레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다양한 동작들을 연이어서 짜 맞추어 기량껏 발휘하는 것이 가장 잘 추는 춤이 됩니다. 발레에는 외향적인 서양의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중동 사상, 정지한 것 속에 움직임이 있다.

 

세세한 동작에 연연하지 않고 크게 추는 춤

 

또 차이점을 든다면, 우리나라의 춤은 매우 크게 추는 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세한 동작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손동작을 할 때에도 어깨에서 팔목까지만 신경을 쓰지 손동작에 대해서는 선생도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물을라치면 ‘알아서 대충 해’라는 대답이 고작입니다. 반면에 발레는 세부적인 데에 대단히 예민합니다. 손이나 발동작 하나하나에 아주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그래서 매우 정교하게 보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춤은 호흡을 대단히 중시한다는 등 여러 특징을 들 수 있습니다마는, 그 다음 이야기들은 전문적이라 이쯤에서 그치는 게 나을 듯합니다. 한국 춤은 다른 나라의 춤처럼 대단히 수준 높은 춤입니다. 그런데 정작 국민인 우리는 그 춤을 읽을 수 있는 코드를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의 몸짓을 되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발행일  201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