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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풍랑에 시달려 온 외딴섬 굴업도

문성식 2012. 8. 2. 10:35

시대의 풍랑에 시달려 온 외딴섬

 

글 노규엽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인천 앞바다의 작은섬 굴업도의 주소다. 오래된 옛 시절의 기록은 제쳐두더라도 근래 수십 년 동안 이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참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옛 시절에는 민어 파시(波市ㆍ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가 열려 불야성을 이루었지만, 어장이 붕괴된 후에는 땅콩 농사와 축산업으로 삶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핵폐기물처리장 건립 후보지로 낙찰되어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가 안전성 문제로 취소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CJ그룹이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소식에 각종 시민ㆍ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의 중심에는 태생적으로 특이한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있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해안지형을 갖춘 섬
굴업도는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지리서 <대동지지>에 ‘굴압도’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굽힐 굴(屈)자와 오리 압(鴨)자를 사용한 것으로, 지형이 물 위에 구부리고 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섬의 이름이 지금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형상이라는 의미의 굴업도로 불리고 있다. 한자로도 팔 굴(掘)자와 일 업(業)자를 썼는데, 굴업도는 쟁기를 대고 갈만한 농지가 거의 없고 괭이나 삽 등으로 파서 일구어야하기 때문이라 한다. 동물의 형상으로 빗대어 부르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걸 보면 조선 후기 이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명칭도 변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굴업도의 산 연평산과 덕물산은 바위가 단단하지 않아 산행을 할만한 곳은 아니다. 뒤로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연평산

 

굴업도는 약 8천만~9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에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섬이다. 한반도가 형성된 이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은 화산은 화산재를 쌓아가다가 암석들과 버무려 섞이면서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의 현상을 거쳐 섬을 이루었다. 그래서 굴업도에는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해저 깊숙이 남아있는 골짜기는 지금도 특이한 해류현상을 빚어내며 천혜의 해안경관을 만들고 있다. 이에 더해 섬이 주풍향인 서풍과 남동풍을 가로막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해 있어,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은 화학적 침식이, 서쪽은 물리적 침식이 나타나는 독특한 지형을 낳았다. 쉽게 말하면 서쪽은 파도의 힘을 받아 바위가 무너져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고, 습도와 소금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쪽은 바위가 부식되어 부풀어 오르거나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모습을 드러낸다. 면적 1,700㎢ 정도의 작은 섬에서 상이한 해안절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희귀한 해안경관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굴업도의 생태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숲은 어떨까? 먼저 굴업도는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생명상(대상)을 수상했다. 이는 특정 숲의 경관이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닌 섬 전체의 태생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섬이 곧 숲임을 전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굴업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보전과 개발의 기로에 선 굴업도
굴업도는 인천에서 대략 8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찾아가는 시간은 만만치 않게 걸리는 외딴 섬이다. 굴업도를 가기 위해서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찾아가야 한다. 인천항에서 먼저 덕적도 진리 선착장으로 가는 배를 탄 후, 덕적도에서 다시 덕적면의 섬들을 순회 운항하는 배를 타야 비로소 굴업도에 들어갈 수 있다. 굴업도 선착장은 마을과 가까운 섬 동쪽 해안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선착장에는 어떠한 시설도 없으므로 마을로 가려면 미리 예약한 민박집에 부탁해 차량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 마을로 걸어가는 길은 차가 다니는 임도를 따라 가거나 선착장 인근에 숲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돌계단을 따라가면 된다. 거리도 멀지 않아 넉넉히 20분 정도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굴업도는 섬 중앙부의 마을을 중심으로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다. 1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동쪽 끄트머리에 연평산과 덕물산이 자리 잡고 있다. 두 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숲으로 덮여 있지만 정상부로 갈수록 돌이 드러나고 바위가 단단하지 않아 산행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굴업도에서 주변을 둘러볼 길은 개 머리의 형상이라는 서남쪽의 ‘개머리언덕’이다.

 

 

개머리언덕 방면에서 촬영한 굴업해수욕장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토끼섬(목섬)으로 물 때에 따라 육로가 생겼다 사라진다.

사실 개머리언덕은 CJ그룹의 법인 사유지로 사전 허가 없이 출입을 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기업으로부터 관리를 위탁 받은 마을 주민 한 분의 안내로 개머리능선으로 향했다. 개머리능선은 마을 뒤편의 통신탑이 설치된 구릉을 통해 갈 수도 있지만,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굴업해수욕장의 백사장을 지나서 가도 된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들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구간이 짧아 깊이 들어가는 맛이 없다. 개머리언덕 남쪽에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소나무 군락 외에는 소규모로 모인 소사나무들이 숲의 전부다. 소사나무는 해안 지방에서 자라는 자작나무과의 낙엽 소교목으로 높이 10m까지 자라지만, 굴업도의 소사나무는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높이 자라지 못하는 다른 종이라 일반 사람의 키보다 크게 차이가 없다.
개머리능선의 끝까지 걸어가는 길은 초원처럼 펼쳐진 언덕이 대부분인데, 옛시절 땅콩 농사를 짓고 소를 방목하던 곳이라 한다. 능선의 끝으로 갈수록 계단형 논처럼 이어지는 언덕이 나타나는데, 땅콩 농사의 흔적이자 골프장으로 개발하려는 바로 그 장소다. 골프장 계획은 자연을 보호하자는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자리가 평평하고 해안과 인접해 있다보니 주말이면 캠핑족들이 찾아와 텐트를 친다고 한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사실 사유지라서 함부로 들어오면 안되는 곳이지만, 누군가 지키고 앉아서 일일이 막을 수도 없고 섬을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을 수도 없어 방치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진드기가 많은 지역이라 딱히 좋지도 않은 장소인데, 많을 때는 100명 이상도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개머리언덕은 숲을 즐기기 보다는 숲 밖에서 섬을 덮고 있는 숲을 전망하기 좋은 곳이다. 한때는 섬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터전이었던 곳이지만, 땅콩 농사도 시원치 않고 소를 먹이던 우물도 오염되어 빈 땅으로 남겨져 있다. 현재 굴업도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과 섬에서 채취하는 김, 나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고사리 등의 익히 알려진 나물들은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얘기도 없이 뜯어가고 있어 마을 주민들이 채취하는 양이 줄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소사나무 숲 아래에서 산더덕도 제법 볼 수 있었는데, 몇 년 사이에 싹 없어져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자연보호가 뭍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는 말 뿐이다 보니, 주민들 중에는 골프장 건설을 찬성하는 여론도 있다고 한다.
굴업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섬이다. 마을 인근의 토끼섬(목섬)은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육로로 연결되는 길을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한다. 선착장 인근의 목기미해수욕장은 만조(滿潮)의 힘이 강할 때 완전히 물에 잠겨, 개머리언덕과 연평ㆍ덕물산을 각기 두 개의 섬으로 나누기도 한다. 해안환경 외에도 나무가 있는 곳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숲의 생태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해풍이 심한 언덕에는 키 작은 소사나무만이 자라고 있지만, 섬 안쪽에 숨겨진 숲 속에는 이팝, 팽, 만주고로쇠, 좀팽, 생강, 찰피, 동백, 으름, 보리수,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수종들이 자생하고 있고 길섶으로 갯메꽃, 갯방풍, 해당화, 모래지치, 백선, 두루미천남성, 큰천남성 등 희귀 야생화군락이 지천에 깔려있기도 하다. 요즘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토종 민들레도 쉽게 눈에 보여, 서양 민들레에 터전을 뺏기지 않도록 지켜야할 자연환경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자연이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 한명, 두명의 이기적인 행위로 파괴되고 있는 현실은 골프장 건설 같은 대규모 개발만큼 뼈저리다. 하물며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업에 피해를 주는 수준이라면 진정한 환경보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는 굴업도는 조선시대 이후로 이름이 바뀌고, 원주민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시시각각 자연환경이 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자연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변화하게 될 굴업도는 지금 보전과 개발의 기로에 서있다.  ⓜ

 

 

해풍과 파도의 영향이 적은 곳에는 다양한 수종이 자생하며 자연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