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산행코스 | 충청도의 산] 태학산 (461m) - 충남 천안시 풍세면·광덕면, 아산시 배방면
- 솔 향기 진하고 산세 부드러워
455.3m봉은 조망 정상…실제 정상은 밋밋하고 조망 없어
- 날씨도 춥고 마음도 춥다. 절기는 봄인데 왜 이리 스산한가. 벗들에게 ‘친구들아, 봄 잡으러 가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충청도의 산’ 정예멤버인 윤태동·이종려씨는 물론 지난 번 춘설산행에 동행했던 연극배우 나순결씨와 권은숙씨, 규방공예가인 차순재씨가 합류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 ▲ 북서쪽 능선의 전망바위. 수철저수지와 배방면 일대가 훤하다.
- 태학산 북쪽 주능선이 끝나는 솔치고개에 차 한 대를 세워두고 자연휴양림으로 되돌아온다. 평일인 탓에 휴양림 1주차장, 2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표를 팔지 않는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 양쪽 소나무숲 속으로 잔디구장과 놀이동산, 데크와 들마루 등의 휴식공간이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다. 웬만한 단체의 야유회나 체육대회도 무난하게 치를 수 있는 규모다. 지루한 겨울을 지나왔음에도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이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다. “현호색이다” 하는 소리와 함께 일행은 꽃을 보려고 일제히 포복한다. 듬성듬성 피어 있는 현호색을 카메라에 담고 몇 걸음 지나자 이번엔 “도롱뇽이다”하는 외침에 우르르 논둑으로 몰린다. 눈비 오고 흙바람 부는 날이어도 봄은 틀림없는 봄이다.
- ▲ 산행 들머리의 태학사. 대웅전 옆으로 오르면 삼태리마애불이 있다.
- 포장도로가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 소나무 숲속에 서로 다른 종파인 법왕사와 태학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두 곳 모두 그리 오래된 사찰로 보이지는 않으나 법왕사의 천연동굴을 이용한 굴법당과 태학사 뒤편의 천원삼태리마애불(天原三台里磨崖佛)은 널리 알려져 있다. 태학사 계단을 통과하자 드넓은 구릉 위로 휴양림의 쾌적한 경관이 펼쳐진다. 약수터와 정자, 벤치가 잔디밭에 조성되어 있다. “미루나무다”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들어 미루나무를 올려다본다. 현호색과 도롱뇽, 미루나무에 감동하는 순한 백성들이다. 화장실도 그렇게 깨끗하더니 공원을 조성하면서 미루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어내지 않고 잘 살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등산로와 마애불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솔숲 사이로 화강암에 새겨진 삼태리마애불이 보인다.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1963년 보물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마애불의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반면 삼태리마애불은 서해가 아닌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근 광덕산을 중심으로 주변 산들이 빚어내는 운해(雲海)가 태학산 아래에서 시작되다보니 삼태리마애불은 운해를 향해 세워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바다 건너 외침을 막아달라는 선인들의 기원이 담긴 마애불……. 서해가 아닌 남쪽의 구름바다를 향한 마애불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마애불을 지나면서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10여 분 오르자 정상이 보이는 지점에 반송 한 그루와 벤치가 나타난다. 다들 말 잘 듣는 순한 백성들인지라 보라면 보고 쉬라면 쉰다.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그러나 지난번 면위산 산행에 비하면 소풍길이다. 정상을 올려다보는 일행의 표정이 느긋하다.
- ▲ 천원삼태리마애불. 고려 후기 것으로 보물 407호다.
- 땀이 진득하게 배어나는 길을 30여 분 오르자 팔각정과 함께 정상석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태학산 정상이 아니라 정상에서 동쪽 능선에 위치한 455.3m봉이다. 정상은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25,000지형도(2008년 인쇄)에 태학산 정상은 461m봉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높이도 461m봉이 더 높다. 정상보다 더 낮은 이곳에 정상석이 있는 것은 천안시와 아산시가 서로 태학산 정상이 관할구역임을 내세우려는 지역 간의 알력쯤으로 짐작된다.
455m봉 팔각정에 서면 우측으로는 천안시 풍세면이, 좌측으로는 천안·아산 신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바닥에 둘러앉아 각자 가져온 간식을 꺼내는데 연극배우 나순결씨가 “이번 산행은 산책 수준”이라며 무척 흡족해한다. 이 말에 장난끼가 동한 윤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내게 사인을 보낸다. 오케이! 모종의 계획은 그렇게 불시에 이루어졌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5분 정도 솔숲을 지나면 461m봉 정상이다. 그러나 봉우리라고 하기에 민망한 평평한 지형이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진 북서쪽 길이 카터로(Carter路)가 있는 솔치고개로 가는 태학산 주능선이고 직선상의 남쪽 길은 망경산과 넙치고개 방향이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음에도 지도상의 주능선을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남쪽 길로 접어들기 쉽겠다. 망경산은 넙치고개를 지나 623지방도로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 ▲ 455.3m봉의 팔각정. 천안시 풍세면과 천안·아산신도시가 내려다보인다.
- 태학산 북서쪽 주능선이 끝나는 지점인 솔치고개에 차를 두고 왔으므로 북서쪽 길로 가야 하지만 반대방향인 넙치고개로 향한다. 이정표에는 넋티고개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형도에는 ‘넙치고개’라 표기되어 있다. 주변조망이 전혀 없는 잡목 숲을 30여 분 걸으니 넙치고개와 즘골로 갈라지는 삼거리 안부다. 넙치고개까지 600m 남겨둔 평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은 후 느긋하게 놀다가 넋티고개를 향해 산길을 내려간다. 마을과 채석장이 보이는 즈음에서 윤이 정색을 하며 일행의 걸음을 제지시킨다.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나침반을 모두에게 보여준다. 지도를 펼쳐 확인하니 차를 두고 온 솔치고개와 정반대 방향인 넙치고개가 코앞이다.
“여기가 아닌가벼”하며 돌아서는 윤의 말에 뒤에 있던 나순결씨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모두 폭소를 터뜨린다. 일행은 한바탕 웃음 후에 방향을 돌려 가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전과 다르게 하늘빛은 점차 맑아지고 바람은 훈훈하다. 다들 어느새 윈드재킷을 벗은 티셔츠 바람이다. 2시간 만에 되돌아온 461봉을 지나면서부터 사방 조망이 시원스레 터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헬리포트를 지나며 산길은 밋밋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길가 진달래나무들은 분홍 꽃망울이 부풀었다. 그야말로 소풍길이다.
두 번째 헬리포트를 지나면 호서대학과 솔치고개로 갈라지는 안부가 나온다. 동쪽으로는 호서대학이, 서쪽으로는 수철저수지와 아산시 배방면이 내려다보인다. 푹신한 육산을 걷는 맛이 어디 비할 데 없이 마냥 느긋하고 한가롭다. 세 번째 헬리포트에 죽은 새의 깃털이 수복하게 쌓여있다. 필시 매의 소행인 게라고 윤과 나순결씨 추리를 펼치고 새털만 남기고 남김없이 먹어치웠노라고 권이 분석하자 매정한 약육강식의 현장이라고 순재씨가 결론을 짓는다.
세 번째 헬리포트를 지나자 급하게 경사진 왼쪽 사면으로 산의 일부분이 헐벗은 채 사막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산불의 흔적인가? 산의 사막화현상인가? 여론이 분분하다. 다시 어여쁜 소나무숲길이 이어지다가 멋진 조망터가 나온다. 망경산 자락 아래 수철저수지와 비산비야 논밭들이 펼쳐져 있다. 봄색이 완연하다. 초록빛 소나무 숲 터널을 지나던 일행이 동시에 환하게 웃으며 제자리걸음을 걷는다. 좋다는 뜻이다. 작은 풀꽃 하나, 도롱뇽 한 마리, 죽은 새의 깃털 앞에 덥석 무릎을 꿇는 이들이 초록빛 소나무숲 터널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웃고 있다. 나는 왜 거기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냐.
맞은 편 배방산을 바라보며 산길은 아래로 내리닫는다. 진달래다. 애들이 따로 없다. 진달래를 처음 보는 애들처럼 와~하고 그 앞으로 모여든다. 진분홍 진달래 한 송이가 활짝 피어 말갛게 웃고 있다. 산길은 점차 은은한 꽃길이다. 진달래 꽃망울이 무리지어 보이고 노란 생강나무꽃들이 잔칫날을 받아놓은 양 폭죽을 터뜨릴 태세다. 3월 내내 일조량이 부족해 춥고 을씨년스럽던 충청도에도 꽃잔치가 벌어질 모양이다.
목조계단을 끝으로 자애로운 빛깔로 혼곤한 봄동산을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건너 간이주차장에 도착한 나순결씨가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렸다며 도로표석을 가리킨다. 아침에 차를 세워둘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도로표석이 있다. ‘지미카터로(Jimmy Carter Road)’, 표석의 뒷면에 설명이 있다.
‘도고면 금산리에 Jimmy Carter Work Project 2001사업으로 88세대의 사랑의 집 건축을 위해 우리(아산) 시를 방문한 미합중국 전 대통령인 Jimmy Carter와 자원봉사자들이 이 도로를 이용하게 되어 도로 개통일에 맞춰 Jimmy Carter Road로 도로명을 정하고 이 표석을 세워 자원봉사자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
그것도 모르고 산행 내내 이정표마다 적혀 있는 ‘카터로’라는 지명표기를 보면서 저게 대체 무슨 말이냐, 지미 카터가 이 지역을 왔다갔다는 말이냐 하면서 우리끼리 답도 없는 질문을 해댔던 것이다. 4시간이면 충분할 나지막한 봄동산을 7시간으로 늘려 걷고도 마냥 즐거워하는 이들을 태우고 차는 다시 휴양림 주차장으로 향한다.
- ▲ 태학산 정상. 밋밋하고 나무가 높아 정상다운 맛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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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 태학산자연휴양림 매표소~관리사무소~삼태리마애불~정상~주차장 <1시간30분소요>
○ 태학산자연휴양림 매표소~법왕사·태학사~삼태리마애불~정상~461봉~솔치고개 <4~5시간 소요>
○ 그 밖에 호서대학에서 남서능선을 따라 오르거나 솔치고개에서 남동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산의 규모는 작지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산이다. 태학산휴양림의 쾌적한 시설들은 직장이나 단체의 야유회·체육대회 같은 행사를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휴양림 내의 숲속의 집은 예전에는 숙박시설로 이용되었으니 현재는 수도시설이 용이하지 않아 숙박을 할 수 없다. 휴양림 매표소를 들머리로, 휴양림 안의 법왕사와 태학사를 지나 마애불을 보고 팔각정이 있는 정상으로 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상에서 주차장을 날머리로 잡고 내려가면 전체 산행에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어 노인이나 어린이가 있는 가족단위 산행에 적합하다. 산행을 보다 길게 즐기고 싶다면 북서쪽 주능선을 타고 솔치고개로 하산한다. 들머리에서 다소 거리가 있으므로 돌아올 교통편을 미리 고려해 두어야 한다. 등산과 사찰탐방, 온천을 겸할 수 있는 당일산행지로 적합한 산이다. 숲 해설에 관한 내용과 신청은 태학산자연휴양림(041-521-2864)으로 문의한다. 주변 볼거리로 유관순기념관과 독립기념관, 아우내장터를 둘러볼 수 있다. 아우내장터의 장날은 1일 5일로 시골 할머니들의 따뜻한 인정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교통
○ 대중교통
천안터미널에서 태학산자연휴양림행 650번 버스가 있다. 2010년 4월 3일자로 변경된 운행시각은 다음과 같다. 휴양림행 06:05, 07:40, 09:50, 13:00, 15:00, 18:30, 21:00. 휴양림에서 천안터미널행 06:50, 08:40, 10:50, 14:30, 19:30, 22:00. 시내버스 문의(041-562-9858)
○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을 지나면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갈라지는 천안분기점이 나온다. 이 천안분기점에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남천안나들목으로 나가면 바로 1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공주, 조치원 방향으로 들어가 1번 국도를 달리면 소정삼거리가 나온다.
소정삼거리에서 우회전해 623번 지방도로를 타고 풍세로 들어가 풍세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태학산자연휴양림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태학산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숙식
태학산 인근에는 이렇다 할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병천으로 나가 유명한 순대타운을 찾으면 어떨까.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순대타운에서는 순대와 돼지갈비 등 천안의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우내 옛날순대 (041-564-9090), 참병천순대집(041-561-0151), 큰산골 돼지갈비(041-561-5959), 온양온천(www.onyanghotel.co.kr)
- / 글·사진 차은량 수필가. 산문집 <꽃멀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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