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찾는 이 적어 호젓하고 암릉 타는 재미도 쏠쏠
안동장군의 충심 담긴 산…김천 시내 조망되는 고성산으로 연결
예로부터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리는 김천(金泉)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삼면(三面)이 병풍을 둘러친 듯 산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덕대산(德大山)은 김천시가지 남서쪽에 위치하며 구성면과 대항면의 경계를 이루고, 백두대간이 뻗어가는 황악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옛날에는 병점산이라 불렸다는데 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산에는 덕대산성지(德大山城址)가 있다. 이 성터는 고려 말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에 관한 슬픈 역사의 한 단면만이 전해진다.
- ▲ 553.3m봉을 지나면 왼편으로 우뚝 솟은 덕대산을 중심으로 지나온 산등성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 고려 충신 정몽주의 문하인 안동장군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른 이성계에 항거하여 진서장군 최신(崔信)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켰다. 처음 충청도 니산(尼山)에서 접전했다가 패하고 이곳 덕대산에 들어와 성을 쌓고 항전했다. 그러나 패망한 나라의 잔병(殘兵)으로 새 왕조(王朝)의 막강한 군대와 끝까지 맞서 싸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근의 성주를 거쳐 고령(高靈)과 합천(陜川)의 접경지역인 상원산(上元山·지금 고령의 미숭산)에 들어가,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하여 후일을 도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는 것.
한편 이 산은 김천 시민들도 잘 찾지 않는 산이다. 김천 시경계를 종주하는 사람들만 간혹 찾을 뿐이다. 이는 가까운 곳에 그 유명한 황악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유명산 주변에 묻힌 산은 조용하고 붐비지 않아서 좋다. 문제는 이름난 산으로만 몰리는 등산객들로 인해 자연훼손이 심화되는 데 있다. 등산 인구 1500만 명 시대에 각 지자체는 새로운 등산로를 개발하고 기존의 등산로를 통제하는 정책으로 등산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 그것이 집중되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을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 ▲ 직지사역.
- 어쨌든 이렇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산도 코스만 잘 짠다면 조용하고 호젓한 산행에서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느끼는 묘미도 색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덕대산 북쪽에 위치한 정감 어린 직지사역을 둘러보고 덕대산 북릉을 따라 소물산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동쪽 능선을 이어 살태고개를 지나 고성산에서 김천시내로 내려선다.
산행 들머리인 대항면 덕전리의 직지사역은 신평마을에 내려 세송마을의 직지교회를 길잡이로 삼으면 된다. 1925년 마을 이름을 따 ‘세송신호장’으로 문을 열었고, 1927년 보통역으로 인근 직지사의 이름을 빌려 ‘직지사역(直指寺驛)’으로 여객업무를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 정기열차는 물론이고 단체여객을 실은 임시열차까지 들어와 많은 관광객과 학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특히 봄, 가을이면 고찰 직지사를 찾는 각 학교의 수학여행객들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사연도 많은 경부선, 그 한 축을 이루던 직지사역. 1990년 2월 간이역으로 격하되고 같은 해 7월, 63년간 이어온 여객업무는 중단했다. 지금은 옛 모습 그대로인 건물만 쓸쓸하게 남아 있고, ‘직지사역’이라는 대구 출신 박해수 시인의 시가 새겨진 빗돌만 옛 서정을 대변하고 있다.
역을 나서서 오른편 대나무 숲 사이 소로를 빠져나오면 잔솔이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세송(細松)마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두려워한 왜군들이 송(松)자가 붙은 곳은 피했기 때문에, 잔솔밭으로 피란 온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마을회관 앞의 공터에서 철길 굴다리 아래로 통과하여 몇 가구 민가가 있는 마을 왼편으로 오른다. 좁은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가면 왼편 산릉의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길이 보이고 곧장 산길로 들어서면 묘지가 있다.
- ▲ (위)고성산 산정에 서면 주변 조망은 물론이거니와 김천시내가 발아래로 훤히 굽어보인다. (아래)고성산 산정에는 넓은 터에 삼각점과 두 개의 정상 표석이 있다.
- 능선을 이어가는 산길은 흔적이 뚜렷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지는 않는 듯 새소리, 바람소리만 간간이 들을 수 있다. 어쩌다가 눈에 띄는 리본도 색이 변하고 글씨가 지워졌지만 그래도 길손에게는 반가울 뿐이다.
산길로 접어든 지 30분이면 송전탑을 만나고 다시 10분이 채 되지 않아 소물산(417.9m)에 이른다. 지형도에는 산으로 표기돼 있지만 소물산은 덕대산에서 뻗어 내린 산릉에 자리한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다. 실제 산길 옆에 삼각점만 박혀 있을 뿐 우뚝 솟은 그런 분위기는 느낄 수가 없다.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는 산릉은 운치가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을 따라가는 능선 길 좌우로는 봄을 재촉하는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다. 소물산을 지나고부터는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소나무와 참나무 숲을 번갈아 만나면서 푹신푹신한 낙엽을 밟는 감촉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를수록 경사가 제법 가팔라진다 싶더니 암릉이 나타난다. 능선을 우회하는 사면 길이 있으나 암릉을 타고 넘는다. 간혹 희미한 산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능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812m 덕대산보다 더 시원한 483m 고성산 정상
- ▲ 1 산행은 세송마을회관 앞의 공터에서 철길 굴다리 아래로 통과해야 한다. 2 하산은 이정표에서 약수터 방향의 능선을 따라 시내까지 1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3 덕대산 정상은 삼각점이 있어 상봉임을 직감하지만 다른 어떤 표식도 없다.
- 531m봉을 지나면서 경사는 더욱 심해지고 툭트인 주변 조망은 기대할 수 없지만 암릉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물산을 지난 지 1시간쯤이면 이 능선상에서 최고의 전망바위를 만난다. 서쪽 일대가 한눈에 잡히는 곳. 황악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능선과 산봉우리들, 발아래의 방하치, 그 너머로 동구지산·진밭산 등이 펼쳐진다.
덕대산까지는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발길을 재촉해 급경사의 산등성이를 오르면 북릉의 마지막 봉우리. 밋밋한 봉우리를 넘으면 동구지산으로 갈라지는 안부. 정상이 바로 눈앞이다.
억새와 잡목이 뒤섞인 정상에서의 조망은 좋은 편이 아니다. 삼각점이 있어 상봉임을 직감하지만 다른 어떤 표식도 없다. 어지럽게 매달린 리본의 대부분은 김천 지역의 산악회 것으로 결국 타 지역의 산꾼들은 잘 찾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산은 동쪽 능선을 따라 고성산으로 잇게 되는데 살태고개까지는 크게 오르내리는 곳이 없다. 하지만 곳곳에 갈림길이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분 정도 내려서면 능선 갈림길에서 왼편, 다시 20분 후에는 오른편 길이다. 곧이어 만나는 네 갈래 갈림길인 안부에서 직진하면 부드러운 숲길이다. 왼편으로 비스듬히 돌게 되는 마루금을 따르면 553.3m봉. 이 봉우리를 지나면서 좌우 조망이 어느 정도 트인다. 왼편을 바라보면 우뚝 솟은 덕대산을 중심으로 지나온 산등성이가 모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는 양각리 일대가 훤하다. 곧이어 오른편으로 휘어지는 능선 길은 송전탑 3개를 지나 살태고개에 이른다.
덕대산에서 1시간 이상 걸려 닿은 이 고개 왼편은 농장 축사로 짐작되는 건물이 보이고, 능선 좌우로 제법 널찍한 산길이 이어진다. 고개에서 농장으로 연결되는 길이 왼편으로 휘어지는 지점 맞은편의 철책문을 열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완만하게 오르던 산길은 노란색 저수조를 지나면서 다시 된비알로 바뀐다. 살태고개에서 고성산까지 40분 정도 올려치는 이 산등성이는 지루한 느낌도 들지만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산정에 올라서면 시원한 조망이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주변 조망은 물론이거니와 김천시내가 훤히 발아래로 굽어보이는 고성산(高城山·482.7m) 산정에는 넓은 터에 삼각점(김천 24, 1981 복구)과 두 개의 정상 표석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헬기장과 산 아래 쉼터인 고성정도 보인다. 이 산은 덕대산 능선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김천의 진산(鎭山)으로 옛날에는 할미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산정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며 신라시대 축성됐다고 전해지는 고성산성터가 있단다. 지금은 김천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으로 사랑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운동시설과 쉼터는 물론이고 거미줄처럼 얽힌 등산로와 산책길이 있다.
하산은 일단 고성정으로 내려서서 정자에 올라보고, 정자 뒤편의 오른편 산자락을 에돌아 만나는 이정표(고성산 약수터 590m, 사각정자 670m, 고성정 320m, 고성산 정상 270m)에서 약수터 방향의 능선을 따른다. 1시간 남짓이면 원계서원이 있는 원곡마을을 지나 시내까지 닿으면서 산행은 끝난다.
산행길잡이
○ 신평마을~직지사역~세송마을~소물산~531m봉~정상~553.3m봉~살태고개~고성산~원곡마을~김천역 <6시간 소요>
○ 신평마을~직지사역~세송마을~소물산~531m봉~정상~553.3m봉~살태고개~백옥동 세실마을 <4시간 30분 소요>
○ 남산정~고성산 산불감시초소~고성산~살태고개~553.3m봉~덕대산~방하치~대항면 직지초등교 <7시간 30분 소요>
교통
김천은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문의 1544-7788). 경부선 서울에서 김천행 열차가 평일 21회(06:23~23:00), 주말 3회 증편 운행한다. 부산에서도 김천행 열차가 평일 26회(04:45~23:00), 주말 3회 증편 운행한다. 김천역에서 직지사까지 5~10분 간격(06:30~23:00)으로 운행하는 직지사행 11번(일반), 111번(좌석)버스를 타고, 신평마을에서 하차하면 된다. 택시비는 1만 원 안팎(김천 콜택시 054-435-8900)이다.
숙식(지역번호 054)
김천역 건너편의 평화동에 삼원장(432-7588), 롯데장(434-7771), 백금장(431-3135), 엘림장(430-2269) 등 숙박시설 밀집지역이 있다. 먹거리집으로는 김천역 건너편 뒷골목 세무서 방향의 대성암본가 초밥집(434-7257)이 제법 알려져 있다. 모듬초밥(l인분에 5,000원)에 우동을 곁들이면 거뜬하다. 어묵탕도 일품이다. 성내동 스파벨리 가기 전 사거리에 있는 바보온달 해장국 설렁탕(431-2003)은 24시간 영업하며 충분할 정도의 공간에 맛과 양 그리고 가격면에서 크게 부담되지 않는 집이다.
/ 글·사진 황계복 전 부산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