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고에 호수의 지면이 지각변동으로 솟구쳐 오른 도지봉(掉止峰)과 상사암은 임실군 신덕면의 주산이다. 비록 해발은 낮지만 암벽으로 이루어져 스릴만점이다. 특히 749번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이산의 두 암봉처럼 솟은 상사암과 노적봉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처럼 느껴진다. 신덕에 사는 신윤철씨는 “상사암(想思岩)은 거북이가 용이 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보부상이 지나가다 이름지었다는 의미인 상사암(商師巖)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불귀신이 그곳에 살며 불을 뿜었다는 전설에 근거해 화산(火山)으로도 불리고 있다.
- ▲ 한국가든에서 본 상사암. 월추암과 싸워 이겼으나 아내인 삼베바위를 잃었다는 전설이 있다.
- 지도에는 상은봉으로 나와 있는데 생각 사(思)를 은혜 은(恩)으로 잘못 해석한 듯싶다. 상사암 북쪽에 있는 도지봉은 배의 돛대 형상이라서 돛대봉으로 불리며, 옛날 호수로 배가 드나들 때 배를 매어 놓았다고 전해온다. 주봉인 둥지봉은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며,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인근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수호신처럼 섬기는 거북바위 전설이 재미있다. 옛날 상사암에 은거하던 불귀신이 거북을 못살게 하려고 호수의 물을 마르게 하고 화재를 일으켜서 거북을 돌로 만들고, 주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앗아갔다. 이에 주민들이 불귀신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당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하자 거북의 혼이 꿈속에 나타나 불귀신을 쫓는 방법을 알려줬다. 마을 사람들이 선몽한 대로 거북배미(논)에서 거북돌을 출토하여 수호신으로 모시고, 마을에서 상사암이 보이지 않도록 느티나무를 심은 뒤 매년 제사를 지내자 불귀신의 피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불귀신의 화염을 없애려면 얼음이나 물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마을 이름을 수천(水川) 또는 빙채(氷債)라고 부른다.
또한 거북돌이 출토된 뒤부터 거북을 신령스럽게 여기게 되었으며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손님이 찾아오면 융숭하게 대접하고 볏짚으로 거북을 만들어 무병장수하고 부자가 되라는 의미로 선물로 주는 풍습이 생겼다. 수천리에 있는 신성희·신병덕 두 효자를 기려 양효문이 섰으며, 좌찬성을 지낸 신개의 충신문이 등산객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예로부터 신덕면 일대는 산수가 아름답다 하여 시인묵객이 몰려들어 풍류를 즐기며 도원경으로 불렸던 운호팔경(雲湖八景)이 있다. 운호팔경 시문은 평산 신씨 영모재에 보관돼 있다.
임실군 신덕면은 호남정맥 갈미봉 남쪽에 위치한 구릉지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은 경각산, 서북쪽은 치마산이 병풍처럼 섰다. 신덕식품은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김치를 생산하고, 전주상그릴라 골프장과 오궁미술촌은 매년 25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갈미봉과 경각산 사이의 480m봉에서 남쪽으로 가지 친 뒤 피재와 도지봉을 거쳐 상사암과 둥지봉을 지나 수천리에서 끝난다. 물줄기는 모두 섬진강 상류의 수원이 된다.
산행은 박병덕 신덕면장과 오병덕 부면장, 그리고 백종술씨 등의 설명과 안내를 받아 상사암과 둥지봉 1코스를 호남지리탐사회원들과 더불어 답사했다. 희망주유소 옆 등산로 팻말이 있는 749번 도로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슬아슬한 암벽 사이로 오르다가 전망바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노적봉과 오봉산 사이로 국사봉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달성 서씨 묘소부터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상사암 정상에 닿으면 조망이 좋아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잡힌다. 옛날 이곳에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아서 주민들이 묘를 파내고 돼지 피를 바위에 바르고 기우제를 지내자 하늘이 더럽혀진 바위를 깨끗이 씻으려고 비를 내렸다고 전해온다.
바윗길을 내려서면 완만한 소나무 숲길이 시작되고, 조망을 즐기다 보면 두 개의 갈림길이 연이어진 기름재에 닿는다. 기름재는 사기소와 수천리를 잇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으로 풍수지리상 호롱불혈로 땅속에 기름 성분이 있다고 한다. 북쪽으로 편백나무 숲을 따라가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준동하자 경찰과 주민들이 참호를 만들었다는 도지봉이다. 동쪽에 있는 월추암은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제비골 위 능선에 있는 ‘제비설날’이란 이름이 특이해서 물어보자 박 면장이 제비의 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서쪽 능선은 학산, 남쪽은 당산으로 가는 하산로다. 0.9km쯤 걸으면 예전에 초등학교 소풍 장소였던 능선 서쪽 아래에 병풍 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 마이산의 암석처럼 이루어진 병풍바위를 둘러보고 능선으로 올라와서 점심을 즐기고 북쪽으로 향한다.
10분쯤 뒤면 나오는 갈림길 능선에서 독도에 유의해서 북쪽으로 가야 한다. 서쪽은 학산을 거쳐 사기소로 가는 길이다. 삼각점(갈담 415)이 있는 봉우리를 우회해서 내려가면 월성과 수천리를 잇는 2차선 도로가 있는 피재에 닿는다. 산행 초보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하산을 한다. 그러나 산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종주코스를 잇는 것이 조망도 좋다. 두 개의 오르막을 올라서면 예전에 지우초라는 한약재가 많았다는 지초봉이다. 서쪽은 경각산과 모악산이 조망된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올라서면 산행코스 중에서 가장 높고 풍수지리상 황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의 둥지봉 정상이다. 맑은 날은 마이산과 운장산이 조망되는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해서 사진도 찍을 수 없는 상황이다. 벌목지대를 지나서 동쪽으로 가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도치샘인데 멧돼지들의 목욕 장소로 변했다. 갈대와 잡목지대를 지나자 빗방울이 굵어진다. 상수도집수장을 지나 ‘수월로 18-33’ 표시가 돼 있는 주택과 749번 도로를 지나 신덕면사무소에 닿는다.
- ▲ 1 신덕면의 수호신인 거북 모양의 바위. 불귀신을 쫓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2 상사암 정상. 바위봉우리 꼭대기라 조망이 좋지만 흐린 날씨 탓에 희미한 풍경이다. 3 병풍바위 능선 이정표 앞에 선 신덕면 관계자와 호남지리탐사회원들. 4 행운의 상징인 볏짚으로 만든 거북. 이곳을 방문한 손님에게 주는 풍습이 있다.
- 산행길잡이
1코스 희망주유소~(30분)~상사암~(30분)~기름재~(10분)~도지봉~(30분)~병풍바위~(30분)~피재~(30분)~지초봉~(30분)~둥지봉~(20분)~도치샘~(1시간)~신덕면사무소 <11.5km, 5시간 소요>
2코스 피재~병풍바위~제비설날~도지봉~기름재~상사암~희망교 <6.5㎞, 2시간10분 소요>
*산행 안내나 주차 도움이 필요하면 신덕면사무소(063-643-0404)나 백종술씨(016-792-0571)에게 연락하면 된다.
볼거리
상사암과 월추암 옛날 치마산을 차지하기 위해 두 바위가 싸움이 났다. 월추암이 칼로 상사암의 부인인 삼베바위의 목을 베자, 상사암이 창으로 월추암에 두 군데나 큰 상처를 입혔다. 결국 상사암이 승리해 치마산을 차지했지만, 아내인 삼베바위를 잃은 슬픔에 흘린 눈물이 조각바위로 변한 아내에게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었다. 싸움에서 패한 월추암도 상처가 옹달샘으로 변해 선혈이 고여 옹달샘 물을 마시고 소변을 보면 핏물처럼 붉은색을 띤다고 전한다.
교통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백제로~평화동사거리~27번 국도~구이면 동적골~덕천삼거리 749번 지방도~불재~새희망주유소~신덕면 수천리
○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17번 국도~관촌역~49번 지방도~신평~율치재~수천리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17번 국도~관촌 슬티~745번 지방도~오궁미술관 삼거리~지장리~수천리
*대형버스는 면사무소, 복지회관, 한국가든, 새희망주유소 등에 주차하면 된다.
대중교통
○ 전주~신덕~운암 시내버스(1시간 간격 운행)
○ 관촌~신덕~운암 시내버스(1시간 간격 운행)
○ 전주~신덕~운암 직행버스(2시간 간격 운행)
숙식 (지역번호 063)
한국가든(신상진·643-2738)이 권할 만하다. 신덕면 신흥리 새희망주유소 옆 상사암이 올려다보이고, 제목천이 흐르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식당은 백숙·옻닭·오리주물럭 등이 주메뉴로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기와(신옥금·643-3532)식당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이다. 수천리면사무소 앞에 있는 이 식당은 백숙, 불낙전골, 오리주물럭 등이 주메뉴다. 주방장이자 농악의 상쇠인 신옥금씨의 요리솜씨가 좋다. 미리 예약해야 식사 가능하다.
숙박시설로는 상사모텔(643-2979)과 수월모텔(643-8984)이 있다.
- /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