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경

지리산의 가을풍경

문성식 2010. 9. 17. 00:54
★晩秋의 智異山★

 

 

 

 

 

 

 

 

 

 

 

 

 

 

 

 

 

 

 

 

 

 

 

 

 

 

 

 

 

 

 

 

 

 

 

 

 

 

 

 

 

 

 

 

 

 

 

 

 

 

 

 

 

 

 

 

 



 


                                  

                                                지리산의 야생화

▲ 지리산 고사목과 산너울
통풍이 잘 되는 쿨맥스 셔츠와 가볍고 물기에도 금방 마르는 소재의 반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나를 보호해주는 등산 재킷을 걸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험하고 먼길이라도 주저 없이 용감하게 나를 이끄는 등산화의 끈을 질끈 동여맨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복장 준비 끝. 이 과정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행복한 순간이다.

지리산으로 떠난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팍팍한 이 세상 등지고' 칙칙폭폭 밤기차에 몸을 싣고 신나게 달려간다. 사랑하는 님과 함께 가면 더없이 좋겠지만 혼자 가도 설레는 건 매한가지. 이 기차가 어서 빨리 새벽 지리산의 윤곽이 어슴푸레 보이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바람이 있다면 그것 한 가지 뿐이다.

▲ 지리산 야생화. 위는 수수꽃다리, 아래 왼쪽은 동이나물, 오른쪽은 패랭이꽃.
푸른 여명이 묵직하면서도 가볍게 지리산을 감싸고 있는 새벽. 한신계곡에 발자국을 꾸욱 새기며 들어선다. 새벽 기운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야생의 빛, 그리고 생명의 기운이란 모름지기 이처럼 푸른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새벽을 알리는 산새소리,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에 내 정신도 파릇파릇 해진다.

계곡을 따라 조금씩 깊이 지리산의 품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른다. 내 숨결은 거칠어지고 땀은 벌써 얼굴을 따라 줄줄 흘러내린다. 몸의 구석구석도 열기가 듬뿍 담긴 땀에 젖어 마치 땀으로 샤워를 한 기분이다. 이 순간이 좋다. 살아있는 느낌이 들고, 불끈 솟구치는 생명력의 싱싱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 이정표 앞에 서면 잠시 흔들린다. '어디로 갈까?'
지리산을 한참 헤매다 보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야성이 깨어나는 듯하다. 살다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이 그리울 때가 자주 있다. 문명으로 가다듬어지기 이전, 그러니까 교양의 이름으로 거세되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고 싶을 때가 많다.

나뭇잎 같이 허술한 '복장'으로 생식기만을 가린 채 돌도끼나 화살 같은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험한 산을 넘고 거친 강을 건너며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짐승과 '맞짱'을 뜨던 그 야성의 인간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한참을 올라 산너울이 거대하게 일렁이는 지리산을 굽어보니 '미련 곰탱이들'이 생각난다. 이 넓고 푸른 지리산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다가 끝내 인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 '반돌이'와 '장군이'. 지리산 반달곰 복원 사업으로 방생되었던 두 녀석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고, 녀석들이 꼭 지리산에 정착하길 바랐다.

▲ 맑은 지리산 한신계곡
그러나 녀석들은 결국 광활한 지리산 대신 인간이 만든 우리 안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주 어릴 적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살았던 녀석들은 끝내 '따듯한 인간의 손길'의 기억을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반돌이와 장군이를 바라보던 난 안타까운 마음에 '저런, 미련 곰탱이들!'이 절로 나왔다.

야성이 거세된 인간을, '인간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돌이와 장군이를 생각하며 느린 걸음을 옮겨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내리 깔린다. 날씨가 흐리니 밤이 되어도 '별 볼일' 없을 것 같다. 술이나 마음껏 마셔야겠다.

▲ 숲으로 가는 길.
지리산 천왕봉 일출 시간이 다가 왔다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일출 보러 가야지요"
"나 일출 안 봐요. 잘 다녀오세요"

여기서 멈추면 오죽 좋으랴.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 계속 나를 흔들어 깨운다. <일출 사절>이라는 팻말을 써놓고 싶은 심정이다. 글쎄, 왠지 모르게 일출은 별로다. 또한 일출을 챙겨서 볼만큼 부지런한 위인도 아니다.

▲ 야생화 쥐오줌풀. 야생화는 아름답다. 야생의 인간도 아름다울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꽃 피고 새 울어대는 싱그러운 아침이다. 그래, 인간은 모름지기 이런 곳에서 살아야지 싶다. 많은 사람들은 벌써 천왕봉 일출을 보고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아직 부시시한 모습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편안하기만 하다.

지리산에 오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고싶다. 서두르지 않고 참견하지 않으며 그냥 먹고, 자고, 싸는 일을 본능에 내맡기고 싶다. 지리산은 그런 자유를 내게 최대한 보장해 준다. 그래서 지리산에 오면 난 참 단순해진다.

▲ 환장하게 푸른 나무.
자연보호 차원에서 지리산 안에서는 비누 사용을 금지한다. 샴푸 사용은 물론이고 설거지도 불법이다. 참 마음에 드는 조치다. 환경을 생각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지리산에 오면 누구다 다 씻지 않는다. 물에 그냥 헹구는 수준이다. 설거지는 휴지로 닦으면 그만이다.

난 이빨도 닦지 않는다. 이런 내 지저분함 뒤에는 '치약 사용 금지'라는 훌륭한 규칙이 버티고 있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산다. 서로 핀잔을 주거나 나무라지도 않는다. 사실 산에 있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빠지고 싶은 푸른 숲
다시 천왕봉에 선다. 햇살은 강력하고 바람은 강하다. 그래서 추우면서도 뜨겁다. 사방 팔방으로 뻗어있는 푸르름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저 빛깔 때문에 난 아직 여름 지리산을 좋아한다. 야생화 담뿍 피어난 여름 지리산이 최고로 좋다.

지리산에서 내려와 버스에 몸을 실으니 야생을 향해 예민하게 반응했던 내 감각은 금새 무뎌지는 것 같다. 지리산에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건만 버스에 오르니 내 몸에서 풍기는 땀냄새가 지독하다. 양치질을 하지 않은 입도 텁텁하고, 면도를 못한 턱의 수염도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 이 소망탑을 쌓은 사람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잠시 잠깐 야생에 빠져있던 내 몸이 다시 문명의 세계로 온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난 다시 샴푸로 머리를 감고 향긋한 비누로 샤워를 하며 말끔한 모습으로 순대 같은 전철에 몸을 싣고 빠듯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 나쁘지 않다. 답답하면 그리고 야성이 무뎌지면 다시 지리산으로 가면 되니까 말이다.

어느 TV광고는 이렇게 소리치며 끝난다. 나도 따라 외쳐본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 제석봉의 고사목.


임도

철쭉

바래봉

바래봉




바래봉 팔랑치로 가면서 바라본 바래봉

주능선 성삼재쪽 주능선 전경

출처 :미녹시기 원문보기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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