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35호
명 칭 조각장 (彫刻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70.07.22
소재지 서울전역
※ 본문설명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매우 발전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의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되어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
금속조각 기법으로는 평각(平刻)·투각·고각·육각·상감입사(象嵌入絲) 등이 있다. 평각이란 일명 음각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쪼아서 나타낸다. 투각은 바탕면의 문양에 따라 필요없는 부분을 정으로 쪼거나 오려서 빼낸다. 고각은 바탕면에 무늬를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도록 한다. 육각은 가장 어려운 기법으로 기물의 외면과 내면에 정으로 두들기거나 오그려서 무늬를 나타낸다. 상감입사는 바탕에 홈을 파고 그 자리에 금·은·오동선 등을 넣은 후 빠지지 않게 다진다. 재료는 금·은·철·석·연·아연 등으로 다양하나 주로 은을 사용한다. 무늬는 산수·화조(花鳥)·구름과 용·덩굴무늬 등이 일반적이고, 조선말 이후에는 아름답거나 좋은 뜻을 지닌 문양이 주류를 이룬다.
조각장은 전통공예기술로 개화의 추진과정에서 기술과 전통이 크게 위축되고, 그 맥이 끊길 위험에 처해 문화재 보전차원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보호하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기능보유자 김철주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보충설명
『대전회통』에 따르면 근세 조선왕조에 경공장(京工匠) 가운데 공조(工曹)에 매였던 장인(匠人)의 수는 55종(種)에 255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금속공예(金屬工藝) 관계가 12종(種) 80명으로 약 30%를 차지, 그 비중이 컸다.
특히 개화기 이후에는 서울 종로 광교천변에 은방 도가(銀房都家)가 군집해 있어서 금은세공(金銀細工)의 중심이 되었다. 은방도가는 대공방(大工房)과 세공방(細工房)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전자는 주전자, 담배합, 신선로 등 큰 것을, 후자는 비녀, 가락지, 괴불, 방울, 노리개 등 자잘한 것들을 만들었다. 대공방과 세공방에서 만들어졌던 은제품에 무늬나 글씨를 조각하는 것이 조각장 또는 조이장이들의 일이었다.
구한말 은방도가의 솜씨를 이어 오늘에 이른 사람이 고 김정섭이다. 그는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를 거쳐 이른바 이왕가 미술품제작소에서 조각을 익혔으며 기(技)의 연마를 위해 다른 한편으로 이행원(李行源)과 김규진(金圭鎭)에게 서화(書畵)를 사사(師事)했고 직업학교 교사로 또는 고문으로 후진양성에도 열의를 다한 당대의 일인자이다.
백금(白金), 금(金), 은(銀), 철(鐵), 석(錫), 연(鉛), 아연(亞鉛), 알루미늄 등의 금속을 한 가지나 또는 합금한 것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물건의 금속면에 조각을 하는 데는, 강쇠로 만들어진 5cm 안팎의 자그마한 정을 쓴다. 조이질에는 정을 꼬늘 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에는 촛정, 공군정, 다질정, 평다질정, 비늘정, 누깔정, 움푹정, 운풍정, 갈기정이 있고 이밖에 광을 낼 때 쓰는 광치기와 콤퍼스의 구실을 하는 거름쇠와 소도리, 조이틀 등이 갖추어져야 하며 같은 종류의 정도 용도와 대소에 따라 크기가 제각각이므로 도구만도 수 백 점에 이른다.
조이질할 것을 조이틀에 고정시켜 소도리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쥐고 왼손 끝으로 정을 잡고 가볍게 쳐야 하며 정 끝은 언제나 안으로 향해 움직여야 한다.
조이질을 하는 무늬에는 수복문(壽福紋), 초롱문(草籠紋), 편복문(편복紋), 당초문(唐草紋), 난간문(欄杆紋), 사군자문(四君子紋), 십장생문(十長生紋), 산수문(山水紋), 화조문(花鳥紋) 등이다.
조각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나뉘어진다. 촛정을 쓰는 선각(線刻), 다질정을 엇비슷이 눕혀서 조이질하는 화각(花刻), 조이질한 금속편(金屬片)을 붕사땜하여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고각(高刻), 실톱, 다질정, 촛정을 섞어 써서 구멍을 뚫는 투각(透刻), 조이질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감탕질을 해가며 제몸에서 문양이 두드러지게 하는 육각 (肉刻)이 있다. 이때에는 다질정을 많이 쓴다. 조이질이 끝나고 광을 낼 때는 광쇠로 득득 긁어 빛을 내고, 어둡게 할 때는 모래맞치를 해야 한다.
1933. 8. 25 ~ | 보유자 인정: 1989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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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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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작품
은제 오동입 봉황 상감 화병, 6×23cm
순은제 화병을 제작하여 밑그림을 그리고 바닥면에 홈을 파고 그 위에 금과 은을 넣은 후 상감을 하여 만든 작품
작업도구와 제작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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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1933년
- 출생
- 1967년
- 백하금속조각연구소에 종사
- 1971년
- 서라벌예대 공예과 조각 전수조교
- 1978~1986년
- 전승공예대전 입선, 장려상
- 1989년
- 중요무형문화재 조각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89년 ~ 현재
-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작품전 출품 및 전수교육 활동
- 2007년
- 2007 무형문화재초대전 “김철주 조각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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