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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유명한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가 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시딤(Hasidism)이라는 유다교 개혁파에 속하는 위대한 스승 중의 한 사람인
랍비 부남이 한번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담, 곧 인간'이라는 표제로 책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 끝에 쓰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깊이 생각해 보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모순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많이 압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아직 완전히 모르고 따라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탐구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한편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또한 무력과 한계를 말합니다.
파스칼이 "알아야 할 우주 신비에 대한 지식이 태평양만 하다면
전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그중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가장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당신의 신비를 가장 깊이 새겨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일의 '내'가 어떻게 될지 압니까?
내일은 그만두고 어제의 '나'는 확실히 압니까?
확실히 아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죽는다는 것,
그것만은 압니다. 특히 정신세계, 마음 세계에는 참으로 한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데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인간의 마음이 평안할 때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돈이나 세상 재물입니까? 부귀영화입니까?
구약을 보면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극도로 누린 왕이지만
말년에 가서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느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 12,7-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말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것은 부귀영화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귀한 사랑도 인간의 사랑은 완전한 의미의 만족을 못줍니다.
아무튼, 우리의 마음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갖는다 해도
늘 마음 한 구석은 허할 것입니다. 비어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행복감에 넘쳐서
내 마음은 지금 99% 만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순간은 100% 행복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는 양 착각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마음은 세상의 가치만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99% 만족할 때 허(虛)라는 공백은 1%밖에 안된다 해도
그 1%의 공백은 마치 수학의 제로(0)와도 같습니다.
천이고 만이고 백만, 억 만까지도 영(0)으로 곱하면 모든 것을 영(0)으로 만들 수 있듯이,
그렇게 1%의 허함은 우리가 누리는 부귀영화 모든 것을 일순간에 제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왜 그렇게 세상 모든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습니까?
다시금 인간의 신비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마음이 바라는 것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무엇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어둠을 환히 밝혀 주는 꺼지지 않는 빛이어야 하고,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불사불멸의 생명이어야 하고,
우리 마음을 행복과 평화에 젖게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적인 무엇입니다. 인간은 결국 하느님으로 가득히 채워지지 않는 한,
어디서도 만족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은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신 다음 맨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창세 1,27)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견지에서 볼 때,
우주 만물은 각각 어느 정도까지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가장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진 것은 인간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체로 보면 보잘것없는 작은 것이지만,
예를 들어 우주 전체에 비해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입니까?
또 우주의 존재가 최소 150억 년이라면
인생이 백년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얼마나 짧은 것입니까?
150억 년에 비하면 순식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인간이지만, 인간은 그 사고력에 있어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그 마음에는 영원에의 향수를 담고 있습니다. 영원을 바라는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만물 가운데 영장입니다.
하느님이 인간 안에 당신의 영원과 무한의 도장을 꽉 찍어서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가서 쉬기까지는
언제나 평안치 못한다고 성 아우구스띠노는 말했는지 모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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