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은 왜 배워야 하는가? 5.

문성식 2011. 9. 13. 18:06

성경은 왜 배워야 하는가? 5.

 

글/ 오철환

Ⅴ.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

<딤후 3:14-17>



장로교 신조 제1조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즉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니라”고 하였고 또 성경요리문답 제3문답에도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이뇨?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이 범죄 타락한 뒤에는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어떻게 믿을지도 모르게 되어졌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사람이 어떻게 믿어야 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말씀 등으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계시(啓示)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하나님만이 자신을 계시하실 수가 있고 영감된 성경을 통해서만이 참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입각한 신앙만이 참 신앙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들에서 양을 잃고 찾아다니고 있었다. 길가는 한 사람에게 “양을 본 일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못 봤습니다”고 해놓고는 이어 “당신이 찾고 있는 양은 한쪽 다리를 저는 양이지요?”라는 것이다. “또 왼쪽 이가 빠진 양이지요?”하고 하는 것이었다. 양을 찾는 사람이 너무나 잘 알아 맞추기에 놀란 표정으로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도 잘 아십니까? 내 양을 보셨군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아니 못 봤습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럼 어찌 그리 제가 잃은 양을 잘 아십니까?”하고 했더니 “그건 알기 쉽지요. 짐승이 지나간 발자국을 보니 한쪽은 약간 파여 있고 한쪽은 깊이 파여져 있었고 또 풀을 뜯은 것을 보고 당신이 찾고 있는 양은 절름발이요 이가 빠져 있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하더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만 볼 수가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계시하신 성경말씀과 지으신 만물을 보고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알 수가 있으며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롬 1:20은 밝히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이것을 알기 위해 먼저 성경의 중심사상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요 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다. 곧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믿으라고 가르치는 책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요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이는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인 동시에 신구약 성경 전체를 기록한 목적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 5:39의 말씀과 같이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대하여 증거하고 믿으라고 가르치는 책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요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고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사람인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고 또 요 14:9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또한 완전한 사람으로 믿어야 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인 것이다.

 

우린 이 사실에서 바른 기독관 곧 예수님을 바로 보고 믿는 자가 되어야겠다. 결코 예수님을 유대인 중에 한사람으로, 그 당대의 애국지사로, 역사적인 위인으로, 이상적인 인물로, 위대한 사회 사업가로, 성인중의 한 사람으로, 종교적인 대 천재 등등으로 보지말고 오직 마 16:16의 말씀과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바로 믿는 사람이 돼야겠다. 이렇게 믿어 달라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날마다 예수님을 배우고 그를 하나님으로 믿어야겠다. 특히 모든 신자들에게 그 정도를 따라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해야겠다.



2. 성경은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인간이 행할 바 본분을 그의 계시하신 성경을 통하여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전 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는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손을 들고 있는 물체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이 법칙에 대해서는 아무도 간섭을 할 자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순종하라고 지으셨다. 여기에 대해서 이유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 순종해야 되는가? 라고 반항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가소로운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가 너무나도 오만불손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없다고 무신론을 말하며 심하게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사신론(死神論)까지 대담하게 말하게 되었으니 기각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 유명한 X목사에게 우리 교단에서 자란 대학생 한 분이 “목사님! 사신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다. 계속해서 “목사님! 하나님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힘주어 물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죽다니……”라고 하더니 이어 “하나님이 있어야 죽든지 말든지 하지!”라고 말끝을 흐리더란 것이다.

 

몇 해 전 시골에 계신 늙은 부모님이 서울에서 대학을 공부하는 아들을 찾아갔더니 공부는 하질 않고 애인과 함께 놀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정도면 참겠는데 “아무개야!”라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더니 대답은 고사하고 담배를 입에 문 체 “도대체 당신들이 누구십니까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닙니까?”라고 잡아떼더란 것이다. 부모님은 너무나 기막힌 일이라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시골로 내려와 버렸다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데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순종하는 것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순종보다 반항을 떡 먹듯이 하고 있다. 무신론으론 모자라서 사신론을 말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말세의 징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야말로 사 1:2, 3의 말씀과 같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이와 같은 반역의 무리 중에서 얼마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믿게 하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은혜를 주사 인생의 본분을 행할 수 있게 하셨다. 이 본분을 예수님은 마 22:37~40에서 두 가지의 요지를 말씀하셨다. 곧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다. 이 윤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요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행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부족해서 완전히 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자의 마음 속에 실행할 힘을 주사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물론 자연인들도 인력으로 완전치는 못하지마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참선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선행이니 주께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요 따라서 인간의 모든 선행은 일시적이요 이어 피곤과 권태를 느끼고 낙심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인 그대로는 선행을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믿음을 주시며 구원의 은혜에 감격시켜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윤리는 단순히 율법이 아니고 은혜인 것이다. 왜냐하면 행하도록 힘을 주셔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전 15:10에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하였다.

 

괘종 시계의 추를 흔들어 준다고 가는 것은 아니다. 태엽을 감아준 다음에 추를 흔들어 주어야 오래 오래 똑딱똑딱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주님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인생의 본분 곧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함으로서 영광을 주께 돌리고 축복 받도록 하자. 이신득의(以信得義) 이행득상(以行得賞) 이것이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가르치는 2대 강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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