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왜 배워야 하는가? 4.
글/ 오철환
Ⅳ. 성경을 배워라 <딤후 3:14~17>
우주는 학교요 인생은 학도란 말이 있다. 이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생은 자연만물과 책을 통해서 일생은 배우며 살아야 된다는 격언인 것이다. 그러나 열왕 중 전무후무한 지혜자 솔로몬은 세상지식에 대해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이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는 것이라고 했다(전 1:18). 그러나 성경을 배우면 사죄의 기쁨이 있고 배울수록 꿀송이 보다 더 달고 모든 행사가 형통해지며 영생의 복락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복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성경 속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딤후 3:14~17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을 배워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살펴 은혜를 받고자 한다.
1. 왜 성경을 배워야 하는가?(이유)
1)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16절 상반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셨다. 사 34:16은 기록뿐만 아니라 편집까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책이 아니고 <여호와의 책>인 것이다. 삼구 27의 신구약 성경 66권은 곳곳에 <하나님이 가라사대><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예수께서 가라사대><성령이 가라사대><주께서 말씀하시되>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혼과 보이는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없어질 육신의 아버지의 말씀도 배워야 하겠거든 하물며 영생하신 영의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해서야 될 말이겠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다(마 4:4). 그러므로 사람이면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공부해야 되는 것이다.
2) 전통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14절 끝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셨다. 이는 성경을 배우되 전통이 있게 배웠다는 말인 것이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위시한 많은 하나님의 사자들로부터 성경을 바르게 배웠다. 그렇다! 성경은 전통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선지 사도들, 속사도들, 교부들, 종교개혁자들, 그밖에 신실한 하나님의 사자들로 말미암아 전통으로 받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전통의 복음을 받아 축복 속에 자라 왔다. 그것은 청교도의 후예들인 미국선교사들의 영향이 컸었다. 초대 평양신학교 이율서 교수는 “기독교가 성경을 버리거나 성경을 믿지 아니하면 그 때부터 기독교가 될 수 없다. 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 정신을 그대로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장로교의 신조 제1조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즉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니라”고 제정했다. 이러한 한국 교회가 해방전후 자유주의신학과 신비주의신학의 물이 들더니 오늘에 와서는 불건전하고 사이비한 이단들이 판을 치는 꼴불견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교단과 교회의 이념은 정통의 신앙과 생활의 순결이란 것을 명심하고 어떻게 말씀을 받아 왔는지를 살펴 성경을 바로 배워 바른 신앙생활이 되어야겠다.
3)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의 뜻은 성경을 읽고 배우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주시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성경을 떠난 믿음이 있을 수 없고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성경을 배워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생기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독일 사람 루터는 신부가 되어 이태리 로마에 가서 관례에 따라 스칼라 상타라는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고 있었다. 전설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 당하면서 올라간 것인데 나중 천사들이 예루살렘 빌라도의 궁전에서 로마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 계단을 한번 오르면 15년간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었다. 그가 반쯤 올라갔을 때 마음 속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뛰어 내림과 동시에 천주교와 인연을 끊고 말았다. 이런 대담한 믿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그것은 그가 대학생시절 얼폿대학 도서관에서 라틴어 성경을 발견하고 열심히 읽고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2.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방법)
1) 어릴 때부터 배워야겠다.
15절 초두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어릴 때 배운 것 잘 잊혀지지 않는다. 노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자란 것 얼마나 행복한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격려를 주었다. 방탕하다가 중년에 또는 노년에 주께 돌아온 것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다. 모태로부터 믿는 가정에서 자란 것 더 복된 줄 알고 주 앞에 꾸준한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유년주일학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물심양면의 협조가 있어야겠다.
그리고 젊은이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젊음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유년이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장년이 되고 장년이 노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음은 노년에 이르는 시간적 과정의 한 세대임을 알고 이 값진 젊음을 허송세월하지 않기를 바란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젊은이는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조그마한 시간도 가벼이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少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고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배워야겠다.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고 15절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여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을 바로 이해하려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히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우리가 아나니” 곧 예수를 믿음으로 창세기의 기사가 이해가 되며 그밖에 성경이 환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3) 실행하면서 배워야겠다.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다. ?거하라?는 말씀은 실행하라는 말이다. 성경을 배우면 반드시 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기도에 대해 적극적인 교훈을 주셨다. 이 말씀은 입으로 구하고 발로 찾고 손으로 두드리라는 것이다.
곧 입만 가지고 구하지 말고 손발이 움직이는 실행 있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말씀을 실천하면서 성경을 배워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요 2:9에 예수께서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연회장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였다. 곧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했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실 때도 믿음으로 순종한 자만이 이 이적을 알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순종하고 배워야 주의 말씀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3. 배운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1) 성화를 촉진시키는 유익을 준다.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하셨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란 말은 기록될 때만 아니라 그것을 읽을 때도 영감을 주는 책이란 말이다. ‘교훈’은 지혜를 주는 것이고 ‘책망’은 잘못에 대한 반성을 일으키는 것이고, ‘바르게 함’은 허물을 고치는 것이고 ‘의로 교육’ 한다는 말은 의롭게 되도록 징계도 하면서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심은 곡식에 물주고 김매고 비료 주고 농약을 쳐서 병충해를 방지하여 알곡을 거두듯이 그리스도의 씨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감된 말씀으로 살찌게 하며 죄악의 잡초를 뽑으며 고난의 징계로 연단시켜 성화케 한다.
그렇다! 성경 아니고는 인간생활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 119:9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고 했다. 한 때 불란서에서 혁명이 일어나 기독교를 심히 배척하여 국법으로 성경을 없이 하기로 하고 성경이 발견되는 대로 불태우며 성경을 보는 사람을 잡아 투옥 혹은 사형까지 하게 했다. 그러나 3년도 못되어 다시 국법을 개정하여 국민들에게 성경을 보고 배우게 한 일이 있다.
요즘 기독교 계통의 중고, 대학도 자유화의 물결을 따라 성경교육을 등한 혹은 폐지하는 경향이 많으며 선생님들이 주초를 예사롭게 함으로 부덕한 일이 적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부산 이사벨여고 이사장 신동혁 목사는 130명이나 되는 교직원을 채용할 때 첫째, 크리스천이라야 하고, 둘째, 각 교회 찬양대원이나 주교교사 등으로 봉사하는 자라야되고, 셋째는, 주초를 하지 말아야 된다는 조건이다. 한번은 선생님 중 한 분이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목사님이 그분을 만나 “담배 피우고 안하고는 구원에 관계는 없지만 피차 부자유하니 끊고 봉직을 하시든지 다른데 가서 피우시든지 양자택일하기를 바랍니다”고 함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2)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을 구비시켜 준다.
17절 상반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라는 말씀이 그런 뜻이다. 요즘 교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교역자의 지적수준도 높여야 된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교역자가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면서 <적 적>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가며 짧은 설교시간에 외국어를 자주 쓰는 경향이 많으며 세상 신문과 세상 책의 말을 너무 많이 인용함으로 말씀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 같다. 이것들 보다 교역자는 성경에 능통해야겠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주는 목자가 되어야겠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교역자 곧 자격을 구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3) 모든 선한 일을 하게 한다.
17절 하반에,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성경만이 인류에게 참 선행을 하게 하는 것이다. 실례를 들면 유명한 진화론자 다윈이 남양군도의 식인종들의 생활상태를 시찰하고 돌아와 발표하기를 남양군도에 사는 식인종들이 개명하려면 수천 년이 지나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다윈이 이 말을 발표한지 백년도 못된 오늘엔 선교사들의 전파한 복음의 말씀으로 악행을 그치고 주를 섬기는 새 사람이 되었으며 또 영국이 아프리카 일부분을 점령하고 그곳에 식인종들의 악습을 고쳐주기 위해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키며 엄한 법률을 제정,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을 총살형에 처하겠다고 했으나 끝끝내 고치지 못했다. 그러나 선교사가 들어가 성경을 가르쳤더니 감화를 받아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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