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고 다시 묻고 싶을 때
“사람은 왜 살아야 합니까?”
젊을 때 많이 하던 질문을
또 다시 묻는 시기가 있습니다.
40~50대, 인생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삶은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물으면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
‘삶의 의미도 모르면서 살면 뭐해’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세요.
‘메뚜기도 살고 다람쥐도 살고,
나도 살고 저 사람도 산다.
모두 살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괴롭게 사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죽는 거예요.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뿐입니다.
잘생긴 사람이 좋아요
"저는 배우자를 고를 때
외모를 많이 따져요.
제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다만 몇 가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알고 결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첫째, 첫눈에 봐도 잘 생긴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둘째,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셋째, 행여 찾았다 하더라도
경쟁이 치열해 놓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결혼까지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후에도 행복할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주위에 항상 이성이 있기 때문이죠.
시간이 흐르면 인물이 좋으냐,
부자이냐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져요.
연애할 때는 인물 좋은 사람이 좋지만
같이 살기에는 편한 사람이 더 좋거든요.
좋은 대로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이런 선택의 결과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괴롭지 않아요.
화내는 것도 습관
게임하는 것만 습관이 아니라
화내고, 짜증내고
잔소리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상대가 잘못해서 화가 났다고 하지만
화나는 건 내가 화나는 것이지
상대방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화나는 것이 잘 안 고쳐지듯
상대도 그 습관을 잘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화가 일어날 이유가 없어지므로
내 습관도 고쳐지는 거예요.
= 법륜 스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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