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도자기,사찰

무형 문화제[101 - 120호]

문성식 2011. 2. 11. 11:35

제101호 : 금속활자장(金屬活字匠)  1996.02.01

금속활자장은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어서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장인을 말한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려시대에 창안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종 19년(1232) 강화도에 천도한 고려 조정이 개경의 서적점(書籍店)에서 찍은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다시 새겨낸 것이 전하며, 국가전례서인 『상정예문(詳定禮文)』을 금속활자로 찍은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금속활자 인쇄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관서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개량·발전시켰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주조기법으로 제작된다. 금속활자의 제작과정은 글자본만들기, 원형만들기, 주조작업, 마무리작업 등 크게 4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주조기법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활자 하나하나를 밀랍으로 만드는 밀랍주조기법으로 초기에 주로 쓰인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활자의 원형으로 주물틀을 만든 후 찍는 모래주조기법으로 조선시대 초조갑인자 이후 보편화된 방법이다.

 

 

제102호 : 배첩장(褙貼匠)  1996.03.11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법을 가리키며, 일제시대에 들어온 말로 오늘날에는 “표구(表具)”라고도 한다. 배첩장은 조선 전기에 회화를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도화서 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사람을 말한다.
중국 한(漢)대가 기원으로 알려진 배첩은 당(唐)대에 한층 발전하여 정립단계에 이른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병풍 그림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전해져 한국 배첩의 기초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첩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꾸준히 발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배첩장이라는 전문가가 등장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제103호 : 완초장(莞草匠)  1996.05.01

완초장이란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키는 60∼200㎝에 이르며 완초, 용수초, 현완, 석룡초라고도 한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등이 있다.
왕골이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때에는 사직신(社稷神)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중국에 보내는 증여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귀한 제품으로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사용하였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다.


 

제104호 : 서울새남굿(서울새남굿)  1996.05.01

서울 새남굿은 서울지역의 전통적인 망자천도굿으로 사회의 상류층이나 부유층을 위해 베풀어졌다.

망자천도굿은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남굿은 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가 17·18세기경에 오늘날의 형태로 놀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105호 : 사기장(沙器匠) 1996.07.01

사기장이란 백토 등을 혼합하여 그릇형태를 만든 다음 13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사기그릇을 만드는 기술 또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천하제일의 비색청자로서 그 명성을 떨쳤으며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서 제작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경기도에 분원을 설치하여 특별히 제작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관요(정부 관리하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져 민요(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번창하였다.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공예품으로 도자 공예제품에 따라 제와장·옹기장·도기장·사기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106호 : 각자장(刻字匠)  1996.11.01

각자(刻字)란 글을 새기는 것, 즉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각판을 각자 또는 서각이라 하는데 인쇄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목판본이라 한다. 글자를 반대로 새겨 인쇄방식에 따라 인쇄하는 과정도 각자라 하며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각자장 또는 각수라 한다.
각자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알려진 신라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인『팔만대장경』이 만들어 지는 등 사찰을 중심으로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 기술이 전해져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한 많은 목판 인쇄물이 간행되었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도, 잘못된 글자나 글자획이 빠진 것 등으로 가늠한다. 잘못 새긴 것이 생긴 경우에는 잘못된 글자 부분만 파내어 다른 나무를 박고 다시 새긴다.

 

 

제107호 : 누비장(縷緋匠)  1996.12.10

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홈질하여 맞붙인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승려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납의(衲衣)는 해진 옷을 수십년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점차 누비기법으로 발전하여 일반인 사이에서도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 등의 이점을 따라 전래되었다고 한다.

 

 

제108호 : 목조각장(木彫刻匠) 1996.12.31

목조각은 목재를 소재로 나무가 가진 양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조각이다. 재료로는 결이 아름답고 견실한 오동나무, 소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해지면서 사찰 건축과 불상 등 불교 의식과 관련된 조각들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 분실되어 전하는 것은 많지 않다.
목조각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잘 건조된 목재 위에 밑그림을 그린 뒤 목재의 필요 없는 부분을 쳐내는데 이것을 걷목이라고 한다. 걷목으로 대충의 행태가 드러나면 불상의 속을 걷어 내는데 이것을 건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종교적으로 복장을 넣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점차 세부 조각을 한 뒤 옻칠과 채색하여 완성한다.

 

 

제109호 : 화각장(華角匠)  1996.12.31

화각(華角)은 쇠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판을 말하며, 이러한 화각을 이용해서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을 화각장이라 한다. 화각공예는 재료가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생산이 많지 않았으므로 특수 귀족층들의 기호품이나 애장품으로 이용되었고 일반대중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희귀 공예품이다.
화각공예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나전칠기의 경함(經函), 염주합(念珠盒)에 복채기법으로 된 대모(玳瑁)가 나전과 같이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 중기의 나전에까지 이어졌으나 중기 이후부터는 화각으로만 장식한 화각공예품이 발달하였다.

 

 

제110호 : 윤도장(輪圖匠)  1996.12.31

윤도장(輪圖匠)은 24방위를 원으로 그려 넣은 풍수 지남침(指南針)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윤도는 남북방향을 가리키는 자석바늘을 이용하여 지관이 풍수(집터 또는 묘자리를 정함)를 알아볼 때나 천문과 여행분야에서 사용되는 필수도구이다. 명칭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에 처음 나오고, 일명 나침반, 지남철, 지남반, 패철이라고도 한다.
지남침의 원리는 중국에서 이미 한대(漢代)에 실용화되어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수지남침이 신라 후기부터 발달하였고, 고려 전기에는 풍수음양지리와 연결되어 땅의 형세를 보는 풍수가나 지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구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풍수가의 전용물에서 벗어나 여행자들도 사용하였으며, 특히 천문학자들에게는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을 가리키는 자오선을 정하는데 필수적이었다.

 

 

제111호 : 사직대제(社稷大祭)  2000.10.19

사직대제는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로, 사(社)는 땅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나라를 세우면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이와 함께 땅과 곡식의 신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올렸다.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사직에 대한 제사는 자연에 감사하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선의 태조는 나라를 세우면서 궁궐과 함께 종묘, 사직단(사적 제121호)을 마련하여 경복궁의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고, 각 지방에도 사직단을 세워 백성의 편안함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제112호 : 주철장(鑄鐵匠)  2001.03.12

주철장이란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하였던 쇠를 녹여서 각종 기물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조물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6세기∼5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문헌 자료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쇠가 생산되고 매매되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인류문명 발달에서 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므로 고대부터 쇠를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기술과 장인은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또한 한반도에 불교가 정착되면서 사찰이 건립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많은 범종이 제작되었으며, 이처럼 쇠를 녹여서 범종을 비롯한 각종 쇠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주철장이라고 한다.

 

 

제113호 : 칠장(漆匠)  2001.03.12

칠장은 옻나무에서 채취하는 수액을 용도에 맞게 정제하여 기물에 칠하는 장인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옻이 사용된 흔적은 기원전 3세기 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유물이 출토된 것은 기원전 1세기 경부터이다.
낙랑시대에 발전된 칠기는 신라시대에 들어서 더욱 발전하였고,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나전과 결합되어 나전칠기라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서는 칠이 이전 시기보다 대중화되어 많은 칠기가 제작되었다. 국가에서도 전국의 옻나무 산지를 파악하여 여기에서 생산되는 옻칠을 공납받았으며, 서울과 지방에는 칠과 관련된 장인들이 주로 관청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제114호 : 염장(簾匠)  2001.06.27

염장(簾匠)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이전에는 다양한 재료로 발을 만들었는데, 그 재료로는 대나무발(대나무), 갈대발(갈대), 겨릅발(겨릅), 달발(달풀) 등이 있다.
전통가옥인 한옥에서의 생활에는 발이 필수품이었다. 발은 특히 여름철에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원함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 발은 가마의 문을 가리는 발에서부터 집의 문을 가리는 발까지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는데, 대나무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대나무는 보통 만번 이상의 손이 가야만 준비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발은 삼국시대 이래로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1970년대 이후 한옥이 사라지면서 그 쓰임도 많지 않아 급속히 수요가 줄어들면서 발을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115호 : 염색장(染色匠)  2001.09.06

염색장이란 천연염료로 옷감을 물들이는 장인을 말한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염색장은 쪽염색을 하는 염색장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염색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장인이 있었을 정도로 염색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옷감을 물들이는데 사용하는 천연염료는 식물, 광물, 동물 등에서 채취한 원료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가공을 통해 만든 염료를 사용한다. 염색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쪽염색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가지고 옷감 등을 물들이는 것으로 염색과정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우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제116호 : 화혜장(靴鞋匠) 2004.02.20

화혜장(靴鞋匠)이란 전통 신을 만드는 장인으로 조선시대 신목이 있는 신발인 화(靴)를 제작하는 ‘화장(靴匠)’과 신목이 없는 신발인 혜(鞋)를 제작하는 ‘혜장(鞋匠)’을 통칭한 것이다. 조선시대 발간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중앙관청에 화장은 16명, 혜장은 14명이 소속되어 있을 정도로 신의 수요가 많았으며, 그 기능도 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혜(鞋)의 제작과정은 여러 겹의 광목이나 모시를 붙인 백비 위에 공단을 붙여 신울(발등을 감싸는 부분)을 준비하고 소가죽으로 신 밑창을 만든 뒤 신울과 밑창을 맞바느질하여 연결한다. 이때 중심이 틀어져 신코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무로 된 신골을 박으면서 신의 형태를 잡아준다.

 

 

제117호 : 한지장(韓紙匠)  2005.09.23

'한지장(韓紙匠)'이란 전통한지를 제작하는 장인으로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黃蜀葵)를 주재료 하여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장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썩고, 뜨고, 말리는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제118호 : 불화장(佛畵匠)  2006.01.10

불화(佛畵)는 불탑(佛塔), 불상(佛像) 등과 함께 불교의 신앙 대상이며, 그 제작 형태에 따라 탱화[幀畵], 경화(經畵), 벽화(壁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탱화는 복장식(服裝式), 점안식(點眼式) 등의 신앙 의식 절차를 거쳐 불단(佛壇)의 주요 신앙대상물로 봉안된다. 우리나라 전통사찰에 전해오는 탱화는 불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불화 제작을 담당하는 장인을 특별히 금어(金魚), 화승(畵僧), 화사(畵師), 화원(畵員)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단청과 불화는 제작 목적과 표현방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단청은 궁궐 · 사찰 ·사원 등의 건축물 벽면에 여러가지 기하학적인 문양과 그림을 그려 장엄하는 반면, 불화는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예배용 · 교화용 탱화 제작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전승현장에서도 단청과 불화는 각각의 고유한 기술과 역할을 바탕으로 분리 전승되고 있다. 그동안 불화 제작기능은 단청장(丹靑匠, 1972년 지정)보유자에 의해 전승되어 왔으나 종목의 특성을 고려해 단일종목으로 분리, 불화장(佛畵匠)으로 지정하였다.
 
 

제119호 : 금박장(金箔匠)  2006.11.16

'금박장(金箔匠)'이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여성의 혼례복 등에서 볼 수 있다. 금박장식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보관상의 문제로 현전하는 유물이 많지 않으나 순조(純祖)의 3녀 덕옹공주(1822~1844)가 혼례 때 입었던 것이라고 전하는 원삼에는 '壽(수)'와 '福(복)'자가 금박 장식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211호 덕옹공주의복).  금박장식은 접착제를 바른 문양판을 문양을 넣고자 하는 위치에 찍고 접착제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금박지를 붙인 다음 문양 밖에 있는 금박지를 다시 떼어내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금박장 기술은 옷의 구성에 어울리는 문양을 선별 · 배치하는 안목을 바탕으로 문양판을 조각하는 목공예 기술과 주재료인 아교와 금박지의 물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오랜 제작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기술이다.


 

제120호 : 석장(石匠)  2007.09.17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이 이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석조문화재가 전해지고 있어 우리나라의 석조물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석공예의 재료는 물론 석재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화강암이 있으며 이 밖에도 납석과 청석, 대리석 등이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석장들은 망치, 정 등 수공구를 사용하여 돌이라는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준 높은 석조문화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기계 도입 등으로 인하여 전통 석조물 제작 기법이 사라져가게 되었다. 이에 사라져가는 석조물 제작의 전통기법과 기능을 보존·전승하기 위하여 석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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