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문성식 2022. 5. 28. 07:59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동양사회에서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상적인 시대가 있습니다. 바로 요순(堯舜) 시절입니다.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법 없이도 잘 살았고, 법은 고사하고 백성들이 나라의 통치자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요 임금이 홀로 시골 마을에 가 보았습니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있는 한 농부에게 넌지시 "당신은 우리나라 임금이 누구인지 아시오?"하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무심히 대답하기를 "우리야, 해 뜨면 집에서 나오고 해지면 집으로 들어가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고 사는데, 임금이고 뭐고 상관할 게 뭐 있소?" 하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비로소 자신의 정치가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 되어 흐뭇해 했습니다. 너무 엄격하고 복잡한 여러 가지 법률이 세상 사람들을 얽어매는 것이 오늘의 세태라고 생각합니다. 법뿐이 아니라 내세워지는 여러 가지 명분의 과잉, 미사여구의 과잉도 사람들을 싫증나게 하고, 가치관에 무감각해지게 하며, 불신풍조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니 '정의'니 '복지'니 하는 말들이 남발될 때에, 사람들은 허탈 속에서 사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조용히 인간적인 진실이 소통되어 나가는 사회를 상상해봅니다. 억지의 행위와 명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다운 존재 자체가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사람(無爲而無不爲)' '말 없이도 가르침을 주는 사람(不言之敎)'의 경지가 때때로 갈망됩니다. 이상을 말하자면, 사람들이 어린이처럼 순진해지기를 바라게 되기도 합니다. "누구도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상기됩니다. 순진함, 부드러움은 가장 생동하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약하고, 죽을 때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풀과 나무, 모든 것이 싹틀 때는 여리고 부드러우나 죽으면 메마르고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성질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가장 신선한 생명입니다." 옛 현인의 말씀입니다. 이른바 권력이라는 것에도 이 부드러움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사는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권력은 기계적인 것, 억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력은 싸움에서 이겼을 때 적장을 사로잡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력이 필부(匹夫)의 마음속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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