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자의 벗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가난은 오로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당신의 절대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모든 부귀를 버리시고 일생을 가난 속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는 첫째, 태어나실 때도 베들레헴이라는 한 촌에서 집도 아닌 외양간에서 태어나셨고, 평생을 두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적빈이었습니다. 참으로 세상 재물이라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뿐더러 정신적으로도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뜻에 당신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십자가라는 극도의 헐벗음과 비참에 순종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는 인간 중에도 말자(末者), 가장 비천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가난 속에서 그분을 명실 공히 모든 인간 말자들과 일치되셨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종교적으로까지 버림받은 모든 사람과 일치되셨습니다. 이 일치는 진정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되찾도록 그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하시기 위해 스스로도 가난해지신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가난한 사람들이 구원될 때 참으로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빵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회복될 때,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되고 사랑받을 때,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유를 다시 찾을 때, 세상은 정말 밝고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빵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적선으로 던지는 돈만이 아닙니다. 의식주의 안정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인정이며 그들의 인간 존엄성을 비춰주고 드높여 주는 진리입니다.
그들을 구하는 메시아는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들과 일치되어 그들과 온갖 시련과 삶을 함께 나누면서 그러한 사랑을 주고, 그러한 정의와 진리로서 그들의 짓밟힌 인격과 인권을 회복시키고, 사람다운 삶과 가치를 소생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입니까? 모든 인간이 울고 싶도록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 아닙니까? 이 해방이 아닙니까? 온 인류가 마음속 깊이 갈구하며, 모든 인간이 민족과 인종과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도 버림 받고 소외되거나 짓밟히지 않으며 평등한 인격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되는 것이 온 인류의 꿈이요, 미래의 이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때문에 그 같은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이 땅 위에 가져오신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4)하고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같이 보이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온 인류의 불의와 부정의 차별 없이 자유와 평등과 우애로써 해방시키는 참된 사랑의 보편주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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