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정의의 구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과 정의의 실천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면서 남에게 불의를 행할 수는 없습니다. 정의를 거스르는 것은 바로 사랑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정의를 빼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때문에 이웃에 대한 정의의 실천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노력은 곧 사랑이 가득 찬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입니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웃을 참으로 인간으로, 인격 주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인간 품위에 맞는 대우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존엄성과 그 존엄성에 내포된 기본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나 정치권력도 그것을 무시하고서 참으로 이웃을 사랑한다거나 국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유린하거나 또는 정치나 경제의 도구로 삼는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런 곳에는 참된 평화와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발전과 번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짓이 자행되는 사회는 바로 암흑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이렇듯 정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바로 크리스천의 길이요,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입니다. 온 교회와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이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구현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어둠 속에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바로 이 시간, 이 사회 속에 드러내야 합니다. 육화시켜야 합니다. 구원의 힘과 빛으로, 생명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만큼 그리스도의 구원의 힘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교회는 '완전한 정의의 나라,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자유, 꺾일 줄 모르는 사랑, 보편적인 화해, 영원한 평화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