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의미
믿음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물론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는 어떤 하느님을 믿는가?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나의 하느님?"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전지하신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 나는 참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습니까? 나를 극진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습니까?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타나는 아버지는 받은 재산을 유흥에 탕진하고 배가 고파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자를 한마디 꾸중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를 껴안고 볼을 비비며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들을 시켜 아들의 누더기 옷을 벗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푼 아버지, 이 아버지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곧 그것은 예수님이 믿는 하느님이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꼭 알리고 전하고 싶은 아버지이십니다. 신을 신겨 주었다는 것은 자유인으로 다시 회생시켰다는 뜻입니다. 가락지, 집안의 문장은 그 집의 아들로 다시 맞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는 이렇듯이 자비로우시고 우리 죄 많은 인간들을 자비로써 용서하시며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시는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이 하느님은, 그 당시 예수님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판한 바리사이파나 율법 학자들이 지녔던 하느님 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 생각에는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 더구나 예수님처럼 백성을 가르치는 랍비로 자처하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지엄하고, 죄인을 엄히 다스리고 벌허는 하느님이었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에게는 이런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 모습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예수님이 믿으신 대로 자비 지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자신, 바로 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스스로의 생활로 보이시는 하느님이 참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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