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진실한 삶은 죽음마저도 이깁니다

문성식 2022. 3. 5. 11:09


 
      진실한 삶은 죽음마저도 이깁니다 오늘의 사회현실이 말해 주듯이 현대인은 이른바 경제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삶의 의의를 더욱 잃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곳보다도 물질적 발전에 반비례하여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빈곤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여기서는 정의 대신 불의가, 진실 대신 허위가, 상호간의 믿음과 사랑 대신 불신과 미움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양심이나 도덕은 국민 윤리 교과서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진실한 인간, 진실한 삶이 아직도 있을 수 있는지 의문시할 만큼 모든 것에 회의를 품고 있습니다. 되는대로 살자는 것이 통념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적 공허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참되고 보람 있는 삶과 빛을 갈망합니다. 거짓 없는 참사랑을, 굶주린 육체만이 아니라 텅 빈 마음, 영혼의 공허까지 가득 채워주는 생명의 양식을 갈구합니다. 惡이 없는 세상, 불멸의 생명만이 빛나는 세상은 없는 것인가 하고 부단히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그 생명을 찾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던 그 밤도 별빛 하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특히그 제자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고 죄악과 죽음, 절망뿐이었습니다. 과연 사랑과 진리의 주께서는 미움, 음모와 거짓 앞에서 대역 죄인처럼 다스려지고 마침내는 참혹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도 오늘날처럼 정의는 죽고 불의는 살았었기 때문에 허위 대신 진리가 못 박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써 죄악과 그 결과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랑과 진리와 생명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불멸의 의미와 보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진리 때문에 박해를 받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허무해 보이는 것이 우리 신앙뿐이겠습니까? 우리 인생 자체가 허무해질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궁극에는 죽음뿐입니다. 모든 것을 허무로 삼키는 죽음, 그것은 세상만사의 결정적인 파멸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생명뿐 아니라 그와 함께 우리가 아끼고 가꾸는 모든 것을 다 무로 돌리고 맙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미 지적했듯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1코린 15,23) 우리는 이런 인생을 긍정할 수 있습니까? 염세증에 걸린 사람도 이처럼 허무한 인생을 긍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저항을 느길 것입니다. '인생은 이럴 수 없다'는 울고 싶도록 강력한 저항, 영원에의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영원을 갈구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혼의 바닥엔 영원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성 아우구스띠노는 "주여, 주를 향해 우리를 만드셨기에 주안에 쉬기까지 우리 마음은 언제나 편안치 못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후세를 긍정함은 현세를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입니다. 현세가 부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후세가 긍정되어야 합니다. 영원이 없으면 시간은 무의미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현세의 인생은 죽음으로 마치는 무의미 그 자체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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