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사적 및 명승 2호
명 칭 내물왕릉계림월성지대
(奈勿王陵鷄林月城地帶)
분 류 기타유적지
면 적 151,851㎡
지정일 1963.03.28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교동, 황남동
시 대 미상
관리자 경주시
※ 본문내용
신라 17대 왕인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은 약 1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사적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덤의 모습은 땅 위에 둥근 봉분만 갖춘 신라 초기의 양식이며 근처에 있는 신라 13대왕인 미추왕의 무덤과 같은 양식이다.
계림은 고목이 무성한 숲으로, 무덤의 동쪽에 있으며, 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있다. 또한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장소로도 전해지며,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계림은 ‘시림’이었지만 김알지가 태어난 뒤 계림으로 바꾸었고, 나라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숲속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계림의 전설이 적힌 비석과 비각이 있다.
무덤의 남쪽으로는 모양이 반달같아 반월성이라고도 부르는 월성이 있다. 이는 신라시대의 도성으로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으며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대는 신라 왕궁지역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하고 조용하게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적이다
※ 보충설명
내물왕릉은 경주시내에 산재하는 200기(基) 가까운 신라능묘의 하나로서 계림(鷄林)의 서(西)쪽에 인접(隣接)해 있다. 지상(地上)에 큰 봉토(封土)만을 갖춘 초기의 오릉식(五陵式) 능이며 부근에는 일명(逸名) 동형식분(同形式墳)이 몇개 더 산재(散在)하나 가까이 있는 미추왕릉(味趨王陵)도 같은 형식이다. 내물왕(奈勿王)은 신라 제17대왕으로서 서기 401년(年)이 몰년(沒年)이라 하니 능은 거금(距今) 1500여년의 유원(悠遠)한 역사(歷史)를 지녔다. 동(東)쪽의 계림(鷄林) 숲과 그 남(南)쪽의 남천변(南川邊)에 뻗어 있는 월성(月城)과는 모두 역사적 관계가 가까운 점도 있어 자연적(自然的) 조화(調和)와 아울러 아름다운 일구(一區)를 이루었다.
계림(鷄林)은 또 북쪽에 궁중천문대(宮中天文臺)인 첨성대(瞻星臺)를 가까이 하였으므로 이 일대(一帶)의 중심(中心)을 이루는 평탄(平坦)한 숲으로서 안온(安穩)하고 깊이 있는 역사감(歷史感)을 불러일으킨다. 원래(元來)는 시림(始林)이라 불렸으나 탈해왕(脫解王) 9년(서기(西紀) 65) 흰닭이 울고 금궤(金櫃)로부터 옥동자(玉童子)(후(後)의 김알지(金閼智))를 얻은 일이 있은 후에 계림(鷄林)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계림(鷄林)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도 되었다. 김알지(金閼智)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시조라고 전한다.
펑퍼짐한 숲에는 느티나무 등의 노수(老樹)가 창울(蒼울)하게 우거지고 북변(北邊)에서 서변(西邊)으로 작은 실개천이 돌아 흐른다. 숲속에는 근세조선(近世朝鮮) 순조(純祖) 3년(年)(서기 1803)에 세운 사적비(事蹟碑)와 고풍(古風)스런 비각(碑閣)이 있어 시조설화(始祖說話)에 얽힌 천고(천고)의 비운(秘韻)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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