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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경주 불국사 경내

문성식 2011. 1. 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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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사적 및 명승 1호
명 칭 경주불국사경내
(慶州佛國寺境內)
분 류 기타유적지
면 적 388,780㎡
지정일 1963.03.28




※불국사 경내에서 볼수 있는 여러 문화재와 그 특징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 불국사 는..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한 형태로 표현되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불국사의 건축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범영루, 자경루, 다보탑과 석가탑, 무설전 등이 있는 구역.
다른 하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보교, 연화교, 안양문 등이 있는 구역이다.

불국사 전면에서 바라볼때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구조는 창건당시 8세기 유물이고..
그 위의 목조건물은 병화로 소실되어 18세기에 중창한 것이며, 회랑은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불국사의 석조 구조는 길고 짧은 장대석, 아치석, 둥글게 조출된 기둥석, 난간석 등..
잘 다듬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화려하게 구성되었는데..
특히 연화교와 칠보교의 정교하게 잘 다듬은 돌기둥과 둥근 돌난간은..
그 정교함, 장엄함과 부드러움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불국사의 높이 8.2m의 삼층석탑인 석가탑은..
각 부분의 비례와 전체의 균형이 알맞아 간결하고 장중한 멋이 있으며..
높이 10.4m의 다보탑은..
정사각형 기단위에 여러가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목재건축처럼 짜맞추었는데..
복잡하고 화려한 장엄미, 독특한 구조와 독창적인 표현법은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다보탑 - 국보 20호, 석가탑 - 국보 21호※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서쪽탑인 삼층석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두 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절을 창건한 연대인 경덕왕 10년(751) 이후로 보고 있다.

※연화교 칠보교 - 국보 22호※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청운교 백운교 - 국보 23호※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33가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즉, 다리를 통해 깨달음에 다다르고자 하는..
'희망의 다리', '기쁨과 축복의 다리'로의 표현의지인 것이다.
아래로는 17단의 청운교가 있고 위로는 16단의 백운교가 있는데..
청운교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0)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신라시대의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동 비로자나불좌상 - 국보 26호※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금동 아미타여래좌상 - 국보 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고 콧날은 오똑하다.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늘씬한 몸매 등은 장대하고 건강한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키며..
두 무릎은 넓게 퍼져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거침없는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는 옷 접힘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사리탑 - 보물 61호※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여덟 승려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는 설도 있고..
헌강왕이 죽은 뒤 출가한 그 왕비의 사리탑이라는 설도 있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과 보살상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6년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었다가..
1933년 도쿄의 나가오라는 제약회사의 사장의 집 정원에서 발견되어 28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석조 - 시도유형문화재 98호※

불국사 안에 놓여있는 것으로, 정확한 쓰임새는 알 수 없다.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어두었다고도 하나, 지금은 식수를 제공하는데 쓰이고 있다.

커다란 돌의 내부를 파서 만든 것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인데..
각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져 있고, 입구부분은 안쪽으로 살짝 말려있다.
바깥면은 도드라진 띠와 안상을 얕게 새겨 장식하였고, 안쪽면은 바닥과 옆벽면에 연꽃무늬를 두었다.
특히 바닥에 새긴 연꽃무늬는 길쭉한 타원형을 둘러싸듯..
그 좌·우·상·하에 하나씩 두어 독특한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돌을 이용한 것이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경쾌하다.